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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6:3) 하나님의 인생경영

이요나 2007. 4. 29. 18:30

(잠언16:3) 하나님의 인생경영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한 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보람된 인생을 경영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류가 존재한 이래 스스로 이 문제를 극복하고 자기 인생을 복되게 경영하고 한 세상을 부족함 없이 살다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문제가 온전했다면 아마 사람들은 내세를 찾지 않고 이 세상의 만족에 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잘 살수 있느냐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로서 이 문제를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 그 해답을 발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삶의 경영(1-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경영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9)

 

A. 사람의 경영

솔로몬은 1절에서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 준비에 필요한 의견들을 모으지만 이를 합당하고 감동적인 말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일을 계획 할 때 그 마음으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말로 표현되어 다른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 사람들의 공론을 이끌어 내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사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말로 남을 감동시키고 자기의 동역자로 이끌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계획한 바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경영하는 바가 자기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뜻을 깨달아 주의 영광에 이르기 위한 경영이라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2) 하였습니다. 여기서 감찰한다는 말은 저울로 무게를 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기준으로 영양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만족을 하고 합당하게 하였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어떤 일들을 도모할 때 자기의 유익이 되도록 일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인간의 심성을 말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렘17:9) 하였으며 또한 바울은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13-15)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성취하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교만함을 결코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B. 하나님의 경영

사람의 경영한 바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의 지혜와 지식은 한계가 있어 편협한 자기 생각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완벽하고 가장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편견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의논과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한다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합당한 일을 도모하고 성취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성경의 해답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3)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모든 행사를 맡긴다는 것은 내가 세운 계획을 주께서 성취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해 마음에 뜻한 바 모든 행사의 계획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행할 때 자기 생각에 치우쳐 자기가 계획한 일들을 성취해 달라고 떼를 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가당치 않은 일을 떼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때 문제는 자기 생각에 치우쳐 조급하게 앞뒤 없이 달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일의 시작이 풀리는듯하면 마치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힘을 쏟아 부어 결국 낭패를 보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녀의 모든 행사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시는 주께서는 우리의 잘못된 계획에 대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10) 하였으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하였습니다.

솔로몬은 8절에서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그 소득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의 욕심과 달라서 질량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삶의 용도에 가장 합당한 것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들을 보라 저희는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나 하나님께서 먹이시나니 너희는 새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6:19) 하시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셨습니다. 그러하심에도 오늘날 교회들은 마치 대형사업을 하는 기업과도 같이 재물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이미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는 흥미로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광야에서 4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아침에 나아가 자기의 식구에 합당한 만큼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이 욕심을 따라 많은 것을 주어 왔으나 곧 상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욕심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사람 위대한 다윗왕에게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바로 우리아의 처 밧세바의 일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우리아의 처 밧세바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이를 책망하여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부한 자는 양과 소가 많으나 가난한 자는 오직 작은 암영 새끼 하나 뿐이라 그 암양이 그 가족에게 딸과 같이 여겼거늘 부자의 집에 손님이 들자 부자가 자기의 양을 잡기를 아까워 하여 가난한 집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잡았다 함과 같다(삼하12:1-4) 이와 같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9) 하였습니다. 이 일은 비단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 된 피조물이므로 그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4) 기록 하셨습니다.

 

II.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10-2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8)

 

A.     하나님의 말씀과 지도자

두번째 단락은 지도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주께 두고 그 행하고자 하는 모든 행사를 주 앞에 맡기면 그 사람의 모든 행사가 복을 받고 잘 되어 그 사람은 주 앞에 귀히 쓰이는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의 지도자의 덕목을 말하여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10)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백성을 재판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말로서 지도자의 판단력을 말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가 아버지 다윗 왕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주 앞에 일천번제를 드리며 기도하여 하나님께 많은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청을 가상히 여겨 네가 부와 수도 원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을 위한 지혜를 구하였은즉 네게 부와 수도 겸하여 주겠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국가 최고원수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백성을 다스리는 판단력의 부족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세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또한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바른 판단과 그에 대한 계획과 대책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의 권세를 펴고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 권좌에 앉으므로 세상의 왕들은 모두 자기 욕망에 이끌려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운행과 다스림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펴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왕들은 모두 백성과 하나님 앞에 칭송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지도자의 온전한 판단의 기준에 대하여 먼저 공평한 간칭과 명칭을 요구하였습니다. 간칭과 명칭은 모두 무게를 측량하는 저울로서 올바른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덕성과 윤리적 잣대를 말한 것입니다. 세상의 법은 그 당시마다 발생되는 문제점을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만든 법률은 그 지혜가 사람에게 있어 각 시대를 따라 변하는 정세와 민도의 가치기준을 따라 그 공평의 균형을 상실하여 계속 새로운 법을 제장하던가 뜯어 고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틀과 인간의 삶의 경계를 설정하신 공평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속의 추돌도 모두 주께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가추어야 할 두번째 덕목은 바로 의로움과 정직함입니다. 솔로몬은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한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의란 하나님의 뜻을 말하며 정직함은 성실성을 의미합니다. 계속하여 그는 성급하지 않은 지혜를 말하였습니다. 왕의 말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서 한번 쏘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의 왕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무책임한 말들로 하여 세계정세가 밝았다 흐렸다 하는 것입니다. 이에 솔로몬은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15)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가 구해야 할 것은 지혜와 총명입니다.

