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눅4:1)사역의 세가지 시험

이요나 2004. 7. 25. 05:35
(눅4:1)사역의 세가지 시험 [사이버대학]

(눅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 돌아 오사 관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누가복음을 시작한 지 일년이 다 되어서야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미국 땅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6월7일 미국에 도착한지 벌써 달포가 지났습니다만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말과 같이 바다낚시와 에메랄드 빛 더시틴 바다물 놀이에 그만 나의 본분을 잊고 있었는가 봅니다.

십년을 하루같이 달려 왔으니 한 일년정도 신선노름에 빠진들 어떠하랴 하겠습니다만 내 심령 가운데서 주의 말씀을 향하여 도리질하는 사모의 멸정이 나를 오히려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놀며 지낸 것은 아닙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시간을 빼앗겼던 마음이였습니다. 다행이 오늘 금식의 영이 나에게 임하여 다시 말씀과 대면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말씀은 누가복음 4장입니다. 지난번 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족보와 함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던 부분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신 후 주께 나타났던 일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험의 조건
저자 누가는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셩령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나아가 사단의 시험을 받은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읽을 때 이 내용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하여야 할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셨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께서 이끌려 가신 부분은 현실 속에 펼쳐진 영적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 속에 펼쳐진 영적공간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만약 우리 믿는 자라도 일상생활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충만한 영적 공간에 셋팅된 상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오직 말씀과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성령의 영적 공간에 셋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는 조건 중 가장 첫째는 사람이 사단이 지배하는 물질적 공간을 벗어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현실적 즉 물리적인 상황입니다. 지금 사단은 예수님의 현실 조건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금식을 하신지가 40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식과 영적관계
여기서 금식에 관한 것을 살펴볼까 합니다. 금식이란 인간의 상태를 물질적 현실에서 격리하여 인간의 마음이 영혼의 주체인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환경상태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여 온전한 믿음의 공간으로 이끌고 가기 위하여 금식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과연 인간이 40일간 금식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의문이 갑니다마는 금식을 하면 우리의 5감이 상실되어 우리의 영이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상시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5감 즉 미각, 시각, 청각, 후각, 감각이 현실적으로 충족되어 주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입니다. 목사가 되기 바로 전입니다만 21일간 금식을 한 일이 있습니다. 3일이 지나니 미각이 점점 무디어지고 5일이 되면서 미각이 완전히 상실된 느낌었습니다. 육체는 힘이들고 허기에 지쳐있지만 내 영은 더이상 음식에 의지하지 않는 상태로 몰입되고 있었습니다. 내 육체가 내 믿음의 의식에 의하여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진 상태라고나 할까요.

이처럼 금식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맑게하여 내 영으로 하여금 또 다른 공간에서 주님과 독대하여 영적 오감을 통하여 세미한 음성을 듣는 신비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오늘 나는 이것을 사모하여 다시 금식을 시도해 보지만 과연 주님과의 충만한 독대를 하게 될지 의문입니다.

'만일'이라는 마취제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 덩이가 되게하라"(3절)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나라 하였느니라" 답하셨습니다., 여기서 '만일'이란 단어는 매우 의미 심장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사단이 사람을 유혹할 때 사용하는 첫마디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이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네가 동산의 모든 과일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더냐" 물었습니다.

이것은 자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 상대의 지식적인 부분에 대한 시험인 것입니다. 여기서 이와는 나름대로 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호기심과 욕망은 그 지식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도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십일조를 떼 먹으면 정말 야단 맞을까? 주일을 빼먹으면 혼나게 될까?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들에 대하여 '만일'이라는 단어를 붙여 놓고 스스로의 시험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그 시험을 경험하고자 하는 충동에 빠져 버립니다.

사실 주일을 범하여도 벼락을 치시지 않고 십일조 떼어먹어도 월급이 내려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내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버려 하나님의 금하신 일들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돈을 버는데 더 악한 일도 경험할 수 있는 죄에 용감한 용사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역의 목표가 무엇인가?
사단의 두번째 시험은 권세와 영광이였습니다. 하긴 사람이 먹을 것 다음은 명예에 관한 것이지요. 이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목사가 되면 세상에서 받는 시험이 먹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라지요 마누라는 돈달라고 하지요, 옆집 목사들 사는 것을 보면 정말 눈돌아 가는데 때거리를 걱정하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게 여기서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나는 그래도 다행히 첫번째 서험은 잘 넘긴 것 같습니다. 아직도 때거리를 걱정하는 편이지만 혼자 몸뎅이니까 없으면 굶으면 되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말씀을 저버리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번째 시험이 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귀는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니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때 예수께서 '아니다 부귀와 영화가 네 것이 아니다'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부귀 권세와 영광이 마귀에게 속한 것을 인정하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모두 이 부분에서 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권세와 영광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답변 속에서 권세와 영광이 우상 숭배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멋대로 한번 해봐라
마귀는 세번째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려라"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두번째와 세번째가 바뀌었습니다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가는 사역자들이 가장 잘 넘어지는 부분이 이에 있음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사단은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니 네 마음 것 해보라는 충동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권세와 영광을 갖고자 합니다. 이것은 어쩜 인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의 올무가 되고 있습니다.

사역자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백성이 무지하여 망한다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와 계획들이 기로괴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마귀의 이러한 유혹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눌을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가지 중용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셨다는 것미며 또 그러한 중에서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존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사역자들의 원칙인 것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앞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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