특별강좌/성령은사

(믿음의 은사2) 현실이 지옥이면 천국이 가깝다고 하더라!

이요나 2000. 7. 26. 09:25
(믿음의 은사2) 현실이 지옥이면 천국이 가깝다고 하더라!

*서론*
성경에서 말씀을 향한 믿음의 성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마가복음 5장에는 대조를 이루는 흥미로운 사건이 나옵니다. 혈루병으로 최악의 인생 12년을 살아온 여인과 최고의 환경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12살난 야이로의 딸입니다. 어쩌면 혈루병 여인도 야이로의 딸처럼 행복한 시절을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우리에게 줍니다. 낮과 밤이 12시간씩이며 일년은 12달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것도 하나님에 속한 미스테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우연이라 하지 않고 필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설정하신 질서이며 섭리입니다.

사단의 숫자가 13인 것을 보아 12의 한계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섭리요 질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공평합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보면서 부러워하며 하나님의 공평치 못함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평치 못함을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와 같이 한계 속에 놓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인간이 영혼과 육으로 창조되어 있음과 우리의 육체가 죽은 후 인간의 영혼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혼은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수명이 80이라 할 때 영원이라는 개념은 수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아 있는 인생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이야기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이것은 또 욥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육신이 살아있는 인생일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의 구원의 믿음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나타나는 믿음의 경륜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섭리하시고 계시는가 또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를 성경 속에 나타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순종하는 믿음 *
야이로는 회당장으로 이스라엘의 덕망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어느 날 12살 난 무남독녀 외동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유명한 의사와 종교적 지도자들을 통하여 종교적 의식을 다하여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이 죽게되자 야이로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고 맙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덕망 있는 민족 지도자로서 굴욕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회당장직은 물론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하여야만 합니다.

이제 그는 유대인으로서 종교적, 사회적 지위를 잃고 이단 괴수를 따르는 예수쟁이로 낙인을 찍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12살 난 외동딸을 살려야겠다는 신념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쾌히 승낙을 하고 그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그의 집에만 가셔서 딸에게 손을 얹으면 사랑하는 딸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야이로의 믿음은 죽어가는 딸의 생명을 살려 줄 것을 믿은 것이지 '구원의 믿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거리 *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일의 결말을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볼거리는 사람들를 모이게 합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어느 혈루병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12년 간 혈루병으로 이스라엘 속에서 부정한 여인으로 여겨왔었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그 병을 고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허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어떻게할 기력도 소망도 끊어지던 어느 날 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둥병을 정결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들을 듣는 순간 이 여인의 마음 속에서는 예수를 향한 '구원의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도 혈루병이 나으리라 생각 했습니다. 왜냐하면 문둥병자를 정결케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메시야 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예수님에게서 성령의 능력이 나와 그녀의 병이 낳았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능력이 나감을 아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중단하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물으신 것입니다.

* 믿음의 매개체 *
제자들과 야이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가는 도중에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그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고하였습니다. 주께서는 이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병을 고칠 분이라는 절대적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회당장 야이로의 집 하인들이 달려와서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하였습니다. 야이로에게는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었습니다. 혈루병 여인의 믿음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자기 딸이 살아 날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생겨나는 순간 딸의 죽음의 소식은 절망이었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따라 오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는 제자들이라도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였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그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헌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며 "너희가 어찌 헌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모두 내어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세 명의 제자들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즉,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였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 딸이 일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방해자들.. *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왜 주께서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셨는가?'하는 점입니다. 야이로는 그동안 회당에서 많은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보아 왔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이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구원의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딸의 생명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였고 이제는 뒤로 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가던 도중 혈루병 여인을 통하여 믿음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그 여인의 믿음은 구원자를 향한 절대적 믿음이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야이로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구원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혈루병 여인의 절대적인 믿음 결과를 체험한 순간 그에게 구원의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랑하는 딸의 죽음의 비보를 가지고 달려 온 사람들의 소식은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갔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이며 혈루병 여인을 통하여 얻은 '구원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 때 주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하시며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불신앙이 야이로를 실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야이로는 간신히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과 함께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 왔을 때 그의 집에서는 사람들이 울며 헌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구원의 믿음은 아직 간접적 체험으로 온전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때입니다. 주께서는 그 사람들을 야단하시며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어 보내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그리고 아이의 부모만을 데리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단계 *
주께서 불신앙의 사람들을 내어쫓은 것은 그들의 불신앙이 야이로의 믿음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적은 불신앙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단계별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혈루병 여인이나 야이로가 주를 찾은 것은 삶 속에 나타난 환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러한 환난이 미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만나는 환난은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인 것입니다.

절대 절망 속에서 회생되고자하는 소망이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또 주를 향한 한 사람의 절대 믿음은 능히 자신을 구원하고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할 만한 믿음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도 하며, 또 사람들의 불신앙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훼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서 체험을 통하여 성장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여러 번 꾸짖으시는 주님을 봅니다, 사도들도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한 백성이면서도 아직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높아진 마음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8장을 보면 주께서는 오병이어와 7병이어의 기적을 들어서 "너희가 아직도 마음이 둔하냐? 깨달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칠병이어는 이방인과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은 소년의 순수한 모습으로 온전히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주께서 정하신 12제자들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사도들이 준비된 온전한 믿음의 말씀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막8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