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갈라디아강해

(갈라디아3:22) 오직 성경 말씀으로 확증

이요나 2007. 2. 28. 10:07

(갈라디아3:22) 오직 성경 말씀으로 확증

 

(갈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니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된 갈라디아 성도들의 마음을 미혹한 율법의 문제를 증명하기 위하여 믿음과 율법의 논리적인 확증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서 의인이 된다는 믿음으로 수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과의 전쟁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증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향한 갈라디아 사람들의 출발점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율법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주신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증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에 대한 근거를 성경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였고 또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 또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출발선인 아브라함으로부터 믿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않되었습니다.

 

믿음의 출발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성경적 근거가 "아브라함이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는 창세기 15장의 말씀에서 비롯 되었음을 제시하였습니다. 바울은 이것은 성경의 계시로서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창12:3) 기록하였다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증명 하였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논리적 증명을 위해서는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하는 율법의 모순을 밝혀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합리적인 논리학은 긍정의 법칙과 모순의 법칙을 함께 증명하여야 하며 중간입장 배제의 법칙과 층분한 사유의 법칙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논리의 근거

바울은 율법의 모순에 대하여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전재하고 모순성의 원칙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들어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신27:26)기록 되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합2:4)는 말씀을 들어 중간입장 배제의 원칙을 증명하였으며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하신 레위기 18장 5절의 말씀을 근거로 제시하여 논리학의 충분한 사유의 법칙을 충족 시켰습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기록된 율법의 요구인 저주를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라"(3:14)증거 하였습니다.

 

성령의 약속

여기서 바울사도가 말한 '성령의 약속'이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하시며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말씀 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이 성령 세례의 목적에 대하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주께서 하신 이 약속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약속의 중대함을 언급하여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15절)하였습니다. 여기서 언약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놓고 말로 맺은 약속을 의미합니다.

 

언약의 성립

'언약'의 성립은 먼저 서로의 인격적 믿음과 신뢰가 바탕되어야 하는데 언약을 세운자의 인격은 그의 권위에 있으며 언약의 지킬자의 인격은 언약의 성실한 수행에 있습니다. 또한 언약에는 그 댓가가 따르게 되는데 그것이 없다면 언약을 지키려는 자의 노력과 영광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 첫번째 주어진 조건부 언약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말씀하셨고 피조물인 인간은 그 말씀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언약의 댓가는 '영원한 삶이냐 영원한 죽음이냐'로서 언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그 누구도 폐하거나 더할 수 없고 오직 그에 대한 결과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과 신뢰의 부재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약속은 취임 6개월도 못되어 그 공신력을 잃어 버렸고 선거 때만되면 새롭게 터져나오는 정치적 약속들은 정치공방 속에서 그들의 약속들은 모두 헛 말들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처럼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권위가 죄의 속성에서 서로 믿음과 신뢰를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근거

바울 사도는 아담으로부터 상실된 언약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아브라함의 믿음 위에 새로운 언약을 주셨음을 상기시키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그 언약의 유효성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아브라함을 그의 의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누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입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나았고 이삭을 나았으며, 사라가 죽은 후 첩 그두라에게서도 다른 아들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령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창32:12) 하신 말씀에서 "씨"라는 히브리어의 어원이 복수가 아닌 단수임을 지적하여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증거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말하며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증거 였습니다. 이와 같이 실제로 율법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라 칭하신 후 사백 삼십년 후에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논리적 증거를 통하여 성경해석의 중대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 기록에 사용된 언어 히브리어의 어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분변하였고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이 공포되기 전 선행된 약속의 말씀인 것을 증거하여 성경해석의 우선적 원칙를 확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으로 부르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었는가를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않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주신 율법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수천년동안 의로운 백성들 가운데 증거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목적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의 필요성과 유효기간에 대하여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들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신 임시조치법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중보는 한 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한편은 백성들이고 다른 한편은 백성을 이끌고 가는 모세를 말한 것으로 모세 역시 동일한 죄인된 인간으로서 죄인이 죄인들을 바르게 이끌어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로하여 하나님은 율법으로 기준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지도자와 그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런즉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냐?'물으며 '결코 그럴 수 없다' 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즐겨쓰는 반어법으로서 '만일 율법이 사람들을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듯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말하여 율법의 긍극적인 역활이 무엇인가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22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계시성을 언급한 것으로 율법이 복음의 계시의 산파적 역활이 되고 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되고 게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증거한 것입니다.

 

율법의 역활

바울은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를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몽학선생이란 인도자와 교사의 합성어로서 그 당시 유복한 헬라사람들의 자녀를 담당하고 있었던 집사와 같은 역활을 말합니다.

 

'몽학선생'의 역활은 주인의 자녀를 맡아서 안전하게 그를 올바르게 가르칠 스승이 있는 학교로 보내는 역활을 하는 하인입니다. 그러나 호기심많고 놀기 좋아 하는 아이들에게 그의 역활은 자상한 인도자이기도 하고 무서운 훈육주임기도 합니다.

 

25절에서 바울은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주셔서 그로부터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그의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하시며, 그가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장래일을 알리시리라"(요16:13) 하셨습니다. 성령이 이처럼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롬8:27).

 

믿음의 확증

이제 바울은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성령으로 하나됨을 언급한 말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말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차별이 없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한가지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이나 사람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믿음의 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