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휴거 대환난

제4장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일들

이요나 2007. 2. 14. 19:43

제4장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일들

 

요한계시록은 대장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계시록 1장 19절에서 요한은 주님으로부터 그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이 일 후에(KJV) 될 일”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여기서 ‘이 일후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타 타아타’(meta tauta)이다. 그런데 1장에서 요한은 자기가 본 것들을 기록했다.

 

 영화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른 속에 일곱 별을 들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 계시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서 2장과 3장에서 요한은 현재 있는 일들을 기록하였으니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이는 또한 교회사 가운데 나타난 일곱 시대를 대표하기도 한다.)

세번째 부분은 4장에서 시작된다. 4장의 첫마디는 바로 ‘메타 타우타’,즉 ‘이 일 후에’이다. 여시서 ‘이 일 후에’란 ‘어떤 일 후에’를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다. 그에 대한 자명한 답은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 후에’일 것이다.


2장과 3장에서 교회에 관한 일들을 언급 하였으므로 4장 1절을 이에 입각해서 다시 쓴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교회에 관한 이 일들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메타 타아타’가 여기서 또 한 번 나온다)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나는 이 구절이 교회의 휴거를 묘사하고 있으며,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성도들을 올라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으 소리라고 믿는다. 바울은 교회가 휴거될 때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살전 4:16; 고전 15:52) 여기서 말하는 ‘하늘에 열린 문’이란 마지막 때의 신실하고 참된 남은 자인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연상시켜 주는 구절이다-”볼지어다. 내가 네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리.”이제 이 문이 하늘에서 열리고,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예수님은 그 교회으 일부가 대환난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 하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책망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이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함이요, 그녀가 예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머ㄲ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되 그녀가 자신의 행위를 회개치 않을 경우 대환난 가운데 던질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에 확실하게 드러난 교회에 대한 경고는 회개를 하든지 대환난을 겪든지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분명히 시사되어 있는 바는 회개할 경우 대환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시록 3장 10절에서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르시기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셨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주님으 교회가 대환난을 피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일부분의 교회는 대환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 가운데 자신들의 영적 간음을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휴거를 놓치고 대환난을 겪고 말 것이다.


계시록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4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을 묘사한 부분을 만나게 된다. 그보좌 주위에는 장로들이 앉아있는 24개의 작은 보좌들이 있고, 또 네 생물이라는 것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룹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4장에는 하늘나라의 찬양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5장에는 안팎으로 글이 쓰여졌고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 책이 나오는데, 우리는 곧 한 천사가 이 두루마리 책을 가리키며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고 말하는 장면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책을 펴거나 인을 떼거나 할 만한 이가 없어서 요한은 크게 울고 말지만 그 곳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그에게 위로하기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으 뿌리가 이기었으므로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뗄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어서 유대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을 한 채 앞으로 나아와서는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서 그 두루마리 책을 취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나면 하늘에서 부르는 성도들의 노래가 나오는데 그것은 새 노래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들을(KJV-참고로 NIVS나 한글 개역성경에는 ‘사람들을’이라고 되어 있음)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로(KJV-개역성경은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어떤 학자들은 이 노래의 가사가 “일찍 죽음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저들을’(혹은 ‘사람들을’)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극 소수으 사본(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 중 5부 정도)에는 그렇게 되어 있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1,000부 이상의 대다수 사본과 전수사본(Textus Receptus,혹은 TR)에는 분명히 킹 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가 대다수 사본을 따른 번역이다.


자기들을 지구상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아마도 그러한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단 하나, 교회밖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재림시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신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재림 전에 일어날 여러 가지 대환난관련 사건들을 열거하신 후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즉, 대환난의 여러 사건들)들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부분이 나온다.


계시록 5장은 바로 그와 같이 교회가 대환난을 피한 뒤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인자 앞에 서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 살펴보아야 할 점은 교회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양의 새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는 시점이 바로 두루마리 책의 일곱 인 중 아직 그 하나도 떼어지기 이전이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 새 노래로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그룹으로서의 교회는 이 시점 이후 계시록에서 한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으며, 이 다음 번에 교회가 한 그룹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백마를 타고 지상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이다.


7장에 등장하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의 무리는 교회가 아니다.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이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요한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으 위치는 교회가 누릴 위치와 사뭇 다른 면이 없지 않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 위에서 왕 노릇할 영화로운 미래에 대해서 노래하는 반면에, 이들은 성전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 한다. 또한 13장에 보면 귄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우기 위해 나타날 불법의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들 ‘성도들’도 교회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법의 사람과 싸워 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도 이같은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다니엘 7장 21절에 보면 ‘작은 뿔’곧 적 그리스도에 관해 적혀 있기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음부의 귄세가 주님의 교회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따라서 계시록 13장이나 다니엘 7장의 “성도들”이 교회의 일부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결코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이길 수 없을 것이므로... 이 내용들은 부정문 대전제와 긍정문 소전제로 이루어짐으로써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삼단논법을 이룬다.


대전제:음부의 귄세는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소전제:이들 성도들은 적 그리스도에게 지게 되어 있다. 결론:이들 성도들은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 성도들은 마태복음 24장 31절에 나오는 ‘택하신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일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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