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12:14) 지혜의 샘

이요나 2007. 4. 17. 17:38

(잠언12:14) 지혜의 샘

 

(잠12: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잠언서 12장은 훈계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자들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장과 마찬가지로 의로운 지도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교훈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I. 삶의 지혜 (1-8)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1)

 

A. 훈계와 지식과 징계를 좋아함

우리말에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근원은 그가 어릴 때부터 훈계를 잘 받으며 지식을 좋아하느냐와 관계가 있습니다. 훈계란 교훈에 대한 책망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윗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 말하여 그 훈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갈보리채플 사역에 뛰어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도 남지 않는 이유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갈보리채플이 자신들의 출세의 지름길이 되는 것으로 알고 찾아 왔습니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교회이니 먼저 시작한 놈이 땡을 잡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 된다 기록하였습니다.

 

갈보리채플의 사역자의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없이는 갈 수 없는 좁은 길입니다. 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기까지 맑은 물을 마시며 열매를 맺을 때를 기다려야 하니 말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4:26-28) 하셨습니다.

 

사실 나는 참으로 조급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생각과 말이 빨라서 늘 실패가 많습니다. 아직도 이러한 성격 때문에 많이 회개를 하고 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성격은 우리 한국사람들의 공통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빨리 빨리라는 말이 어려서부터 귀에 붙어서 생활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저는 말씀을 공부하는 데는 특별한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공부를 하는 데는 꾀가 나고 싫증을 잘내는 데 성경공부에만큼은 하루 종일 엉덩이에 풀이 날 지경이 되어도 흥미롭고 기쁨이 솟아 납니다. 그 덕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강해 원고를 모두 작성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러한 성경공부는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목회자들 사이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자들이 말씀에 갈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게 강해설교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면 그들은 모두 밭을 매러 간다 소를 시험하러 간다는 둥 발을 빼고 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갈보리채플 강해설교의 준비가 하루이틀에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강해설교는 오늘 말씀과 같이 자신을 가르치는 훈계로서 지식에 속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제목설교는 설교자의 언변과 재능을 바탕으로 하지만 강해설교는 성경적 지식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충실히 해 두지 않으면 절대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흥미롭게도 1절에서 성경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징계는 훈계와 대비된 말로서 훈계는 곧 우리의 잘못을 징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자식을 징계하지 않는 아비는 친부모가 아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어찌 아비가 자식을 훈계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성경은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딤후3:16,17) 기록하였습니다.

 

몇 일 전 저희 교회에 다른 교단의 신학을 공부한 전도사 한 분이 찾아와 헌신을 자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자기가 배운 그대로를 가지고 그것을 우리에게 오히려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는 주여주여 삼창하여 기도하라 떼를 쓰고 또 어느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 손을 얹어 귀신아 나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예배를 위해 기도할 때에는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소리치며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 전도사의 기도를 듣고 있자면 30년 전의 악한 영들이 다시 내 머리 속으로 기어 들어 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갈보리채플에서 사역을 하려면 자기 것을 다 내려놓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들기를 힘쓰라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위대한 목사님으로부터 오중복음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 가르침대로 목회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 길로 돌아 서고 말았습니다. 나는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는 독이 있음을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B. 어진 여인의 면류관

솔로몬은 4절에서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위에 언급된 말씀이 가장된 남자들에게 한 말씀에 비추어 한 가정의 균형을 위한 교훈에 해당됩니다.

 

오늘날 여권신장이 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균형의 질서를 말하여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인들의 인권을 무시 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평안한 삶을 위한 균형적 질서를 말한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든 남자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여자들이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진 여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인들의 감수성에 대해 절제를 요구한 것입니다. 여인들은 감성적이고 정적이라서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남편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지남침에서 삼가고 어진 마음으로 가정을 꾸려 나간다면 그 가정은 남편이 소망하는 평안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C. 의인이 칭찬받는 이유

세번째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공직한 생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직한 생각이란 공평하고 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생각을 뜻합니다. 이에 비하여 악인들은 올지 못한 일 곧 육신의 소욕을 도모하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또한 솔로몬은 6절에서 악인의 말은 사람의 피를 흘려도 의인의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하였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것은 서로 당을 지어 지신들의 육적인 소망을 이루고자 치고받고 하는 데서 나옵니다. 남을 모략하고 모함하여 자기의 지위를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의인의 입은 정직하여 사람들로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로하여 악인의 결국은 엎드려저 소멸하고 의인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게 됩니다.

 

II. 삶의 뿌리(9-19)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는다(14)

 

A.     불의의 이익을 탐함

우리말에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음의 법칙으로 자기가 행한 대로 거둠의 질서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그 행한 대로 악을 거두고 의인은 그 입이 행한 대로 복록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모두 그가 어려서부터 무엇을 듣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에 대한 징계를 받았느냐에 의거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15) 한 것입니다.

 

B.     악한 입술의 열매

17절에서 솔로몬은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마음이 조급하고 패려한 자를 훈계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는 파르르 떨며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돌아 오는 수욕을 인내로 참아냅니다. 이것은 의인들의 연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18)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응은 확실하게 다릅니다. 성경은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깜짝할 동안만 있을 뿐이라(19) 하였으며 다시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21) 하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전된다는 말씀은 의인의 영원한 삶을 말한 것입니다.

 

 

III. 생활의 패턴(22-28)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라(25)

 

A.     의인의 삶

잠언서 12장의 마지막 단락은 의인의 삶에 패턴에 대하여 언급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먼저 여호와께 기쁨을 받는 진실한 삶을 말하여 그것은 의인의 입술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모든 관계의 시작이 말로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화근은 말에 있습니다. 그로하여 성경은 혀는 불의의 세계라 하였습니다. 조급한 자신의 입 방정으로 모든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바른 지식을 전파하여야 할 것을 말하여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 두어도 미련한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24) 하였습니다.

 

나는 가끔 아직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변자라도 된 것처럼 발 빠른 행보를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 대표입니다. 모든 이단들의 행보는 참으로 전입가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전하느라고 세월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은 사람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악한 입술인 것입니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부지런한 손이 사람을 다스리며 게으른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보면 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한 사람들입니다.

 

세번째로 그는 마음의 근심이 없어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서 근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날의 일은 그날에 족하다 하시며 내일 일은 내일에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선한 말은 사람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 줍니다. 그것은 의인의 말은 소망과 평안을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솔로몬은 26절에서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의인의 길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현실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 보장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주의 말씀으로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인도자가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히13:7) 하였으며 다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13:17)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의인된 우리는 사람들을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드립니다. 우리가 온전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과 삻의 행함이 생명의 길로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