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구원의속성

(믿음씨리즈1)믿음의 태동

이요나 2001. 12. 5. 13:13
믿음의 태동(1)


오늘은 믿음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9절에서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이라고 말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같은 성령으로부터라는 기록과 다른 사람들이라는 표현이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믿음을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 전매특허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필요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가 우리를 대속하신 구세주이심과 그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아는 하나님의 지식을 터득하게 되며, 이로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게된다.

그러므로 지식의 말씀 은사와 믿음의 은사는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수 있는 현상으로 믿을 때 지식이 주어지고, 그 지식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호환성이 있음을 알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에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12장 서두에서 신령한 것"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성령은사를 설명함에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의 것이라도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어떤 사물을 대할 때 그 지식을 얻기까지 고심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그 지식을 터득한 후에야 그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하물며 성령은사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할 때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를 접해보지 못한 한계 속의 인간으로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격히 말하여 우리는 영원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알 수도 또 표현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영원이란 것은 하나님께 속한 신적 영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한계속의 인간이 그 신적 영역으로 초대되었다는 사실과 장차 우리가 그 영원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믿음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세계에 대하여는 여전히 신비의 세계일 수밖에 없고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하나님의 은사 중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여 왔다. 그 이유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아홉가지 은사를 기록된 순서대로 나열하면 믿음이 지혜와 지식의 은사 다음에 있으며 신유의 은사 위에 놓여있다. 위에서 3번째이고 아래로부터는 일곱번째이다. 아홉 가지 은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연결된 질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2장 28절 이하에 기록된,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직무의 질서와도 같고 갈라디아 교회에게 말씀하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도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소경이 눈을 떴으며,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며,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악한 귀신을 쫓아냈으며 죽음에서 살아나기도 하였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신유와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결국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11"23)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의 은사는 이 땅에서의 기적과 이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지식과 하나님에 속한 계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은사를 말하는 것으로 믿음의 은사 위에 놓여있다. 그러나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먼저 믿음의 은사를 정의하려면 성경에서 그 어원을 찾아서 살펴보아야 한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으로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 속에서 태동되는 질서를 포괄한 상호 호환적 의무와 책임을 가진 의미로서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원초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율법의 수행과 명령과 성도의 의무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 처음 인간이 지음을 받음과 동시에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들 속에 속한 영원한 생명체의 구성 원소로서 창조자의 사랑으로 베푸신 은혜였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에게 생명과 함께 주어진 영원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들은 소멸되고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인간은 믿음이 상실된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다음으로 갑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정의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기록하였다. 따라서 믿음이란 소망 속에 속한 것이기도 하며, 믿는 자 안에 성취된 증거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믿음 속에는 미래와 현재가 시공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믿음은 인간의 필요와 소망에서 출발한 것이라도 믿음의 태동과 믿음의 성취는 하나님의 신적 요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롬10:17) 증거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원리로 회복되는 것을 말한 것으로 성경은 그 구원의 원리에 대하여 "우리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 바 없다"고 기록하였고,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10:9-10)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