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17:3) 자기 완성의 지혜

이요나 2007. 5. 5. 17:57

(잠언17:3) 자기 완성의 지혜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단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느니라

 

우리말에 수신제가후 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몸과 가정을 잘 다스린 후에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적 교훈은 잠언서 17장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I. 자기수성의 지혜(1-9)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

 

A. 화목제의 가정

가정은 우리 삶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구성이며 국가의 기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가정의 위기가 감도는 세상에서 수신제자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로운 비유입니다.

 

육선(肉饍)이란 이스라엘 민족들의 풍습으로 그들은 감사제나 화목제의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일부만 제단에 불에 태우고 나머지는 집에 가지고 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레7:16; 19:5).

 

명절과 같은 때에 집안 문중이 모이면 집안 대소사 문제로 서로 언쟁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인지상정이였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명절에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남편은 한나에게 더 많은 제물을 주었어도 한나는 첩의 충동으로 슬픔에 빠져 애통을 하였었습니다. 아마 이때 사무엘 아버지는 속이 터졌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드린 많은 제물이나 의식보다 가족의 화목이 중요함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송사한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 사람과 화해를 한 후에 돌아와 제물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선순위를 먼저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 해석하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가정의 화목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먼저 하나님 앞에 먼저 서 있는 가족의 모습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가족이 서로 시기하고 다툰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서 많은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로 당을 짓고 파벌을 만들어 지지고 볶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탄생한 이래 발생한 문제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에서 식탁의 문제로 히브리사람과 헬라여인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서로의 이권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적 행사에는 항상 이권다툼이 발생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B. 슬기로운 종으로부터의 훈련

솔로몬은 2절에서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 또한 교회와 관련된 말씀으로서 슬기로운 종이 받을 아름다운 명예와 장차 그가 받을 하나님의 기업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봉사를 위해 그의 택하신 종들을 사도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습니다(엡4:11,12). 주의 종들의 봉사로 아직 거룩한 품성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과 훈계의 말씀으로 온전케 합니다(딤후3:17).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오랜 믿음의 연단이 필요합니다. 주 예수를 믿어서 단번에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지만 죄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 안에 학습된 죄성들을 떨쳐 버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거룩하신 진리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됩니다.

 

C. 믿음의 연단

솔로몬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은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3) 하였습니다. 이것은 외형적인 부분보다 내면이 변화되어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8,19)하셨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그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로서 서로 시기와 원망과 다툼이 일어나며 마음의 분노로 하여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4:23) 하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훈련에서 두번째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듣느냐에 있습니다. 선한 말과 지식을 듣기를 싫어하고 궤사한 입술의 말과 거짓말을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악과 거짓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나는 그들을 전도하려는 마음을 갖고 만나곤 합니다만 그들은 세상의 더러운 말들로 가득차서 정말 듣기조차 민망한 악하고 더러운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냅니다. 그들과 한참 있다보면 심령이 상해짐을 느끼곤 합니다.

 

솔로몬은 5절에서 가난한 자를 조롱하고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들이 받을 형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 또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사람들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골3:25)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기록하였습니다.

 

계속하여 그는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하였습니다. 우리말에 노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삶 가운데서 체험을 통하여 터득하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7절에는 뇌물에 관한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요즘 대선과 관계되어 또 뇌물과 관계된 루머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벌들의 정치와 결탁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은 관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뇌물에 미혹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같다 하였습니다.

 

9절에서 솔로몬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라 하였습니다. 참 우리가 하기 힘든 것만을 명령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서로 모이면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은 낮추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II. 대인관계(10-19)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17)

 

솔로몬은 수신제가를 위한 두번째 단계로서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인간은 태어남으로부터 이웃과의 관계를 통하여 사회적 관계를 갖게 되며 이것은 온전한 삶을 완성하는 바탕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통하여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고 미련한 자와 친하게 되면 그와 함께 커다란 문제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10절에서 끝으로 솔로몬은 한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개로 미련한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미련한 자를 다스리는 것 보다 총명한 자를 다스리는 것이 그만큼 빠르고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은 미련한 자는 합당한 책망도 쉽게 받아 드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충고를 받을 때 합당하게 받아 드리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두번째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배반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사화생활을 저해하는 가장 큰 해악입니다. 솔로몬은 배반을 하는 자에게는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만큼 배반의 대가는 잔인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으로 선을 갚지 말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인내로서 선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삼가해야 할 것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다툼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툼은 대게 이간질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사람을 미워하신다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미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이 없는 미련한 자에게 지혜를 사려고 애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함께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원리입니다.

 

끝으로 솔로몬은 지혜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18)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단사설에 넘어가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지식이 아닌 지식을 배우고 또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그 지식들로 이웃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그 지식이 옳고 그름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보증으로 따라 갑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문을 높이려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종교적 희생물이 되어 그들과 함께 지옥으로 내려 가는 것입니다.

 

 

III. 기쁨이 샘솟는 지혜(20-28)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두느니라(25)

 

수신제의 세번째 단계는 역시 자기 마음을 기쁨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마음의 훈련은 죄를 다스리기 위한 훈련 단계라 할 때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영과 육을 강건케 하는 특별한 훈련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20절에서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식을 둔 부모는 근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특한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기 마음의 즐거움을 갖는 것이다.

 

솔로몬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22)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생물학자의 경지를 넘은 듯 합니다. 그는 잠언서에서 마음의 기쁨이 우리의 인체에 미치는 일을 명확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최근 웰빙바람이 불면서 많은 학자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즐거움은 어떤 물리적인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혜 가운데 우리 안에 생기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오직 주 여호와를 기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육신의 것에 마음을 둡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둔다(24) 하였습니다.

 

끝으로 솔로몬은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27)하였습니다. 여기서 성격이 안존한 자란 감정을 절제 할 수 있는 자라는 뜻으로 차가울 정도로 성격이 냉엄하고 침착한 자를 말합니다.

 

나는 처음 갈보리채플에 목사가 되어 리키라이언 목사의 초청을 받아  싼타바바라 갈보리채플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척 스미스 목사님을 다시 뵈게 되었는데 그 당시 나는 미국으로부터 온 한국인 갈보리채플 목사에게 나의 갈보리채플 헌신에 대한 의심에 관한 말을 듣고 심한 상처를 받아 그 문제를 척 스미스 목사에게 털어 놓았었습니다. 이 때 척 스미스 목사님은 나의 말을 다 듣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내게 손을 얹어 마음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나는 척 목사가 무엇을 기도하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느 한쪽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 모든 일을 주께 고하는 척 목사님의 인격에 감격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의 경솔한 생각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우리 말에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솔로몬도 이를 말하여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28)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이 많은 것보다 침묵을 지켜 미련한 자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로 경솔하지 않도록 내 입술을 지켜 주시고 나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그리하오면 내가 주의 집에서 주의 아들들과 함께 유업을 나눌 수 있겠나이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