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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1:6)복음의 역사와 열매

이요나 2007. 2. 28. 11:11

(골로새서1:6)복음의 역사와 열매

(골1: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오늘은 골로새서 1장 세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골로새교회의 지역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 삶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 이단사상의 배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골로새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 복음의 역사와 그들의 삶가운데 나타난 복음의 열매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제자 에바브라가 개척한 골로새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자기가 세우지는 않았지만 아들과 같이 생각하는 사랑하는 제자가 세운 교회가 부흥되고 잘 되어간다면 그것은 정말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감사의 이유에 대하여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4-5절)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여러가지 주께 받은 은사들로 교만하지 자긍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욱 큰 은사 즉 믿음 소망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에 비하여 골로새 교회는 이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5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소망과 또 다른 의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이라고 할 때 자신의 앞날을 향한 소망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는 이 세상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세상에 소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이처럼 믿음과 사랑과 또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갖게 된 것은 "너희가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말한 바 '복음의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
'복음'(유앙겔리온)이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기쁜소식'(Gospel)으로서 오늘날 복음이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원래 헬라인들이 사용한 의미는 좋은 기별을 갖고 온 전달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표현되던 말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저서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한 사람'(사40:9)을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복음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와 그를 전하는 사람 모두를 수용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그 전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전달과정과 수단 속에는 필연적인 속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전달자의 택하심과 부르심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게 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바울 사도가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이라 할 때 이것은 피상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경전 그 자체를 말한다기 보다 택하시고 기름부은 자를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 복음의 메시지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되기를 간구하며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하셨습니다.

복음의 역사
바울은 6절에서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복음이 세상 가운데서 열매를 맺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 교회로부터 전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정말 한국인처럼 복음을 향한 열정을 가진 민족도 없습니다. 한국인의 믿음은 온 세상 가운데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 교회에서 복음으로 나타나는 의로움을 찾아 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로마서 1장에 기록된 바울의 고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복음의 들음과 깨달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대하여 '복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무엇을 듣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막4:24).

그러나 오늘 우리는 골로새 메세지에서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는 위대한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여기서 은혜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마13:19)기록하였습니다.

복음의 연결 통로
저는 갈보리채플로 부름을 받기전 교회에서 정말 뜨거운 믿음을 소유한 자라 불리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남다른 은혜를 받았음을 확신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나의 믿음은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초보적인 구원의 은혜 가운데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 나는 것일까요?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기록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신학교가 난무하고 매년 수천명의 목사들을 쏟아내는 한국적 실정에서 있어서 이 말씀은 다시 상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의 전달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은 누구에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복음의결과
먼저 바울은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종되었다는 말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종이란 주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와 함께 종되었다는 말은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처음부터 주께 있었다는 말이며 주께서 친히 세우신 사도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라는 말이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과 복음이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전달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복음의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주의보내신 자 사도들을 통하여 전달된 복음은 그들 가운데서 함께 역사하는 성령의 끈으로 하나가 되어 성도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