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8) 바울의 최고 신학, 하나더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의 성경여행은 고린도전서를 끝내고 오늘부터 고린도후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2003년 연초부터 달려와 6개월이 걸렸습니다. 매번 책한권을 끝낼 때마다 느껴지는 나의 소감은 잘하였다는 생각보다는 부족하였다, 성경공부에 너무 게을렀다 하는 생각이 들뿐입니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더욱 성경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쨋던 고린도 후서는 좀더 깊게 상고하면서 충실한 서기관처럼 공부를 하여야 겠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고린도후서에 대하여 흥미를 갖지 못했었습니다. 어쩌면 성경에서 재일 재미없는 부분을 말하라고 하면 구약에서는 레위기이고 신약에서는 고린도후서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정말 충격적인 하나님의 진리를 터득하고 나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 나도 성경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라는 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고린도후서 첫장에서 발견한 것은 이것이야말로 고린도전서 보다도 더 귀중한 살아있는 체험문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4가지 신학적인 중대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가 이것을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한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서신을 강해할 때마다 누누히 강조해 왔습니다만 그 첫번째는 고린도전서 10장1절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로마서 11장25절에 있는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고난과 구원의 비밀입니다. 또한 세번째는 우리가 앞에서 10번에 걸쳐 살펴본 성령의 은사(고전12:1)에 관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오는 교회의 휴거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에서 또 한번의 중대발표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시한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라는 어법으로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하여 설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오늘에서야 발견하고 아~ 고린도후서에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하는 중대한 신학적 사고가 있구나 생각하고 고린도후서의 중요성을 재삼 깨달았습니다. 할렐루야!
고린도후서는 고린도교회와 아가야 일대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로서 A.D.55년경 겨울에 마게도냐에서 쓴 것이라 추측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고린도교회에 닥처온 여러가지 내적 갈등과 외적 환난에 대한 위로와 권면으로 그들 가운데서 비방과 시기를 일삼는 사람들의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경계와 환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망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1장으로부터 7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궁국적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줍니다. 3장에서 새언약을 다루고 있으며 5장에서 그리스도의 심판과 화목케하는 직분을 설명하였으며 7장에서 두 종류의 근심과 그 결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8장과 9장에서 봉사와 직무와 사역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10장과 13장에서 우리의 자랑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는 한마디로 세상 가운데서 환난받을 수 밖에 없는 성도들의 입장과 그 영적 배경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그 택한 자들이 마땅히 격어야할 고난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치면서 물질에서 깨끗할 것과 좁은 길을 선택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겠다는 서기관을 향하여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서기관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목적이 자신의 부귀와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또 주께서는 부자 청년이 물질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근심한 얼굴로 돌아 가는 것을 보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기가 어렵다"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물질로서 해결하려는 상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 하셨고 바울은 재물을 가리켜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만능시대입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물질적으로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세상속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으로 정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성령충만의 상태에서 자신들의 믿음의 높음과 지혜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인간의 힘과 지혜로 어쩔 수 없는 환난이 닥치자 그 고통을 믿음의 말씀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가르침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은 그들의 눈을 잠시 속이는 것으로 성도들의 궁국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환난을 자초하고 그들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끄는 사단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그들이 믿음안에서 극복하여야 할 환난에 대하여 설명하며 그 환난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어쩌지 못하며 그 환난이 오히려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하여 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환난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에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라고 말하여 바울 신학의 최고의 경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믿음 생활 속에 나타난 많은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좌절하거나 넘어지지 말고 오히려 더욱 담대한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고 또 그 은혜를 널리 알리려 환난 속에 역사하는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통하여 바울의 최고 신학적 신비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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