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14:12) 지혜로운 여인의 면류관

이요나 2007. 4. 21. 19:40

(잠언14:12) 지혜로운 여인의 면류관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서 14장은 온전한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세우는 지혜에 대하여 다르고 있습니다. 그 지혜는 모두 같아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과 나라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는 것은 사람과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주께서 친히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I. 집을 세우는 여인(1-19)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1)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온전한 가정은 지혜로운 여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좀 극단적인 비유이기는 합니다만 우리 말에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 오면 집안이 흥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도 여자들의 경솔함을 책망하여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편롬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5:11-13 하였으며 다시 그로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5:14)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여인은 룻과 다윗의 처가 된 아비가일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나는 아비가일을 좋아합니다. 아비가일은 재물에 목이 곧은 나발의 아내로서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다윗을 대적하고 그의 수하들을 영접하지 않는 남편의 어리석음을 대신하여 음식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녀는 후일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가 낳은 아들들은 다른 아들들과 달리 다윗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세우는 자들의 지혜를 언급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정결하고 온유하며 주의 뜻을 잘 따르는 여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짓게 하셨습니다.

 

A.     정직함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가장 덕이 되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솔로몬은 2절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정직한 자가 아니라 정직한 자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정직하지 않으면 여호와를 볼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셨습니다.

 

  B. 성실한 증인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의 두번째 덕목은 입에 있습니다. 3절에는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입술이 지혜로운 자의 입술이 될까요? 그 중에 제일은 먼저 신실한 증인이라 하였습니다. 신일한 증인은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오늘날 이미 적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교회에는 거짓 증인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주 예수께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실 것입니다(살후2:7,8).

 

C. 지식의 면류관

솔로몬은 6절과 7절에서 지혜로운 자의 입술의 지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실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터득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주의 성령으로 사도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다 하셨습니다(엡4:11-14 참조).

 

II. 생명의 샘(20-3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25)

 

A.     선한 이웃(19-25)

솔로몬은 18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공부 시키는 것은 많은 지식을 터득하여 온전한 지혜를 얻어 온전한 인격자가 되어 이웃과 더불어 영화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에게도 물려 줄 기업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다서에서 자기 지위를 떠나 다른 색을 따르는 멸망의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가인의 길에 선 사람들이며,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 사람들이며, 패역한 고라를 좇아 멸망한 사람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받은 기업은 이제 곧 다가 올 7년 대환난에서 모두 무너지고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면류관이란 최후의 승자에게 씌워 주는 왕관을 말합니다. 계시록 19장에는 백마를 탄 자의 면류관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하였고 특별히 말하여 그 머리의 많은 면류관 중에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였습니다(계19:11-13 참조).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B. 견고한 피난처

오늘날 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처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있는데 신실한 믿음의 그리스도를 아는 경건하고 신령한 예배가 없습니다. 온갖 것이 교회 안에 들어와 어리석은 말로 성도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헛된 것을 쫓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25) 하였습니다.

 

요즘은 날만 새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총기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거침없이 범행 동기와 계획을 영상에 담아 방송국에 보낸 조승희 형제의 잔인함은 보는 우리의 가슴이 무너지게 합니다. 그는 거침 없이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사자이며 순교자라 말하였습니다. 그는 악마의 사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자가 되어 심판을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교회 목사는 얼마나 수치스러울까요? 교회는 그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기에 그 가슴에 증오와 시기와 저주로 가득 차 있었을까요? 그가 만약 그리스도의 진실을 알았다면 어쩌면 그는 그의 말대로 신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은 26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기록 하였습니다. 견고한 의뢰란 성도들을 지키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오직 이승의 자랑이 아닌 그리스도의 날에 받을 의의 면류관을 위해 달려 가는 의인들의 고난의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또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생명의 샘으로 마르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날로 고통의 세월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내 발걸음은 무거워 숨 쉬기 조차 힘에 박차옵니다. 주여 어서 주의 입김을 부어 넣어 나로 생기를 얻게 하시고 그 능력의 기운으로 주의 백성을 인도하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