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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5편)영혼의 찬미

이요나 2007. 2. 26. 10:58

(시편25편)영혼의 찬미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시편은 기도와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시편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미의 노래이지만 시편 25편부터 28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말하는 성도의 특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I. 영혼의 찬미

다윗은 먼저 영혼의 갈급함을 호소하여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목적이기도 하며 기도의 출발선이기도 합니다. 영혼의 갈급함이 없으면 그 누구도 기도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고 찬양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혼을 지으신 일입니다. 만약 주께서 우리를 짐승이나 새와 같은 생물로 지으셨다면 우리는 주께서 만드신 하늘과 땅을 즐거워하며 생명을 누릴 수는 있겠으나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찬미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또한 오랜 세월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나는 물질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죄 속에서 신음하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나는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외치는 다윗의 기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외침은 비단 다윗의 고백만이 아닌 오늘날 주를 기뻐하는 모든 영혼들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이 땅 위 살아 숨쉬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로 하여 주께서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하신 것입니다.

 

II. 성도의 기도

  A. 주께 의지하여야 한다

다윗은 2절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는 여호와께 의지하여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주께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의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적 위치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미 21절에서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였다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전세계를 호령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는 누구를의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여호와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주를 의지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일들을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스스로 행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무수한 덫과 올무가 놓여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사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의지한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죄인임을 시인할 때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노래한 것입니다.

 

  B. 주의 길을 터득하여야 한다

4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혜 곧 하늘나라의 지식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터득한 지혜와는 달라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여러 가지 교훈과 지식들을 필요로 합니다.이를 위해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과정들을 통해서 성숙되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터득하였다고 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만약 세상의 지혜로 온전해 질 수 있었다면 주께서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추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2:6,7)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5절에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도의 목표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출세와 부귀에 있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영혼의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29) 하였습니다.   

 

 

III. 죄의 고백

우리의 기도의 두 번째 목적은 죄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가 날마다 죄에 대한 고백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가장 슬픈 비애이기도 합니다.

 

   A.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

다윗은 6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서서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긍휼하심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동정심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긍휼이 여기는 자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말한 것입니다. 주의 사랑은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바탕으로 하시며 그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 속에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긍휼하심과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죄와 허물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들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아들들은 형제 요셉을 팔아 넘긴 후 이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라 말하고 형제들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들은 아비 야곱이 죽은 후에도 요셉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죄를 기억치 말아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나는 내 믿음이 깊어질수록 지나간 나의 죄와 허물들의 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죄를 범할 때에는 그것이 죄인지 모르고 행하다가 주의 영이 살아나 나의 죄를 책망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이 행한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죄와 허물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에 의거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 생활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죄인에서 벗어났다는 자만에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임에도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의 판결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에 힘입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B. 주의 선하심과 정직하심

8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정직한 성품을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처음부터 선하지 못하고 또한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그의 선하심과 정직함을 청하고 있는 것은 이는 도덕적 성품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 속에서 선함과 정직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정치적 야욕에 불타 정적들을 물고 물리는 가운데 결국은 서로 자멸하고 맙니다.

 

   C. 주의 공의로 지도하심

다윗은 9절에서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리로다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유라는 말은 인가의 본성과 대립되는 성품으로 잘 길들여진 동물들과도 같은 의미를 말합니다. 이처럼 다윗은 온유하지 못한 인간의 성품을 하나님의 공으로서 지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책망도 하고 분노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자녀를 좋은 길로 인도한다는 의도이지만 자기 의도대로 길들이고자 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공의로 지도하여 주기를 열망한 것입니다.

 

D. 주의 이름으로

끝으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다른 것은 빼어도 되지만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사하소서 라는 고백은 기도의 마침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신칭의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가 주를 믿어 그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은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III. 믿음의 확신(12-22)

 A.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다윗은 12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경외함이란 두려움을 갖고 섬기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결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의 긍휼하심과 주의 은혜로 죄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은 여호와 주를 경외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주일에 교회 나와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심령의 좌표를 말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인된 성도의 선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다니의 마르다와 그 동생 마리아를 사랑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늘 앞서 주님을 섬기며 봉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마리아는 늘 주님 앞에 앉아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행동을 못마땅이 여기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눅10:38-42참조)

 

다윗은 좋은 편을 선택한 자들에게 임할 복을 말하여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어 그 영혼이 평안치 못하고 주의 기업을 상속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통할 일이겠으며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한 것입니다.

 

다윗은 14절에서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호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주께서 언약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B. 중보의 기도

이제 다윗은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인의 애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늘 의인의 발에 그물을 치고 그가 넘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신 터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더 나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아가면서 많이 외로워하고 또 많은 근심 속에 쌓여 곤고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로 다시 죄에 얽히지 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백살에 얻은 독생자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능히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윗은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며 또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오늘날 의인된 우리는 장차 우리가 얻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된 주의 기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언약하신 기업을 받기 위해 우리의 믿음은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주를 앙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금 참고 이기면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 땅에서 주와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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