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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7편)성도의 믿음의 목표

이요나 2007. 2. 26. 10:56

(시편27편)성도의 믿음의 목표

 

(시27:4)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오늘 시편27편은 하나님의 성도된 우리에게 아주 중대한 한 가지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전에 대한 바른 의식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성전을 사모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무수한 하나님의 성전이 우뚝 서 있습니다. 마치 그 크고 웅장한 자태가 성도의 믿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서로의 화려함을 뽑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웅장하고 화려함이 중세에 세워진 유럽의 성전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관광상품이 된 웅장한 성전 건물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최근 주변에 우뚝 선 많은 교회들을 바라보며 언제쯤 우리 서울 갈보리채플은 아름다운 성전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였습니다. 개척 12년이 되어도 아직 초라함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최소한 지금의 성전에서만이라도 벗어나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소망은 나뿐이 아니라 이 땅에 부름을 받은 모든 복음 사역자들의 소망일 것이며 모든 성도들의 소망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은 우리와 다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교회 웅장한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데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주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편 27편에서 다윗이 소망한 완전한 성전은 어떤 것인가를 살펴 보도록 하십시다.

 

I. 구원의 집

 A. 생명의 빛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니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을 보는 듯합니다.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에 대하여 논할진 데 빛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물리적인 발광체를 말할 수도 있고 또 정신적인 세계에서는 마음의 등불 곧 정신적인 위로와 소망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빛이 없었다면 이 땅의 생명은 그 아름다움을 지킬 수 없으며 또 볼 수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먼저 창조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혼의 고통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빛으로 오신 생명의 구원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빛이란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환란과 고통의 사람들에게 있어 빛은 생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중동지역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의 생명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와 인도와 같은 곳에는 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휩쓸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지역들은 모두 정치적 제도장치에 의해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차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1:9,10)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이 불리는 곳에는 이미 생명의 빛이 사람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둠의 인생을 살아가는 창녀를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선교대국이라 일컫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생명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으며 또 성폭행과 같은 더러운 일들이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생명의 빛이 모두에게 비추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B. 아름다운 제사

4절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4)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기름부음 받은 왕이라도 일생 동안 사울 왕에게 쫓기며 또 자식들의 반란과 신하들의 배반과 같은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평화를 꿈꾸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도 평화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의 권세와 지혜로 평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세상은 벌써 평화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여 그의 성전에 거하시며 그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바라 본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 앞에 나아가는 자들의 예배의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성전에 나아가는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히13:15)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고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일방적인 예배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예배는 카톨릭 성전에서도 얼마든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성전의 휘장은 이미 갈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친히 지성소로 들어가 주의 얼굴을 보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II. 기도하는 집

다윗은 7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성전에 나가야 하는 두번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주 앞에 드리는 기쁨의 제사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두번째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삶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주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주님의 이런 모습을 본 제자들은 여호와를 사모하는 열성이 나를 삼킨다는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다윗은 8절에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도는 일방적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외치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나가 부르짖으라 하여 새벽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지 의문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의 뜻대로 하는 기도일까요?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하였습니다. 주의 길로 나를 가르쳐달라는 것은 주의 인도하심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마음으로 기도하여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노래하라 하였으며 다시 주의 뜻대로 드린 기도는 주께서 들으심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께 기도할 때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렇습니다. 설혹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늦어질지라도 우리는 담대함을 갖고 주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담대함은 주를 바라고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증거하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바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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