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26편)성도의 완전한 삶

이요나 2007. 2. 26. 10:57

(시편26편)성도의 완전한 삶

(시26: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이 여기소서

 

시편26편도 25편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기도문으로 시편25편이 기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26편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성도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 앞의 의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란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I. 성도의 완전함(1-6)

다윗은 1절에서 내가 나의 완전함에서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완전함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성도의 완전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범죄하지 않은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밧세바의 임신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쟁에서 돌아 온 우리아로 하여 아내와 동침케 하려 하였으나 그가 군영 막사에서 떠나지 않자 그를 전쟁의 선두에 내세워 죽게 하였습니다. 또 그는 전쟁을 위하여 인구를 비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줄 알고도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수많은 사람들이 역병에 걸려 죽게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A. 여호와를 의지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완전함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의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였다는 것은 그 모든 사상과 행위에 있어 자기의 생각과 뜻을 따르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맡겼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매 있어 자기 의지와 뜻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의 의지와 뜻을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가 설령 왕의 신하라 하드라도 자기의 생각과 뜻을 세우지 않고 상전의 뜻을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독생자 아들이라도 주께서는 내가 말한 것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조상 아담을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최초의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으나 죄인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은 사단을 칭하여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였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겔28:12)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완전함에 처할 때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주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지혜 가운데 있을 때 완전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하였습니다.

 

 B. 시험을 이기라

다윗은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비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를 믿으면 물질적인 축복이 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전하는 온전한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였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를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땅에서 시험과 고통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의 시험하셨습니다. 그의 독생자이신 아들이라도 친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어찌 아비가 징계를 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하였으며 야고보는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증거하였습니다.

 

  C. 행악자의 집회를 떠나라

계속하여 다윗은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오며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며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여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의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중에 있다는 것은 주의 말씀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그의 제자들을 아버지께 의뢰하며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기도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진리를 정의 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요17:17)하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8,19)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주께 보냄을 받은 사도로서 그들이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전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심히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정체성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나타나는 목사들을 가리켜 그는 하나님의 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전혀 모른다 하셨습니다(마7:22).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때가 이르면 주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실 것입니다(살후2:8)

 

II. 여호와 송축(7-12)

 A. 감사의 찬양

그러나 성도에게 이 모든 것 위에 더 중요한 것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다윗은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라(7)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 중의 하나는 감사와 찬양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더욱더 열성적인 교인이 되어 찬양대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며 열정적인 활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열정적인 예배와 다윗이 말하는 감사의 찬양은 다른 것입니다. 감사의 찬양은 종교적 활동이 아닙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 사마리아의 한 촌에서 열명의 문둥병자를 만나 그들을 정결케 하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자신의 몸이 정결케 된 것을 알고 그 중의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주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하며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이를 본 주님은 열명이 모두 깨끗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어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온 자가 이방인 외에 없느냐 하셨습니다. 물론 아홉명은 제사장에게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가족들과 함께 그들이 말하는 열정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B. 성전의 영광을 사모

이에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에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성도들이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에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할 말이 많으나 읽는 사람들의 오해의 소지가 많아 이만 줄일까 합니다. 이미 주의 계신 집에 거하는 성도들은 지금 다윗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미혹하는 영들이 이 땅에 가득합니다. 나는 지금 여호와의 증인이나 문선명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멸망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나는 선지자라 또는 목사와 교사라 하며 주의 이름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부디 주께서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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