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채플특징

갈보리채플 특징-제7장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이요나 2006. 7. 15. 15:13

갈보리채플 특징- 제7장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서울 갈보리채플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린도후서 4:5)


갈보리 채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우리의 경배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초점으로 바라보는 일에 방해되는 행동이나 어떤 일도 허용치 않는다. 예를 든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앉아서 찬송을 부를 때에 한 개인이 일어서 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한 사람이 일어나는 순간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그가 일어서 있을까?” 이때에 사람들의 초점이 예수님께로 향하지 않고 서있는 사람에게로 향하게 된다.

흥미 있는 일은 눈은 움직이는 물체를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배 중 많은 경우에 혼자 일어서 있는 자를 보면, 서 있는 경우에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없으므로 손을 흔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끌게 하며 동시에 사람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저 사람이 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사람들의 주의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잘 다루어야 함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배시간에 이런 행위를 허용하면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보려고 하는 자들이 이상히 여겨 다시는 이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일 어떤 교회에 가서 이러한 광경을 본다면 목사님 설교는 좋으나 예배 중에 이상한 일들이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교회에 교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내가 오래 전에 한 갈보리 채플교회에 있을 때에 그 교회에서 사람들이 예배 중에 개인적으로 일어서는 것을 허용했었다. 불행하게도 한사람이 이러한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보통 그 사람을 따라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교회에 한사람이 저녁마다 집회에 나와서 앞좌석에 앉아서 일어서는 정도가 아니고 일어서서 춤을 추는 것이다.

 

이 사람은 정신이 조금 실성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고 그는 정신과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공중 앞에서 하고 싶은 이상한 일들을 할 때에 허용되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의 주의력을 극도로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목사에게 말을 하였더니 그 목사는 이러한 일에 대해 동조하며 그 행동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잠잠히 관찰하리라고 생각했다.

갈보리채플 코스타메사 교회에서 만일 집회 때에 누가 일어서면 안내자가 그 사람을 교회의 맨 뒤에 인도하여 대리고 와서 부목사가 그 사람에게 부드럽게 사랑으로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부목사는 그들에게 설명하기를 이러한 행동은 예배드리려고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의 주의력을 산만케 하므로 금한다고 말해준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려고 교회에 왔는데 성도들의 주의력을 주 예수께로부터 돌려 자신에게 이끌려고 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사람들의 주의력을 당신 자신들에게 이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사람들이 예수께로 향하는 초점을 잃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사랑으로 그들에게 이러한 일을 하지 않기를 부드럽게 권고한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치 않고 화를 낸다면 이 사람들의 행위는 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부가 육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라면 영적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들은 “오 내가 깨닫지 못했군요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권고를 거역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육적인 사람임을 간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Matthew 6:1). 주님께서 설명하시기를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때 그 태도가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좋던 싫던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 앉아 있는데 만일 당신만이 일어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주의력을 당신에게로 집중시킬 것이다.

내가 다른 갈보리 채플에 있을 때에 여자들이 긴 옷을 입고 보닛(Bonnet)모자를 쓰고 앞자리에 앉아있는 성가대의 찬양에 맞추어 몸으로 표현하여 춤추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가장 주의를 산만케 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들의 우아한 춤은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날 밤 나에게 찬양으로 경배하는 일에 대해서는 큰 유익이 없었다.

 

이 여인들의 우아한 움직임을 관찰했고 그들이 노래의 내용을 몸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래서 예배를 마친 후에 또 다시 내가 그 교회 담임목사에게 말을 하였다. 그 목사는 그 말귀를 알아듣고 이러한 일이 주의를 산만케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로 몸으로 표현하는 춤추는 것을 중단하였다.

