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9:19) 너는 진정한 자유자인가?

이요나 2003. 1. 9. 09:57
(고전9:19) 너는 진정한 자유자인가?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우리는 지난 년말 주일예배를 마치고 동경행 비행기를 탓습니다. 나의 스승이신 동경 호라이즌 채플의 가루이자와 산상집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갈보리채플 사역에 헌신 중인 손성실 집사와 모세 형제가 동행해 주어 더욱 의미있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가루이자와 메구미 샤레는 제가 한국에 돌아와 서울 갈보리채플의 개척하고 21명의 한국 성도들과 함께 참여한 지 7년만에 다시 방문하는 일본 북부지방 나가노 현에 위치한 수양소였습니다. 일본 복음의 전성기에 카나다 선교사가 지은 메구니 샤레는 일본의 갈급한 영혼들이 모여 말씀을 듣고 주를 찬양하며 믿음을 회복하기에 적합한 모든 시설을 가춘 정말 아름다운 계곡에 위치한 통나무 산장이였습니다.



우리는 동경 호라이즌 채플에서 송년, 신년예배를 마치고 120여명의 일본인 성도들과 각자의 승용차에 몸을 실고 장장 5시간을 달려 도착하였습니다. 때맞쳐 눈이 내려 우리의 여정을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7년만에 방문하는 메구미 샤레는 조금도 변함없는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2박3일동안 이어진 포도나무의 비밀의 주재로 진행된 세미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일본인 심령속에 빨려들어 가듯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짜임새 있는 세미나의 계획과 진행, 각 부서마다 준비된 헌신자들의 기도와 봉사는 집회의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2003년 신년 벽두에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그룹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여러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잠들어 있던 나의 심령을 깨우셨습니다.



2003년 첫 목요예배인 우리의 성경공부는 작년도에 이어 고린도전서를 공부하겠습니다. 저의 새로운 바람이 있다면 좀더 실제적인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헌신된 젊은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성결한 마음과 준비된 온전한 마음으로 더욱 주 앞에 나아가기로 사모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년도 우리의 목표는 열매맺는 교회 열매맺는 제자 열매맺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갈보리채플은 7년전 중단한 일본선교 헌신자 연수원을 다시 개설할 것이며, 좀더 효율적인 모임을 위하여 헌신과 기도로 모여 조직의 결집을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으로 복음 안에서의 자유자 사역자의 본분과 의무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8장에서 "너희 자유함이 약한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는 바울 사도의 경계를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특히 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아서 금년에는 좀더 모든 언행에서 절제하고 조심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9장 1절에서 자신의 권위적 입장을 밝히며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했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하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3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기 자신을 자유자의 의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바울의 글을 읽으면서 통분하는 바울의 심령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복음사역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에 동감할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말한 바 "자유자"라는 말에 커다란 충동과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라는 말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에 의하여 구속을 받은지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가 어떠한 죄를 지어 육체의 구속을 받았다면 정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유를 박탈 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마약이나 술, 음행 등 육체적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면 자기의 의지적 투쟁으로 그 굴래를 벗어나기까지 자유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유함을 잃어버린 영혼 고통일 것입니다.



과거 나는 오랜세월 영혼의 자유함을 상실한체 방황하였습니다. 태어남으로부터 세상신이 이끄는 대로 욕정과 음행의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매인 죄의 사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때부터 영혼의 자유를 잃고 죄에 얽매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하여 나의 영혼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로부터 나의 영혼은 주의 안식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는 온전한 자유함을 얻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나는 또 다른 것에 의하여 자유를 유린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영혼의 자유자가 되었는데도 온전하지 못한 지식으로 하여 나의 의식과 생각은 얽매이고 구원받은 나의 삶은 맹목적인 종교활동에 유린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유자에 대해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종교활동에 빠진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온전한 영혼의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참 제자"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여기서 "참"이란 헬라어 "알레티노스"로서 영어 "TRUE"에 해당하지만 실재적(REALITY)인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 그 자체는 아직 그 실제적 자유함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여야 주께서 말씀하신 바, 자유자가 될까요? 주께서는 "너희가 나의 말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속에 성취되는 열매의 비밀을 설명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주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여지기를 기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방법과 해결책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말함으로 진정한 자유자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 세움을 받아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말함으로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의 직함을 받은 자유자로서의 종의 신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9장 전체에서 진정한 자유자로서 살아야할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복음 사역자의 누릴 자유함에 대하여 자신을 들어서 설명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함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자유자는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바 위치를 지키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율법에도 복음 사역자들이 마땅히 받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은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자는 그리스도의 율법에 매여야 한다고 역설하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위치와 사명에 대하여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부르시고 택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떠나 보다 높은 곳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바울은 23절에서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든 것"이라는 부분은 "이것 대신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는 말 속에는 고린도 교회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복음 사역자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따를지라도 자신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복음사역에 헌신 할 것임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진정한 복음 사역자의 길을 깨닫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제자들에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가르치며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의 제자들에게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목적과 방향을 잃은 체 절제를 하지 못하고 달려가며 다투는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입니다. 남을 구하고 자신이 버림을 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금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그 맛을 잃어 내어버린바 된 것과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자유함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혹시 아직 자유함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10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