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로마서강해

(로마서10장) 山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

이요나 2007. 2. 27. 13:48

(로마서10장) 山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 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 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다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롬10:6-8)

 

 

아침 출근길 수퍼마켓 앞의 신호등에 서있는 나의 눈을 가로막는 포스터가 있었다. 멀끔하게 잘 생긴 사나이가 상큼한 표정을 지으며 "山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하고 웃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과 멀리한 지 수십년이 지난 이요나의 머리는 잠시 현광등이 되어 버린듯하였다.

 

잠시후 그것이 소주 광고문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산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 이 문구는 20년 동안 술장사를 해온 이요나의 배꼽을 뽑고 있었다...."푸헐럴,..산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이라... .." 책상 너머로 내다 보이는 남산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박장대소를 한다...갑자기 소주를 좋아하던 미국의 외주 놈의 얼굴이 또올른다... 그 얼굴 밑에는 주독으로 머리까지 숯검정이가 된 검푸른 돌탕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이건 정말 샛빨간 거짓말이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안쓰런 생각을 끊고 목요예배를 준비를 위해 로마서 10장을 펼쳤다. 아~ 역시 성경은 진리의 보고였다. 아침 발걸름을 가로막던 어느 탈랜트의 거짓말 미소를 제치고 확신에 찬 바울의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라는 진리의 함성이 터지고 있었다. 더우기 "누구든지"라는 그의 단서는 나를 매료 하고 있었다, 만약 "누구든지"라는 단어 대신에 "잘생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면 이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에 "죄없는 사람중"이라고 단서를 달았다면 나는 어쩔뻔하였는가? 이것은 100% 보장된 사도의 확신있는 구원의 복음이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말보다는 "산을 시키면 아침이 산듯!"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선택하는 것일까? 아마 눈이 부리부리하게 잘 생긴 머스마가 생글생글 웃고 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님이 좀 왕자다운 용모와 신의 아들에 걸맞는 아름다움의 외모를 갖고 오셨다면,,, 요따위 광고문은 끼지도 못할 터인데,,. 이사야가 말하였던가..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말씀은 마치 오십이 넘도록 장가도 가지 못하고 있는 요나를 위로하시기 위해 기록하신 것 같다.. 아무렴은 만군의 왕이시고 창조자이신 예수께서 그러한 모양으로 오셨을라구.. 너희에 눈에는 그리 보일지라도,, 나의 눈에는 그는 기록된 바 "아름다운 좋은 소식"일러라.. 요즘 우리 교회 가운데는 정말로 우리 주님을 가슴 아프게하는 거짓말들이 떠돌고 있다. 오늘 로마서 10장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바울은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 가겠느냐 하지말라"하며 또 "혹 누가 음부에 내려 가겠느냐 하지말라"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부활과 심판이 있음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바리새인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하늘에 오르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누구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율법의 엄격함을 따리 지키며 살아가는 의식주의자들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륵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신바 있다. 그런데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앞서지 못하면 하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니 이것은 정말 난감한 말씀이다. 또 주님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다. 이것 또한 참으로 쉽지않은 말씀이다. 세상 가운데서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우리가 어떻게 어린이들처럼 순수해 질 수 있단 말인가?

 

주께서 하신 이 두 말씀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올라갈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런데 주께서는 이보다 더 어이없는 말씀으로 천국문의 빗장을 걸으셨다. "너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라" 이 말씀은 우리로 더이상 한 발자욱도 띠지 못하게 한다.

 

바리새인처럼이야 죽기살기로 노력하면 할 수도 있겠다. 또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도 모든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불가능한 말씀이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천사는 수태고지를 받기 황당해 하는 마리아에게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전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 말씀 그 자체가 능력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를 믿는 자들을 죄없다 하시고 의인이라 칭하셨으며 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문제는 오늘 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제기하는 바와 같이 "누가 하늘에 올라 가겠느냐?" 또 "누가 음부에 내려 가겠느냐?"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대고 한번 반문해 보라, 과연 나는 이러한 문제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야 갈라구? 그냥 믿으면 좋은 것이니까 믿는 것이지... 이러한 보편적인 생각들이 우리 믿는 자들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있었을까? 의인이 하늘에 오른 것은 주께서 부활하신 후 친히 갈릴리 오백여 사람들 앞에서 찬사의 호위를 받으며 구름을 타고 오르신 것이며 그것을 친히 본 사도들에 의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천사의 증언과 그 영광을 본 증인들의 말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셨음을 믿는 우리도 그와 같이 승천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인이 된 증거는 내가 부활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왜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하여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주께서는 바리새인의 의보다 의롭지 못하면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리새인들의 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들은 무엇으로 의로워 지려고 하는가? 그들은 우리와 같이 믿음으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서 의로워지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의로움은 성경의 지식을 따르지 않고 종교활동 속의 의식적인 행위에 있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었던 바울 사도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고 말하였다.

 

지금 바울 사도는 이방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이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인이 된 자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라는 칭의를 받은 하나님의 성도들이다. 지금 그들은 시대적으로 최고의 정치, 경제의 중심속에서 최고의 문명과 지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지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요즘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정치적 퇴보와 함께 급부상하는 유럽을 바라보라, 벌써 힘어 없어 보이던 유러화가 1달러 1유러가 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는 로마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비록 북한과 같은 지구의 한쪽은 19세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우리는 21세기 로마의 황금율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로마교회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임을 생각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휴거에 대하여 불신 내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어떤 교파에서는 무천년설을 주장하여 성경에 기록된 천년왕국은 교회사 속의 가상적인 시대라는 비성경적인 해석을 하고 있으며, 환란전 교회의 휴거를 부인하는 극단적인 교회도 있다. 이들을 향하여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 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 가겠느냐 하지말라 "말하여 의인이 받는 보상이 실제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을 증거하며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 아니냐?"고 힐문하고 있다,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올라 가실 때 사도들과 함께 오백여 갈릴리 사람들이 목도하였고 천사가 말하되 "오늘 보는 바 예수는 너희가 본 것과 같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말하였다. 어찌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된 우리가 죽은자 가운데 그의 아들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능히 그를 믿는 자들을 하늘로 끌어 올릴 수 있음을 어찌 못믿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않된다.

 

바울은 또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에 대하여 만약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믿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 가운데 한 날을 정하시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리라 하셨다.

 

바울이 증거하되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행17:31) 말하였고 다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갈지니라"(히6:2-3) 경계하였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한 회개에 이르러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우리가 이러한 회의와 거짓에 미혹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거짓교사와 거짓 선지자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며 지식을 따르지 않고 유대인들과 같이 표적을 따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 가운데 거짓교사들이 있을 것을 가르쳐 왔다.

 

그들은 지금도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다가와 하나님의 성도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하여 성경이 기록하기를 "이는 예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유4) 라 하였고 "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빙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10) 정죄하였다.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셨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엡4:8-10)말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하여 주께서 교회를 위하여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사도를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셨다(엡4:12)

 

그러면 이 지식을 아는 우리는 이 종말의 세상에서 무엇으로 넉넉한 믿음의 확신을 갖일 수 있을 것인가?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라"(엡4:13)권면하며,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바울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너희가 이 시가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믿을 때보다 가까웠다" 말하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13:12) 말하고 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