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방언은사6) 방언의 아름다움

이요나 2007. 2. 14. 12:02
(방언은사6) 방언의 아름다움

*서론*
방언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자기의 입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음을 할 때 우리의 지성은 반발하게 된다. 엄격히 말하여 방언은 지성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언은사의 목적이나 필요 이유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말로도 충분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구태여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는가?" 이러한 이유는 우리의 지성이 방언으로 하여 모욕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타나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방언은 아무런 가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해도 우리는 인간에게 주신 언어와 다른 표현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인데 구태여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것에 대하여는 우리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으로는 납득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생활 속에서 필요하셔서 주신 것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우리의 믿음의 봉사는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요구에 결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선물로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의 지성이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부족을 느껴 보았는가? *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우리가 알던 모르던 각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데 외국 사람들이 어떠한 언어로든지 서로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통하고 알고 있는 지식들을 교환하기도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외국여행 중 어느 세미나에 참가해보면 자기가 그 강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경우 그 곤혹이란 견딜 수 없습니다. 완전히 홀로 바보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들은 어떠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웃는데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여 그들의 입술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곤혹을 치루워야 합니다.

저는 미국을 갈 때마다 이러한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때는 라틴 계통의 목사가 나와서 강의를 하고 만약 당신이 그러한 일이 일어 날 때 마음 속에서 당신의 이성으로 거부하고 의심하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하나님과 합의된 언어를 통하여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마음으로 방언을 사모하고 자신의 지성의 반발을 억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부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가슴이 무너지는 일을 겪게 될 때 그 때의 극한 슬픔을 표현할 길을 잃고 맙니다. 정말로 감탄할만한 자연경관을 본다든가 아름다운 그림을 본다던가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서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를 할 때 그 지극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 언어로 기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방언입니다.

* 다윗이 말이 막혀서 *
사무엘하 7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윗이 말문이 막힌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이기고 평정한 때 그 때에도 하나님은 휘장 가운데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때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집을 지을 마음이 생겨서 나단에게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 때 나단은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하오니 왕의 마음에 있는 바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밤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시어 다윗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백향목 집을 지으라고 명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나단이 하나님께 마음으로 받은 계시를 다윗에게 모두 전하니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인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시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누가 다윗을 따르랴!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열방들을 제압한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감히 인간인 주제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만군의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 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후에야 "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까?"하고 말을 멈추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주의 백성을 영원히 다스릴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메시야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서 하나님을 뜻하는 것인데 아담에게 계시된 이 말씀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되었고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자신의 혈통 속에서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 속에 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말씀인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윗의 시편을 보면 감히 인간의 입으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찬양들을 토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영광과 감사와 찬송들 참으로 인간의 입으로 가히 나타내지 못할 언어들을 구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윗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인간의 입으로 토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아름더운 시를 쓸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더 이상 영화롭게 표현할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말 할 수 없을 때! *
다윗의 시편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토할 수 있는 가장 극치의 찬양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름다운 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신 방언의 은사인 것입니다. 다윗은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귀하심과 거룩하심에 대한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것이지만 방언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어인 것입니다. 나는 몇 마디의 바바버버를 가지고 하나님의 방언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은 방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마디를 가지고 계속 지껄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 옆에 있으면 그가 말하는 것을 모두 외울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것은 방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입으로도 그보다 더 아름다운 말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과 통하는 말 즉 방언의 선물은 그야말로 듣는 모든 사람들이 감탄할 아름다운 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방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방언은 아름다움의 극치*
인간의 최고급 선물이라도 감격하여 말을 잃어버릴 것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방언이야말로 거짓과 꾸밈이 없는 성결하고 고귀하며 더 없이 아름답고 정결하여 그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방언을 듣는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교회 가운데 횡행하고 있는 거짓 방언에 대하여 우리는 좀더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그들 중에 더럽힘을 당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범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광이시며 우리의 신이신 주 여호와와 통하는 우리의 언어는 정말로 아름답고 거룩하고 지구상의 어느 새도 그 소리를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의 체험을 한번 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당신은 더욱 고귀한 믿음으로 주에게 간구 하십시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과 아름다운 노래를 드리는 한 마리 고귀하고 거룩한 새가 되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우리가 함께 그러한 날을 고대합시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의 날을 평안과 기쁨으로 지내십시오. 주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