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4장)Living Water(2)

이요나 2000. 9. 10. 09:47
(요한복음4장)Living Water(2)

 

본문말씀 요한복음4:39-42

 

오늘은 요한복음 4장 두 번 째 시간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 여인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숙명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육체적 갈등과 그로인한 영적 파급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또 3장의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 니고데모를 통하여 종교적 또는 지식적으로 박식한 상류 레벨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영적인 분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여행으로 피곤한 모습으로 목말라 하는 유대인 예수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관한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자기도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는 말은 참으로 말이 안되는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인간의 외적 육체적 모습과 영적 세계는 아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육신이 지치고 초라한 것과 영적인 문제와 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사역자들이 내적으로 부족한 영적 부분을 외적인 치장으로 표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거울 앞에서 과장한 제스츄어를 연습한다던지 웅변연습을 통하여 굵고 힘찬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던지, 많은 미사려구와 외국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신령한 것처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전혀 관계없는 일입니다. 만약에 목소리가 우렁차고 꾀꼬리 같다고 영적으로 신령한 것이라면 성악가나 웅변사가 되면 될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울도 평소 사람들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은 말보다 글이 능하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창세기 아담의 아들 중 가인에게 돌로 맞아 죽는 아벨은 그 이름이 연약한 숨소리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만약에 목소리가 큰 사람이 먼저 하늘을 오를 수 있다면 난 책상 구석에 앉아서 이처럼 칼럼을 쓰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소리 높이기 몸싸움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삼각산 기도 굴에는 무당들의 징소리보다 영통하다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더 높다고 합니다.

   공통분모!

    우리는 오늘의 본문 속에서 초라하고 피곤한 여행자 유대인과 막다른 인생의 길에서 갈급하는 여인의 만남에서 무엇인가 잠식되어 있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형적인 것에 치중을 한 나머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않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연고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지금 당신이 무엇을 듣고 있느냐에 따라서 당신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도 또한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마가는 이에 대하여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삼가 주의 하라하였고 누가는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과 4장에서 공통 분모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입니다.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하나님의 선물과 그 선물을 줄 수 있는 자에 대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는 에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하였고 육체적 갈등 속에서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관한 것으로 초점을 맞추어갑니다. 이 두 사람은 오늘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당신일 수도 있고 그리고 나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으로 가득 찬 벽창호일 수도 있고 깡통머리에 최고속 메가박스 안테나를 달은 복이 넝쿨째 굴러 온 현명한 여인일 수도 있습니다.

   죄인을 부르심!

    어느날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 세미나에서 "세금쟁이와 창녀들이 바리새인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 메시지가 선포된 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은 아직 하늘나라를 들어갈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그것에 비하여 단군으로부터 우상만 섬기며 육체의 노예로 살던 우리민족과 같은 이방인들 주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객이 완전히 뒤바뀐 것으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하나님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의사가 필요한 자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고 병든 사람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왔다"(눅5:31)고 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생이 비참한 상태에 이른 사람에게는 사단이 크게 역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의 영적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심령이 그의 긍휼하심을 얻고자 아우성칠 때 사단은 그에게 다가가서 "야! 이 멍충아 하나님은 너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단 말이다. 네 주제를 생각해봐라 너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단 말이냐? 그냥 생긴대로 살거라!"고 채칙질합니다.

 

가버나움 회당관리자 야이로가 12살 난 외동딸이 죽어갈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도중 그의 주변의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에게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말라!"(막5:35)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망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하는 말입니다. 비록 야이로의 주의의 사람들이 와서 한 말이지만 이들의 배후에는 사단의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믿기만 하라"하시며 그 사람들을 따라오지 못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들은 사실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을 질시하고 적대하는 한 유대인 랍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처음 발견한 것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사마리아인인 자기를 적대하지 않고 자기에게 거침없이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만남의 처음에서 또 다른 이미지를 받은 사마리아 여인의 화제는 곧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현실적인 문제에서 영적인 문제로 이어져 갑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의 영이 갈급하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여 그 영의 눈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전도를 하기 위하여 상대의 삶과 관계없이 진솔한 관계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우리는 잘못 셋팅된 인생의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마리아 여인이 신학적 갈등을 겪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그녀는 예수께 "우리 조상들은 이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루살렘에 예배할 곳이 있다"고 질문합니다. 인생 밑바닥에 살고 있는 여인이 이러한 대단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도 영적 갈등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이 땅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다음 세상에 대한 소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새로운 신학적 논리에 갈등을 갖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예배할 때!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부분은 사마리아 조상들이 그리심 산에서 예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루살렘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시대를 따라서 그의 구원받을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이것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분명한 한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리어 얼마나 많은 세월을 허비하며 절을 해왔습니까? 그러나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의 영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그리고 아는 가운데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절할만한 하늘의 신비한 메시지를 접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령(영적)과 진정(혼적) 예배할 때가 왔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영적인 눈!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곧 이 때라"하셨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므로 그의 사역이 끝나고 하늘로 들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그녀를 일깨워 주십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의 일반적인 성경적인 지식이 있음을 보십시오. 그녀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유대인만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지식을 잘 알지 못하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의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잘못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소위 우리가 이단이라고 하는 기독교 종파에 대하여 좀더 다각적인 시각으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신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을수록 대개의 경우 영적인 면에서 매우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유대인 랍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여인은 더 이상 장소와 시간에 대한 고정 관념에 묶이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 불결하기만 한 이방여인이 황송하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녀와 대면하여 말을 했으며 그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는 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여인은 물동이를 팽개치고 동리 사람들에게 달려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불륜으로 소문난 여인으로 이웃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를 접하고 영적인 눈이 열린 이 여인은 부끄러움 없이 동리 사람들에게 나아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직접 만나자!

    많은 성도들이 교회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들 중 하나가 각 사람들의 도덕적인 문제를 그들의 믿음과 관련하여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순간 그는 구원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성령은 그 안에 들어가셔서 그와 함께 살고 게시는 것이며 아직 변화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화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은사도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서와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서를 보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아직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만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능력은 그들 중에서 나타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거룩한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아무런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온전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친히 만남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들은 사미리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과 함께 묵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틀 후 그들은 사미라아 여인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이 말은 오늘을 사는 크리스챤에게 중대한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미리아 여인에게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고 너희는 모르는 것을 예배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 당신이 포함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예수 그릭스도와 함께 유하고 계십니까? 밤을 새우며 한 며칠 간이라도 그리스도로부터 진리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생수에 관한 메시지는 한번 더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