우리는 스위스의 베즐시에 있는 한 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었는데 이 교회는 아마 유럽에 있는 가장 흥분되는 교회 중에 하나였다. 앞으로 부흥 가능성과 그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 생각한다면 그때 당시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큰 프로테스탄트 교회라고 믿었다. 매년 나는 베즐에 있는 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했다. 이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갈보리 채플의 모든 비전을 포착하고 성도들의 찬양과 좋은 경배 그룹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주일 밤이면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고틱스타일의 교회당에 모여들었다. 국영교회에서 그들에게 장소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국영교회는 주일 아침만 예배를 드리는데 거기에는 여섯 명의 노인들만 참석하기 때문에 그 교회 감독이 갈보리채플이 주일 밤에 장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곳은 난간까지 사람이 꽉 차있었고 생동하는 사역으로 전도의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커피 숍도 열고 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히피와 마약 중독 된 젊은이들을 다루고 있었다. 교회는 마약소굴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젊은이들이 거처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했던 것이다. 교회는 그곳의 특유한 기념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경영하여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고용되어 거기서 일을 하고 그들이 그림의 예술에 재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이점이었다.

지난번 내가 갔을 때에 두 여자가 러어타드를 입고 몸으로 표현하는 춤을 추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순절 계통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부목사를 초빙하여 그들은 춤추는 일에 관련하고 있었다. 담임목사가 강하지 못해서 이 문제를 잘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배 후에 나는 담임목사에게 춤추는 일을 즉시 중지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예배의 모임을 주관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설교하기 전에 나를 소개하는 시간이 왔을 때 이 여자들이 강대상에 올라가서 목사의 귀에 무엇이라 속삭이더니 노래를 한번 더 부르게 하고 또 한번 춤을 추는 것이다. 예배의 모임이 춤추는 여자들이 주장하고 있으며 목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에 대해서 담임목사에게 말을 하였으나 그는 이 문제를 다루기를 원치 않았다. 그 결과로 오늘날 베즐에는 교회가 없다. 담임목사는 떠나고 오순절파가 교회를 주장하고 있을 때 교회는 그들을 추방하고 지금은 그곳에 교회의 사역이 끊어지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가 추구하는 초점의 중심이 되어야 함이 중요하다. 그 이외의 것들은 최소화해야 하며 만일 예수님께 향하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이 나타날 때에 이것을 반듯이 다루어 배제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공중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것을 지적하여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성경대학을 다닐 때에 한 학생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항상 앞줄에 앉아서 대게 예배 중에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감동적인 순간에 그는 몸을 바닥으로 향하여 앞으로 꾸부리고 그리고 일어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럴 때에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한다. 이러한 순간 모든 사람의 초점이 할렐루야라고 고함을 치는 이 괴상한 친구에게 집중된다.

 

설교의 중점이 상실되고 말았다. 그는 그의 행동 때문에 많은 설교가 파괴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중지 시켜야 하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나는 그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의 바로 뒷줄에 앉아서 그가 할렐루야 소리를 지르려고 앞으로 몸을 꾸부릴 때에 나는 그의 어깨를 꽉 잡고 신경을 꼬집으면서 그를 꿇어앉도록 꼭 붙들었다. 아무도 그를 중지시킬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그러한 행동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예배를 산만하게 하는 것이었다.

수년 전에 내가 콜로라도 스프링에 있는 수양회에 참석했을 때에 앞줄에 얼간이 같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 얼굴만 보아도 그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며 경배를 하고 있을 때에 이 사람은 교회의 복도를 아래위로 뛰어 다니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담임 목사에게 “왜 이러한 일을 허용하는가?”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들은 자유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하기를 “여보시오 저것이 자유가 아니다. 만일 내가 당신 교회에 손님으로 처음 왔을 때에 이 사람이 행하는 광경을 본다면 나는 다시 이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며 이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중지시킬 용기가 없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수용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일을 한다고 지탄받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영감은 소멸할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주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산만케 하여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끌고자 추구하는 영감은 소멸되어야 한다.

