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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77:12) 영혼의 자각

이요나 2007. 2. 26. 10:23

(시77:12) 영혼의 자각

(시77:12)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시편77편은 73편과 아주 흡사한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한계와 무지를 통감하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실패를 거듭합니다. 주 여호와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면서도 인생의 문제를 만나면 낙담하고 실망하여 우울증에 빠져 버리기 일 수입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한 무수한 고통들을 감지할 수 있으며 그들도 우리와 같이 연약하여 낙담하고 두려움에 떨며 자기의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 울부짖는 기도

오늘 시편77편에서 우리는 일에 실패하여 낙담하고 극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와 깊은 우울증에 빠졌을 때 그 환난의 늪에서 극복하는 방법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씩은 겪어야 할 일들입니다.

 

   A. 내 음성으로

아삽은 1절에서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서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로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내 음성으로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가장 큰 잘못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문제들을 만나면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래서 신부나 목사들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며 또 그들에게 기도를 받고자 합니다.

 

천주교도들은 자기의 잘못을 신부에게 고하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고 내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똑 같은 죄를 또 다시 짓고 있습니다.

 

자기의 죄의 고통을 남에게 말하여 문제를 토해 버렸으므로 이제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고 그가 나를 대신하여 기도하였으므로 내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도의 독심술이며 심리학으로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어떤 문제가 있는데 아들이 내게 와서 자기의 문제를 의논하지 않고 옆집의 사람에게 의논을 하여 그 옆집 사람으로부터 아들의 문제를 들었다고 하십시다. 이것은 아버지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로서 정말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떤 문제나 환난을 당하면 먼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B. 결사적인 투쟁

아삽은 나는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2)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를 만나기 위한 결사적 투쟁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도 믿음생활 속에서 한번쯤 이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 번 겪었습니다.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극한 상태를 말합니다.

 

3절에서 아삽은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 전 XTM이라는 케이블 방송의 동성애 난상토론의 패널로 참가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기도와 준비를 하고 나갔지만 왠 일인지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나의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악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고 돌아 왔습니다. 나는 그날밤 심령이 상하여 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잠을 자고자 하여도 하나님을 향한 근심이 가득하여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II. 인간의 생각으로부터의 탈출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지난날 주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또 나는 그 은혜에 대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여러 가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나의 불성실한 믿음의 태도와 생활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간 버스 같고 끊어진 화살 시위 같지만 나의 믿음 없는 행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스스로 자아비판을 하게 됩니다. 주께서 이제 나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다시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실까 주의 인자하심이 끝났을까 내게 향하신 주의 뜻이 이제 다 끝난 것일까 주께서 노하셔서 그 긍휼하심이 멈추었을까 하고 심령의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질없는 걱정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인간의 연약한 생각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모든 일들을 인간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것을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려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세상의 틀과 질서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 수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였으니 하나님도 이렇게 하실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충실하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을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생각지 않으실 것이며 그의 은혜는 끝이 났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인간은 상대적 원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받은 것만큼 생각하고 준 것은 되돌려 받기를 원하는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온전치 못합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의 사랑도 결국은 조건이 내재된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조건적 사랑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처형에 내어준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삽은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 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마음의 번민에 빠졌을 때 연약한 자신의 믿음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지 않았다면 극한 우울증에 빠져 술이나 도박에 빠지게 되고 자살까지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도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어 기도하게 하고 연약한 인간의 생각에 빠져 번민을 하다가도 다시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성경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섭리하시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III. 말씀의 묵상과 하나님의 능력

 

아삽은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기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히 생각하리리다 고백하였습니다. 지금 아삽은 인간의 연약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어떤 문제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로하여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며 사람들의 의견과 방법을 묻고 자기의 생각을 따라 해결책을 모색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처음부터 실패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문제에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극복과 관련된 일들로서 그 말씀 속에 우리의 문제가 모두 서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은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들의 열쇠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남편 엘가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여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대를 이어 줄 아들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남편 엘가나는 첩을 얻어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한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자식을 얻은 첩의 기고만장한 태도와 남편의 태도에 심령이 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첩보다는 자신의 믿음이 강하였고 남편에게도 충실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지 않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것입니다. 그의 억울함은 극에 달아 성전에 이르러 술취한 여인처럼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내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한나는 자기의 고통을 제사장 엘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습니다.  술취한 듯이 울부짖는 한나를 보고 엘리 제사장은 그녀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에게 나는 술취한 것이 아니라 내 억울함을 주께 토하고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종 엘리를 통하여 평안히 돌아가라 응답하였습니다

 

또 우리는 복음서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사랑하던 믿음의 가족이였습니다. 어느날 주께서 사랑하던 그녀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히 주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 돌아 오지 않으셨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돌아 오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의 죽음에 절망하고 슬퍼하였습니다. 오빠를 잃은 그들의 슬픔은 아무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께 나아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오라버니가 죽이 않았을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슬퍼하는 두 자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도 마르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무덤의 돌을 치우라는 주께 이미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가 극한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생각할 것이냐 입니다.

 

물론 손을 들어 내 음성으로 주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영혼의 위로 받기를 거절하며 결사적으로 주 앞에 나아가 내 마음의 고통과 억울함을 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 믿음은 연약하여 내가 행한 일들을 생각하며 다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과 일들은 우리 마음을 더욱 번민에 빠지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를 굳건한 믿음으로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의 사람들이 당한 극한 슬픔과 고통에서 회복한 일들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믿음을 줍니다. 성경에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으며 또 그 택하신 자들을 위해 천지만물을 그의 뜻대로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합니다.

 

끝으로 아삽은 20절에서 주의 백성을 무리양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법을 언급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 이후의 일이 기록되었습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며 새상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이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이곳에서 건너가서 전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하시며 그곳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있으니 그에게 들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그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사도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에 이르게 하여 인간의 궤휼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엡4장 참조)

 

이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다시 세우시고 그 말씀을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예정과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로 하여 인간의 연약한 생각에서 벗어나 주의 위대하신 기이한 일들을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을 갖고 나가오니 나를 받아 주십시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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