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2:1) 이것만은 알아야쥐!

이요나 2007. 2. 27. 12:58

(고전12:1) 이것만은 알아야쥐!

 

*서론*

오늘부터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령의 은사의 개론부터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12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킹제임스 성경에는 은사(gift)로 기록) 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하노니」킹제임스 성경을 살펴보면 "은사(gift)"(우리 성경은 신령한 것으로 기록됨)라는 단어가 서체(italic)로 쓰여져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체로 쓰여진 부분은 성경의 원본의 헬라어에는 없지만, 문맥상의 이해를 위해 성경 번역자가 삽입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한글 개혁 성경에 '신령한 것'이란 '은사'(gift)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지요.

 

바울은 4절에서부터「은사」의 다양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1절에 '은사' 즉 '신령한 것'을 삽입한 것은 성경의 문맥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어가 의미하는 것을 '은사'나 '신령한 것'이란 단어로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이것이 외국어를 번역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입니다.

 

외국어를 다른 언어로 완전히 표현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언어에 따라서 변하는 시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경우 제2, 제3의 말들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술적인 단어도 있습니다. 그만큼 꼭 들어맞는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역(혹은 통역)이 해석하는 형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원어가 의미하는 원래의 뜻을 그대로 가지면서 다른 언어로 완벽히 번역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새 번역과 공동 번역에서는 '선물'(gift)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인 성경에서는 '영적인 선물'이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이 모두가 4절에서 나오는 '성령의 은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2장의 주제는 '성령 은사'입니다.

 

*바울 신학의 4대요소 *

바울은 12장 서두에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하노니(영어 성경에는 '무지하지 않도록')」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교회의 사도인 바울이 모든 교회들이 어떤 중요한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무지(無知)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교회들이 꼭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하여 강조하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 째가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을 보면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이스라엘 역사가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어떤이들은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반대입니다. 특히 열왕기서의 내용은 결국 다시 역대기서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으며 어떠한 내용들은 선지서 이사야에서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그대로 기록된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두 번 이상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발견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의 메시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이 두번째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을 보면 바울은 "이스라엘사람의 더러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완악하게 된 것을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민족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택한 유일한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알아야만 할 것은 교회에 관한 비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는 죽은 자들의 장래에 있을 부활과 교회의 휴거에 대하여 "너희의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통치하기전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언약이 성취되기 전에 있을 교회의 휴거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강조한 네번째는 오늘부터 우리들이 배우고자 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것입니다.

 

*무식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서두에서「신령한 것에 대하여 너희의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권면하면서 그 이유에 대한 많은 주제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너희의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하노니" 라고 말한 부분은 '반드시' 또는 '어떻게 해서든지'라는 강력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그 주제에 대하여 교회들이 무지(無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여 이 주제에 대하여 무지할 뿐더러, 이 부분은 그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므로 대개의 경우 모르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사실 성령의 은사란 주제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무지한 부분도 없습니다. 각 교회들이 서로 대립하는 이론들이 그 어느 쪽이 옳다고 할 것도 없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성도들 중에는 성령은사가 우리 삶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성령은사의 온전한 성경적 지식에 관하여 모르기 때문에 무지한 행동으로 이끌려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모든 은사에서 내세울 만큼 강렬하게 나타났던 고린도 교회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성령 은사의 바른 사용을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바울 사도가 성령은사에 대하여 바른 지침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교회에는 엄청난 문제가 일어났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