과거에(이것이 갈보리교회에서 오래 계속된 것은 아니다) 예배 중에 사람들이 일어나서 방언을 하려고 하는 일이 있었다. 이럴 때마다 안내자가 가서 그들을 밖으로 인도하여 부목사들이 그들에게 갈보리채플에서는 오순절파나 은사파(Charismatics)에서와 같이 예배 도중에 공중 앞에서 방언이나 예언을 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나는 강단에서 방언의 은사는 신약에서 허용하는 은사임을 설명하고 방언에 대한 적절한 위치를 회중에게 잘 설명한다. 나는 바울이 지적한바와 같이 그가 교회에서 가르칠 때에 일만 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 마디의 말이 더 낫다고 말한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방언을 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당신의 개인적인 경배에서 방언은 자신에게 큰 덕을 세운다고 했다. 방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갈보리채플 같은 크기의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방언을 통변하는 말을 전혀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의 특수한 방언의 은사는 통변을 겸한다 할지라도 갈보리채플교회와 같은 큰 모임의 예배에서는 모든 자들에게 덕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없는 환경이므로 우리는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 예배 시에 방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언을 개인적인 기도와 경배에서 이 은사를 사용하고 실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믿는 자의 모임의 그룹이 있다면 모여서 주님께 구하며 기도할 때에 통변을 겸한 방언의 은사는 허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곳에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방언으로 인하여 혼동과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 저녁 예배 후에 후광(After glow)집회를 하는 것과 같이 특히 믿는 자들에 국한하여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모임에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통변을 겸한 방언이 덕을 세우고 허용된다. 성도들이 오로지 주님만을 찾으며 성령의 충만이 있는 환경에서 이러한 방언은사의 사용이 허용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9절에서,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애를 쓰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심각한 행동임을 깨닫고 있는지 어떨 때는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우리가 참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돌려 우리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아주 심하게 거역하는 일이다. 나는 결코 이러한 범죄의 자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구약에서 이러한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한 흥미 있는 경우를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완성하고 거기에 필요한 기구들을 모두 안치 한 다음 그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이 모이고 사람들이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모두 봉사하고 있을 때에 아론은 그의 긴 제사장 옷을 입고 그의 아들들도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일이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갑자기 하나님의 불이 제단 위에 있는 제물에 붙어 불붙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점화되어 붙는 불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을 보고 놀라 큰 함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심을 인지 할 때에 사방에서 흘러나는 큰 흥분과 절제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때에 아론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답이요 다른 하나는 아비후였다. 이 두 아들이 자기의 향로에다 이상한 불을 댕겨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에 쓰려고 했던 것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제단으로부터 불이 나와서 나답과 아비후를 태워 버렸다고 했다(레위기 10장).

나는 믿기를 그들이 순간적인 흥분과 감정에 사로 잡혀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제사장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행하였을 때에 그들은 불에 타죽고 말았다.

나는 이상한 불에 대해서 아주 의심스럽다. 당신도 이상한 불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감정적인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께로 주의를 돌리기 보다 쓰임 받는 도구에게 주의를 끌어 보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초대교회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서 볼 수 있다. 여기서도 또 다시 한 개인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의 재산을 팔고 일부를 교회에 바친대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바친 것처럼 교회에 보고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저들을 보시오 자기의 재산을 몽땅 하나님께 다 바쳤어요”라는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고 행한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일부는 바치고 다른 부분은 숨겨 두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칭찬과 영광 받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육의 사람은 아주 부패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아주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의 육적인 사람은 내가 실제보다 더욱 신령한 사람으로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때로는 우리가 일부러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상을 주려고 애쓴다. 이러한 것들은 교회의 저주 중에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목사들은 영적인 면이 없는 데도 깊은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인상을 심어주려고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목소리부터 아주 거룩하게 발성하는 것이다. 그들의 두 손을 특별한 모양으로 모으고 말하기를 “오, 사랑하는 여형제여 나에게 모두 다 말하시오”라고 하며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며 그들의 행동은 거룩한 사람으로써 인상을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해하고 있는 말씀을 알기를 원하고 또 자기들이 여러 시간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그들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아시다시피 하나님께 대한 큰 결단력이 필요하지요”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실수에 빠지기 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아주 조심해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 죄에 대하여 심한 죽음이라는 값을 치렀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않으신다. 조심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주의력에 중심 초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경배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초점으로 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