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6장-4) 간섭 받을 때가 좋은 줄 알라!

이요나 2007. 2. 21. 13:59

(창세기6장-4) 간섭 받을 때가 좋은 줄 알라!

 

(창세기6:3-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중략)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청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간섭받기 싫어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 남으로부터 간섭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들도 자기가 하는 것을 못하게 하면 성을 내고 울어 버린다. 이것은 어쩜 인간의 본능적 행동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자결권"이다. 그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스스로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인간도 하나님과 같이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과 도덕적 사고와 지혜와 지식의 탐구를 통한 교제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다루시고 계신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세분이 의논하셨고 소돔성을 멸하실 때에도 세분이 오셨다.

 

이 때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포함시키셨는데(창세기18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계심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인격을 이루는 요소에는 지식과 의지와 감정이 가추어져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시며 자신의 뜻을 세우시고 지혜와 지식으로 나타나신다. 따라서 그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도 지, 정, 의를 갖고 자기의 지혜와 지식에 따라 뜻을 세우며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는 자기의 감정과 뜻을 바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쓸개빠진 사람이라고 한다. 이만큼 인간은 독립적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간섭을 받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궤도를 이탈한 인간들"

그러나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부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천지 만물의 모든 창조의 질서는 그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지혜와 지식에서 나온 작품이므로 모든 만물은 주께서 설정하신 질서의 궤도에 놓인 부속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부터 지금까지 우주의 질서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이 땅의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들은 수천 년을 두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간 속의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 즉 도덕성, 아름다움, 고귀함, 사고력 등 경외롭고 신비스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의 거룩한 품성이 무너져 버리고 파렴치하고 시기와 질투와 탐욕과 더러움 속에서 썩어 가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지구의 구성체인 자연 생태계도 계속 파괴되고 있다.

 

만약에 선로 위를 달리던 지하철이 자유를 외치며 궤도를 떠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처럼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이 땅 안에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심판이요 또 하나는 불의로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의 심판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을 멸하는 사람들을 향한 심판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롬8:21)고 기록하였다.

 

그러면 이렇게 궤도를 떠나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보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자유는 능력자의 질서로 설정된 영원한 안식 속에서 주어진다.

 

그러나 그 궤도를 벗어나면 흑암에 유리하는 별들과 같다. 오늘 본문에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라는 말씀은 마치 자식의 품을 떠나려는 자식을 마지못해 떼어놓는 부모의 쓰린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백성을 품으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희를 암탉이 병아리를 품으려 하듯이 너희를 불렀다"고 하셨다. 오늘의 본문은 인간을 버려야하는 하나님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어버린 사람들의 말로"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들의 말로는 과연 어떠할까? 우리는 창세기 4장에서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예물을 드리다가 거절된 가인의 말로를 보았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사람들 즉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증명한다.

 

또한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여 돌아 설 수 없는 죄에 빠져들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된 가인의 후예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 땅 안에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고자 하는 만행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속성을 증명한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하나님을 알만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한 자들이 받는 형벌이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한다. 로마서 1장18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기록하셨고 다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 속에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태어남으로부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받은 선지식들이 많다. 어쩌면 세상은 그들로 하여 발전되고 이끌어져 가고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축복을 주신 것은 오직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한다"(롬1:20)고 진술하며 다시 이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므로 하여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었다"(롬1:21-24)고 고발하고 있다.

 

이 말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일체 간섭하지 않겠는다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죄의 속에 던져 버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가 자기의 자녀들을 아무런 간섭 없이 키우게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청소년 범죄를 살펴보면 그 대다수가 결손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부모는 자녀들의 울타리이기도 하지만 삶의 모델이기도 하다.

 

어떤 학자는 세상에서 범죄를 일삼은 아버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났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들에게 아버지는 가치기준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라는 대상은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 또한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들은 술을 좋아하며 구타하고 욕설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상성격의 소유자가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 때부터 주워진 환경 속의 현실들이 삶의 원칙으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어린 자를 실족시키는 자는 연자맷돌을 지고 바다에 던지우리라"하신 말씀도 천국의 구성원이 된 초신자들에게 잘못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지적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

한글 개혁 성경의 "나의 신(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는 킹 제임스 성경에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니"라고 번역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신(神)이 죄성의 육체 속에 거하여 선과 악에 대하여 간섭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은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또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뜻을 저버리고 계속 범죄를 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인격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된다.

 

이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음행을 피하라고 경계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몸을 성전으로 삼고 거하시기 때문이다. 다른 범죄보다 음행은 육체로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하신 거룩한 전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더러움에 내어버린 자들의 말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다"(롬1:26-27)

 

또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잃어버린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어 합당치 못한 일들 즉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 등을 일삼으며 교만하여 남을 능욕하고 자랑을 일삼으며 악을 도모하는 무정하고 미련하고 무자비한 자가 되어 늘 남을 배반하고 부모에게 패역하며 자기들의 죄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알고도 자기만 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을 하는 자들을 옳다고 한다.

 

성경은 이들이 받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하여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10"26,27)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도 된 우리는 성령으로 쓰신 성경의 말씀을 깨달아 말씀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그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을 깨달아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찬송하며 하나님을 높히고 우리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실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