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구원의속성

(믿음씨리즈2)믿음의 방해자를 제거하라!

이요나 2001. 12. 6. 01:02
(믿음씨리즈2)믿음의 방해자를 제거하라!


두번째 소개되는 사람은 유대인 중에 존경받는 회당장 야이로이다 . 회당장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자리이다. 이들은 유대인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고을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가버나움의 회당장이라고 하면 그 지역의 특성상 야이로는 덕망과 인품을 가춘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에게는 12살난 외동딸이 있었다. 성인식을 마친 사랑하는 외동딸이 죽어간다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아마 그는 이미 모든 의료행위와 민간요법 과 종교적인 관례를 통하여 인간의 힘으론 자신의 딸을 도저히 살릴 수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마가복음 5장 22절에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하소서”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 기록으로 우리는 야이로의 절박함이 극도에 달았음과 그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장면을 본 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위에 손을 얹으사”라는 표현은 어떤 종교적 행위로서 지금도 우리 사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손을 내밀러 문둥병을 정결케 하신 사건을 목도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 안식일날 회당에서 손마른 자의 손을 만져 고치신 것을 목격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야이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자이시며 구세주로서 믿음을 갖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외동딸의 생명을 위하여 발 아래 엎드렸을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위치를 떠난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야이로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유대교 속에서 자신이 누리던 모든 위치를 박탈 당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는 출교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는 딸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이 쌓아온 모든 명성과 준영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용기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명예와 존영을 위하여 자식과 부모의 천륜을 하루아침에 끊어버리는 많은 사건들을 목도하고 있다 . 예수께서 선뜻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신 것도 야이로의 진정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님을 모시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혈루병 여인을 만나게 된다.



생명이 촉각에 달릴 때 이러한 일을 만난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러나 그는 그 현장 속에서 놀라운 믿음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혈루병 여인은 예수의 기적을 보지도 못하였지만 소문으로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야이로는 많은 사람들을 병에서 일으킨 기적의 현장에서 목격한 것처럼 예수께서 죽어가는 딸 위에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믿음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목적은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용기가 있을 뿐이었다. 긴급한 현장에서 만나는 온전한 믿음의 형태는 많은 사람들을 설복하는 힘이 있게 마련이다. 야이로는 이 시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녀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말씀하셨다. 주깨서는 그녀에게 “딸”이라는 호칭을 쓰겼다, 삽십대의 예수님과 사오십은 족히 되었을 여인에게 딸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배꼽을 잡게할 일이지만 그 여인과 주님의 관계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녀가 예수님이 창조자 하나님이시며 구세주로 오신 분임을 알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인 야이로는 아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성경의 지식들이 아직 믿음이라는 의식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이로에게 절대절망의 순간이 다가왔다.



예수님이 가서 손을 얹으면 살아나리라는 소망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의 하인들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이제 선생이와도 소용없다고 전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청천벼락 같은 소리인가? 예수를 향한 실날같은 믿음조차 소용없게 된 것이다. 자신이 혈루병 여인과 같은 믿음이 있다한들 죽은 딸을 살릴 수 있겠는가하는 절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에도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하셨다. 당신 같으면 그 상황 속에서 믿음이 생기겠는가? 이미 그의 집에서는 죽음의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마가의 주석을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가는 그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여 딸의 죽음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신 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외에는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하게 하셨음과 주께서 딸이 죽지 않았다는 말을 비웃던 자들을 내어보내셨다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우리에게 믿음의 태동이 배경과 환경과 지대한 관계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 믿음을 가진 혈루병 여인과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믿음의 태동과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한 사람의 믿음이 생성되기까지 그 환경 속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과 경계해야할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