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골로새서강해

(골로새서1:2)골로새와 짜라투스트라

이요나 2007. 2. 28. 11:13

(골로새서1:2)골로새와 짜라투스트라

(골1:2)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은 골로새서의 수신자들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골로새의 역사적인 배경과 지리적 환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골로새라는 도시가 어떻게 출발되었는지 우리는 그 배경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사의 기록을 따라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추종하여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특수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소아시아의 터키에 소속된 골로새는 원래 브루기아(Phrygia)인의 도시였으나 로마시대에 와서 동방정복의 일환으로 아시아에 편입되었습니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160km 떨어진 루카스(Lycus) 계곡을 따라 형성된 루카스 강 유역의 도시 라오디게아(Laodicaea)와 히에라볼리(Hierapolis)와 함께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에서 불과 19km의 거리에라오디게아가 있었으며 그로부터 10km반경 내에 히에라볼리가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세도시는 모두 에베소를 중심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듯한 위치에 마주 보고 있으며 히에라볼리에서 서북쪽으로 얼마 올라가면 게시록에 기록된 일곱교회 중 라오디게아 전에 언급된 필라델피아가 자리잡고 있읍니다. 그러고 보면 요한 계시록에 언급된 교회가 모두 이 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도시는 초대 이방교회의 발상지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에베소를 이어가는 소아시아의 진입로라고 할 수 있으며 해상과 육로를 통하여 이동할 수 밖에 없는 그 당시로서는 동서를 잇는 중요한 분깃점이었습니다.

1. 골로새
오늘 우리는 에베소와 나란히 마주 선 이 세 도시 즉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 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골로새는 이 도시가 언제 생겼는지 그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고대 역사를 통하여 골로새 지역이 중요한 전략적 요새로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카스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골로새의 배후에는 카드무스 산맥이 높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로하여 이 지역은 고대 시리아와 페르샤 제국 크세르크세스왕(BC.485-465) 당시에도 아시아 정복의 중요 전략 요새로 이용되어 그 당시 역사학자 헤르도투스(BC.480) 는 '루기아의 위대한 도시'라고 서술하였습니다.

여기서 크세르크세스 왕이란 바로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로에 왕을 말합니다.그는 헬라를 치기 위해 가장 난공불락은 카드무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카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골로새는 군대를 머물고 쉬게 하기 위한 전략적 요새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골로새는 동서 아시아를 잇는 교통로서 동쪽 입구 관문에 해당되었습니다.

또한 지진의 영향으로 석회질이 풍부한 수질로 하여 최고의 염료를 만들어 내게 되어 염색업이 발달되었고, 그 당시 어떤 염료는 골로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적 배경 속의 골로새는 고대로부터 전략적인 요새로 불려왔던 것과는 달리 바울이 이 글을 쓸때에 와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주변 도시에 뭍혀버린 작은 도시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 세 도시 중에 유독 골로새 교회를 대상으로 이 편지를 쓴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2. 라오게디아
라오게디아는 원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라오게디아라는 왕후의 이름을 따라 명명할 정도로 재난을 극복하고 상업의 중심지가 된 곳입니다. 우리는 다니엘 8장 8절에서 헬라를 일으킨 알랙산더 대왕 이후 네개의 나라로 나누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리시마쿠스는 트레이스를 카산더는 마게도냐를 톨래미는 애굽을 실루커스는 시리아와 동부를 찾지 하였습니다.

그후 애굽왕 톨레미 2세는 문화와 건축을 장려하며 애굽을 통치하였는데 그 당시 시리아 왕은 톨래미 2세와 정략적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왕후 라오게디아를 페위하고 애굽왕의 딸 베레니체와 결혼하였습니다(단11;6). 그러나 이 결혼은 복수심이 많은 전 왕후 라오게디아의 친정 오빠에 의하여 재난을 불러 오는데 그 왕후의 이름이 라오디체(Laodice)였습니다.

라오게디아는 처음부터 발달된 도시는 아니였지만 로마에 편입되면서 그 지리적인 요건에 의하여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진으로 토양이 기름진 농경지와 목축업을 일어났고 라오디게아는 로마의 아시아 정복을 위해 구축한 동방도로 4개와 만나는 교차로에 있어서 상업과 무역과 은행업이 발달되어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계3:14-22) 그 이후 로마가 라오게디아 주변 25개의 마을을 정치적 수도로 삼으면서 라오게디아는 정치적 중심 도시로 급부상했습니다.

