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추수에 넉달을 기달릴 필요는
없다!
본문말씀 요한복음4:27-38
오늘은 요한복음 4장 세 번 째 시간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진 사람의 변모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4장에 소개되고 있는 특별한 부분을 가지고 함께 공부할까 합니다.
4장 27절부터 38절까지의 단락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 돌아 왔을 때의 일입니다. 아직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마주하여 무엇인가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이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커다란 잘못은 크게 의미를 보여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주 평범한 기록 속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지내 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이 기록한 이 부분도 그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합나다. 요한은 자기가 기록한 글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 본 것처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 현장에 있었던 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 이것에서는 한 여인의 운명이 뒤바뀌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살던 불륜의 여인이 물동이를 집어 던지고 동네 사람들 속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 난 것일까? 먼저 이 여인은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쁨을 얻고 사람들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그 여인의 생활이나
외모가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직 그는 불륜의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불륜의 여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여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 변하는 것은 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내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도중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께 가지고 와서 드시기를 권했습니다. 그 때 주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누가 드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첨으로 벽을 두드려 대들보가 울리게 하는 식의
문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께서는 자제들이 알 수 없는 양식에 대하여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시며 "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하셨습니다. 요한이 다른 주석을 달아 놓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그 당시 정황을 생각하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요지를 찾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30절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은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오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 사람들 속으로 나간 후 바로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말하고 있던 순간입니다.
나의
양식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눈에도 사마리아 여인을 따라 떼를 지어 나아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까? 제 눈에는 완연히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의 말이 가관입니다. 그들은 누가 먹을 것을
같다 드렸는가하고 의아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한 껍플 베껴지지 않은 덜익은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의 양식을
말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배속으로 들어갈 음식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초월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이 생각하는 것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깊은 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완연하게 알 수 있는 일들을 그들은 전혀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예를 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나셨음에 대하여 별다른 의심없이 믿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크지 않다고 할
이 없도다"라고 외쳤습니다. 따라서 주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은 이제 곧 하나님 나라에서 나타날 양식 즉 추수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넉 달까지 필요
없다!
예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벙벙한 제자들에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향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것이란" 자기를 향하여 몰려나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과 "온전히 이룸"입니다. 이것이 메시야의 역할이시기도 하며 제자들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물론 이 때 추수를 하기 위하여는 실제로 넉 달이 더 지나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주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양식은 추수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양식은 즉 영적 추수는 세상의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디고네모에게 하신 "바람이 임의로 불되 어디서 불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다 이러하다"하신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현상은 꼭 자연적인 현상과 같이 규칙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믿음생활 속에서 행하는 우리의 실수에
대한 것입니다. 즉 전도란 영적으로 대단한 사람이나 믿음의 덕이나 도덕적으로 높은 사람들이 겪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자신이 누구이신 것을 알리자 그것을 믿는 순간 그녀는 전도자로 변모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현상입니다.
영적인 알곡을 거두는데는 넉 달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
예수께서는 다시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이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가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이 옳도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다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과 다음에
필히 하여야할 일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은 뿌린 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추수를 바라보는 기쁨으로 합니다. 그러나 씨를 뿌린 자가 꼭 추수를 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을 때는 낱알 한 알이라도 거둘 때에는 많은 알곡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가둔다는 말이 옳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추수는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린 자나 열매를 거둔 자는 동일한 기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마리아 여인은 무슨 삯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로부터 먼저 영생을 얻고 영혼의 평안과 심령의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영적인 법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서 일어 날 수 있으나 심음과 거둠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은 것에
참예!
이제 예수께서는 이야기의 초점을 제자들에게 돌리셨습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코피아노)은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의 수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오직
그 열매가 열두 사도 즉 주께서 세우시고 보내신 제자들로 말미암아 추수를 하게 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데는 성경적인 지식과 신학적인 지식이 깊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심령이 변화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 전도는 신학자나 목사들보다 처음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는 이미 그 자신의 삯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수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원수들이 이미 하나님의 밭에 가라지를 갖다가 심었기 때문에 추수는 오직 주께서 주권으로 세우신 그의 제자들 즉 하나님이 보내신 추숫군들이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여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기록하였고 다시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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