 

B.     겸손한 마음

지도자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교만입니다. 솔로몬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라(18)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지혜가 가장 높은 것처럼 착각하여 스스로 주권자가 되어 백성 앞에 서려 합니다. 그 결과 그는 권좌의 속성에 의해 재물과 명예를 이끌려 악한 일을 일삼게 되면 결국 그는 세상의 지탄을 받고 권좌에서 이슬과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으면 그 권좌는 악한 길의 지름길이 되어버립니다.

 

C.     학식을 더함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온전한 지도자가 될까요? 솔로몬은 삼가 말씀에 주의 하는 자가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0)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에 주의한다는 것은 말씀에 귀를 기울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선포하시면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삼가 조심하라 하셨고 다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조심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춰 번역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준비 된 것은 유황불 지옥입니다.

 

계속하여 그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가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21) 하였습니다. 마음이 지혜롭다는 것은 그 마음이 오직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이며 또한 입이 선하다는 것은 그 입술이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선한 말을 듣기에 합당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가끔 오늘의 내 형편에 대하여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십여년의 세월 가운데서 아직 자립을 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위로를 받고 또 감사하는 것은 주께서 나로 선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앞에 하나님의 사자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면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더럽히는 악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22) 하였으며 다시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23)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부족함에서 채우는 것뿐이 아니라 넉넉한 중에 더욱 풍성하여 그 열매가 하나님 앞에 항상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그 결과에 대하여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24)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우리 영혼과 마음과 그리고 육체를 강건케 하는 명약 중의 명약입니다.

 

III. 인생의 면류관의 성취(25-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33)

 

이제 우리는 가장 바람직한 인생경영을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선택의 문제는 인간을 위해 개설된 에딘동산에서부터의 딜레마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지식의 열매를 먹었다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생명길로 나가는 지식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생각을 지키라 이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느니라 하였습니다.

 

A.     무엇을 노력하는가?

25절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기록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말씀은 14장에 이어 두번째 나오는 말씀입니다. 14장에서 이 말씀은 어리석은 자의 온갖 믿는 자들이 그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는 말과 관련되어 있으며 16장에서는 선한 지식을 따르지 않고 불량한 자의 맹렬한 입술을 가진 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 다 모두 이단사설을 즐기는 사람들로 사람들의 영혼을 미혹하는 무리들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선한 것 같고 위대한 것 것과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보임도 하여 열일 제치고 부지런히 쫓아 나서지만 만약 그 길이 지옥행이라면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9잠15:31) 기록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26절에서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입맛 당기는 대로 간다는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독사의 독에 물렸다면 그 독을 얻기 위해 산지사방을 돌아 다닐 것이며 만약 선한 꿀송이를 먹었다면 그 마음의 단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내가 갈보리채플의 목사가 된 후 변화된 것이 있다면 외형적인 생활에서 내향적 생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산지사방으로 한시도 참지 못하는데 나는 가만이 앉아서 성경 말씀을 보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불량하다는 말은 벨리알의 아들을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30절에는 눈을 감은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하였습니다. 눈을 감는 자란 잘못된 것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자를 말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보고도 책망과 견책을 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많은 잘못된 일들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장로들이 불의한 일을 공공연하게 일삼아도 목사들은 그 일들을 못 본 척 하고 맙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다윗왕의 간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였습니다.

 

B.     무엇이 백발의 면류관을 얻게 하는가?

끝으로 솔로몬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31) 하였습니다. 인생의 말년은 참으로 고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노후 대책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자녀들과의 관계가 악순환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 우리나라는 부모의 상을 삼년간 모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백발에 선한 일들로 가득 찼다면 그의 노년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여기서 백발의 면류관이란 지식과 지혜의 믿음으로 가득찬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의미합니다. 나는 미국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의 인생은 영화로운 면류관입니다.

 

32절에는 다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기록되었습니다. 결론 부분에 이 말씀이 다시 나오는 것은 분노가 사람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은 분을 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죄로 연결되어서는 않된다는 말씀입니다. 더 큰 문제는 분을 풀지 않고 잠을 자므로서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기쁘면 아르레날린이 생겨서 얼굴에 생기가 될게 하고 뼈가 튼튼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을 품고 있으면 몸을 해치는 생체 호르몬이 생성되어 암이 발생하던가 혈압이나 간장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제 솔로몬은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어 로또와 같은 복권을 사서 기도원으로 올라 가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사가 모두 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서두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는 오직 선하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께서 베푸신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디 자기 인생을 하나님 뜻 가운데서 경영하시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위대하신 성호 앞에 내 모든 짐을 내려 놓습니다. 주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사 그 은혜의 해를 내게 더하여 나로 주의 말씀을 보게 하셨아오니 주여 부디 나와 함께 한 자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내가 주 앞에 영영히 살고자 하나이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