3. 히에라볼리
히에라볼리는 이 세도시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도시에서도 천연 장관을 이룬 기기묘묘한 하얀 용암절벽들이 폭포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천해적 아름다움으로 하여 히에라볼리라는 이름이 아마존의 히에라 여왕으로 유래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이곳에는 그 당시의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신전과 교회 그리고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에 지었던 두개의 극장의 잔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히에라볼리는 지진과 함께 질병 치료에 아주 좋은 온천이 솟아나와 천연 온천지로 명소가 되었습니다. 라오게디아의 교통의 발달과 함께 온천을 즐기려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고 있었고 더우기 지진의 잔재가 남아 있어 깊은 천연 지하동굴을 통하여 가끔씩 유독가스가 불출되면서 짐승들이 죽음을 몰고 오면서 이곳은 신들이 역사하는 곳으로 미신적 민간 신앙이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도시가 오랜 세월동안 상업적 도시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가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동방의 무역항이 된 에베소와 매우 가까운 지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동서 아시아를 잇는 로마의동방전략적 요지가 되면서 이 도시들은 정치적 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라오게디아와 헤에라볼리의 진입로에 위치한 골로새 지역의 주민들은 여러가지 자연신을 섬기는 브르기아 인들이 주거하고 있었습니다. 부르기아 인들은 이 지역이 고대로부터 전술적 요새로 된 카드무스 산맥의 정기를 받은 강인한 성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시리아 안티오쿠스 대왕 때에 바벨론과 메소포타메아 일대에 살고 있던 유대인 2000세대를 강제로 이주 시킨 루디아와 부루기아 일대에 인접하여 자연히 많은 유대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으로 유입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인의 긍지를 지켜왔지만, 지역적 천혜로 인한 우상숭배와 온천으로 말미암은 술과 윤락으로 차츰 세속화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인의 신적사상과 세상의 부귀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특수한 지역이 되고말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종교적으로 흥왕하던 곳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왕성한 도시로 변천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서신에서 '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하노라'하였습니다. 이 원리는 영혼이 잘 된 곳은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고대 어느나라 어느 종교를 보던지 종교의 발상지는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에베소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 들인 골로새는 이웃도시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와 함께 지리적 입지 조건에 호재를 얻어 정치 경제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흥왕을 누리던 세계 각국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명소들이 모두 쇠토 내지 소멸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언급하신 복음과도 중요한 신학적 관계 이루기도 합니다. 주께서 부자가 하늘나라를 들어 가기가 힘들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천혜의 축복을 받게되자 점점 그 사이를 파고든 물질적 풍요 가운데 세속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프루기아의 술과 온천'이 유대인을 타락하게 하고 있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짜라투스트라의 선악원리
그러나 이 지역의 문제는 고대로부터 흘러 내려온 종교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골로새서가 에베소서와 매우 유사한 문맥을 가진 서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을 언급한 것이라면 골로새서는 창조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교회의 비밀을 기록하여 골로새 일대에 흘려내려 온 이단적인 배경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독일의 유명한 작가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라는 책을 읽어 보신 일이 있는지요.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우리 때에는 그 유명한 데미안과 함께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영혼을 유혹하는 책 중에 하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짜라투스트라는 지금부터 3천년전 즉 기원전 700년 전, 구약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뒤 가나안 땅에 이르러 아직 사사에 의하여 다스려지던 때의 페르샤(바사)의 종교 철학자 '조로아스터'의 신학적 사상을 서술한 책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를 독일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는 배화교의 경전 에베스타(Avesta)에서 아래와 같은 종교이론을 설법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아후라 마즈다'라는 선한 지혜의 신이 다스리는데 그와 대립하는 '아흐리만'이란 어둠의 신이 있어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는 '아후라 마즈다'의 일을 방해한다,이로서 선한 신과 악한 신 사이에는 불과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두 신 중에 어느 편에든지 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한 일을 하는 신 '아후라 마즈다' 신은 빛의 신인 까닭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예배하기 위하여 불을 피워 숭배하여 후일에 배화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때 불의한 사람들은 선한 신과의 전쟁을 피하여 빛으로부터 도망을 하여야 합니다.

만약 이 둘 사이에 아무대도 들지 않은 사람은 어떤 일이던 사물이던 아무런 간섭이나 관여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려 누군가가 와서 자기를 책망하여 주고 욕하여 주기를 바라는 외롬의 지옥에 빠져 들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짜라투스트라의 주장이라면 인간은 선과 악 중에 어디에 속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적 사상은 오랜 세월동안 페르샤 (바사)국의 종교적 추종 이념이 되어서 바벨론과 메소포타미아에 붙잡혀 온 이스라엘민족 '디아스포라'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쳐 유대인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적 절대 사상이 날이 갈수록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신학으로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더우기 시리아의 안타오쿠스 왕의 유대인 이주정책에 의하여 루디아와 프루기아 일대로 이주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카드무스 산맥을 따라 흐르는 루카스 강의 천혜적 자연환경과 지진으로 솟아 오른 기기묘묘한 용암절벽의 신비 가운데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펼처진 술과 온천의 윤락적인 이방생활들은 그들의 신앙을 신비의 종교로 바꾸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현대교회와 이분법적 신학사상
오늘날에도 이러한 이분법적 신학사상이 들어와 많은 목사들이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될 때 갖고 온 유일한 무기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가지못하게 하는 악법인 것입니다. 선과 악은 오직 전지전능자 안에 섭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골로새를 중요하게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복음의 요람 에베소에서 출발하여 사도의 가르침을 이어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들 중에 어느 교회는 부요함에 물들어 책망을 받는 교회가 되었고 또 어느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 같이 칭찬받는 교회를 낳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나타난 지혜가 삶의 터전 가운데 펼쳐진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화합하여 명예와 부귀영달만을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탐구가 중단되고 경건한 믿음 생활이 방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풍요함을 누리는 우리나라 교회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 처해져 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질의 풍요로움 가운데 교회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리고 오직 선과 악을 분변하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가진 교회로 변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골로새를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을 바로 잡는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