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돼지를 따라가지 말라!

이요나 2007. 1. 2. 13:07
돼지를 따라가지 말라!
 “내가 과녁을 쏘려함과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 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 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삼하20:20-22)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복돼지의 해라고 해서 이 해에 아이를 낳기 위해 야단법석들입니다. 참으로 사람들 마음이 간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떠도는 세상 풍문에 들떠 자기 분복에 이르지 않을 복덩이라도 쥘까하여 안간힘을 쓰니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세상 살아가면서 내가 좋던 싫던 365일마다 새해를 마지해야 합니다. 새해를 기준으로 우리에게 늘어가는 것은 인생 계급장뿐입니다. 어려서는 이 날이 왜 그리 기다려졌던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는해를 바라보는 요나의 심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서슬퍼만집니다.

 

사실 해가 바뀐가고 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날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 왔던 날들의 형태와 구조와 질서는 그대로입니다. 바뀌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일 뿐입니다.

 

딱이 돌이켜 볼 것조차 없어 고즈녁히 나홀로 단장해야 하는 2006년 마지막 밤은 처절하리만큼 냉엄하기만 합니다. (이럴 때는 옆에 앉아 손잡아 줄 마누라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망각의 시간이 소망의 해를 마지하는 전야제일진대 소홀히 지낼 수 없어 작은 등불을 켜 놓고 긴머리를 땋아 올려봅니다.

 

참으로 나는  주 앞에 염치없는 종이 틀림없습니다. 매년 빈 주머니를 차고 들어와 넙죽 없드려 채워주소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제 스스로 염치를 치를 나이가 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주변머리 없는 무익한 종입니다.

 

뻔뻔한 얼굴을 들고 주 앞에 선 나에게 주의 사자가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갑니다. 뻔뻔한 얼굴을 들고 주 앞에 선 나에게 주의 사자가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갑니다.  “내가 과녁을 쏘려함과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 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 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삼하20:20-22)

 

사자가 내게 던진 메시지는 다윗과 요나단의 대화 속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때는 아직 다윗이 왕권을 잡지 못하고 사울왕의 군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승승장구 다윗의 영명함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시기와 질투에 쌓인 사울왕은 사위된 다윗을 죽이려 한 계책을 꾸미기에 이릅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계책을 알아챈 요나단은 친구이자 매제인 다윗에게 '내가 너를 평안히 보내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말하며 너는 내가 사는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나와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라' 당부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았다 기록하였습니다(삼상20:17).

 

다윗을 죽이려했던 초하루날 가족 모임에 다윗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사울왕은 그 기밀을 다윗에게 알려 준 아들 요나단을 향해 창을 던지며 '이새의 아들이 사는 동안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라' 심히 책망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을 향한 사울왕의 시기와 분노가 어떠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은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곳으로 나가 아이의 머리 위로  화살을 쏘며 화살이 네 앞 쪽에 있지 아니하느냐 외쳤습니다. 아무 뜻도 모르는 아이는 화살을 주어 성으로 돌아가고  다윗은 요나단과 미리 정한 약속을 따라 사울의 사슬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요나단과 다윗의 거리가 그리 멀리 떨어진 위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화살을 주어 성으로 돌아 간 후 두 사람이 부등켜 앉고 작별인사를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굳이 화살을 쏘는 포퍼먼트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은 신년을 맞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씀 속에서 복음의 사역자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자 할 때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정확히 알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 화살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단과 이미 서로 약속된 화살이였기 때문입니다. 화살이란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화살이 과녁을 향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미없는 화살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신년이면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면 우리가 세웠던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 가운데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허비한 것입니다. 이렇게 허비한 세월들은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출발할 때 그것이 주의 뜻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어떤 증거와 확신을 갖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였다면 실패할 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게 될 때 우리가 행하고자 할 때에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를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을 따라 나선다면 우리는 매번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몇일전 어느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형제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라 하겠습니다만, 그러나 그의 믿음이 그 말씀과 합하지 못하였다면 그의 판단은 자기 편견에 치우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 중에서도 신년운세를 점치듯이 말씀을 살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러나 분명 오늘 주의 사자가 나에게 전달한 메세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수천년 전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언약한 메시지이지만 오늘 이 메시지는 말씀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행해야할 모든 규범과 질서와 예정과 계획들이 균형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어 하나님의 지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이 할지라도 동일한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지혜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알고 출발하느냐 알지 못하고 출발하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과 실패의 원입니다. 오늘 메시지 속에는 한 아이가 나옵니다. 그 아이는 화살의 따라가기도하고 주워 오기도 하지만 화살이 뜻하는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에 살면서도 주의 뜻을 모르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우리는 어린아이를 머리 위로 달려 오는 화살을 보고 자기의 갈 방향을 분명하게 확정하게 될 것입니다. 신년을 맞는 나는 오늘 한 아이를 향해서 날아 오는 화살과 함께 강하게 들려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이제 내 모든 생각과 계획들을 내려 놓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출발의 방향을  알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다릴 것입니다. 

 

신년을 맞는 여러분들도 아무 화살이나 따라 나서지 마시고 서로가 알도록 약속된 말씀을 따라 행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제 말은 새해는 돼지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년 아침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