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19:20) 망하지 않는 부자

이요나 2007. 5. 19. 14:27

                                                                              -갈보리채플 이요나 목사-

 

(잠언19:20) 망하지 않는 부자

 

 

(잠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20)

 

I. 부자의 삶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2)

 

    A. 지식 없는 부자

잠언서 19장과 20장은 공부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여기서 왕의 입장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언급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왕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되었고 그의 부친 다윗에 의해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눈이 어두울 수 있고 편협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고대 왕들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솔로몬은 서두에서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패려하다는 올바르지 못하고 왜곡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여 남을 속인다는 뜻입니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가난하다 할 때 이것은 재물에 속한 것입니다만 2,3절 문맥을 따라 살펴 볼 때 여기서 솔로몬은 어떤 이성적인 것, 지적인 부분을 언급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지식이나 견문이 부족하더라도 교만치 않고 성실하면 그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하는 것이 바르지 못하다면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2절에서 패려한 입술이 되는 원인을 말하여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일에 대하여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마음의 소원을 세우고 앞뒤 분간 없이 달려 나갈 때 결국 자기 길을 망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벽기도나 또는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을 하면서 자기의 소원을 세우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을 만나 자신이 생각한 바와 같은 허망한 기도나 말을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 생각하고 물색없이 일을 저지르곤 합니다. 결국 그는 그가 행한 일이 세상의 이치에도 맞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도 않은 일이므로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여호와를 향해 원망을 한다는 것입니다(3). 참으로 물색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이단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이 땅에 재물을 쌓습니다. 그들이 즐겨 써먹는 도구는 심판과 천국을 말하며 계시록의 144000명이 자신들을 말한 것이라 우겨댑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44000명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에서 12000명씩 인침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7년 대환난 중의 일로서 우리 믿는 성도는 이 때 이 땅에 남아 있으면 않되는 것입니다.

 

 144000명은 7년 대환난 중 적그리스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우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로 적그리스도와 맞서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용사이지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단들은 자기들이 인침받은 144000이라고 우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믿음대로 7년 대환난에 들어간 후에야 자신들이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것이나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돌아 나올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B. 재물과 친구

솔로몬은 4절에서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돈이 많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가난하면 있는 친구들도 떨어져 나갑니다. 이럴 때 발생하는 문제는 모함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넘어뜨립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꼭 물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웃을 위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6절에서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재물이 많은 것이 허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재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부자는 살아서 호의호식하고 나사로는 그의 집 앞에서 굶주려 개들이 와서 그를 핥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죽어서 물 한 모금 구할 수 없는 지옥으로 내려갔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 갔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를 정죄하고 가난한 자를 선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재물과 관계없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고 사람들에게 합당한 선물을 나누어 주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7절에는 흥미로운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느니라  아마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이 말씀이 뼈에 사무치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는 과거 한 때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 때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재물을 다 잃고 가난한 목사가 되어 돌아 오니 내 주변은 항상 썰렁합니다. 내가 과거의 친구를 찾아 나서도 모두 나를 피하려 합니다.

 

우리는 넉넉할 때, 우리에게 베풀 힘이 있을 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의 영혼을 위해 선을 쌓는 것입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선을 베풀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다면 죽음의 날에 선을 베푼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들이 깨달아야 할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자신의 운명의 한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거짓 증인의 벌을 언급하였으며 미련한 자의 사치에 대하여 경계하였습니다(9,10).

 

 

II. 자수성가의 지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14)

 

  A. 왕의 선한 통치

솔로몬은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12)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국가와 가정의 토대를 말한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은 세습입니다만 원래 이스라엘에 있어 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국가에서는 왕의 개념이 없습니다만 아직도 군주국가에서 왕은 절대권력입니다. 그 누구도 왕의 명령을 어기고 살아갈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군주제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이라면 군주국가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택하신 이스라엘을 다스림에 모세와 같이 주께서 친히 세우신 종들을 통해 통치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름부음을 통한 신정정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들의 패역함을 싫어하여 왕을 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울을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사울 왕과 다윗 왕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도 자신의 믿음의 행함에 따라 어떤 결과를 이루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부어 세우신 두 왕의 행함을 통하여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름부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의 신을 부어 준 것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그리스도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성결의 영 곧 하나님의 지혜의 영을 기름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부르짖음은 사자와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과 같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베푸신 성령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이미 성경은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8) 하였습니다.

 

  B. 아들과 아내

솔로몬은 13절에서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온전한 가정을 세우는 토대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정은 가장 의 주권으로 이끌어 가지만 온전한 가정은 그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가도 그 후손들로 인하여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형교회들의 원로목사들이 아들들에게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한 판단은 이제 곧 세상에 들어 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면 솔로몬과 같이 다윗의 믿음을 이어 위대한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다윗의 아들이라도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압살롬이라면 그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란 말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여자들의 잔소리를 말합니다. 패역한 아들도 가문의 재앙이지만 어떤 일을 꾀하고자 하는 여자의 잔소리 또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말에 암탉이 지붕에서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남자라도 아내를 이길 남자는 없습니다. 삼손과 같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천하장사도 기생 드릴라의 벼게 송사에 머리를 송두리째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는 자녀와 아내를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 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14)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상속 받는다 해도 그것을 지키는 힘은 아내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장이나 아들이 어리석어서 부모의 재산을 탕진할 수 있습니만 여기서 솔로몬은 가정을 세우는 힘이 아내에게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게속하여 솔로몬은 부를 지키는 방법으로 부지런 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부자라고 하여 게으르고 태만하면 그는 곧 망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부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아무리 살아서 부유함을 누리고 죽어서 그 영혼이 음부로 내려가면 그 영혼이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계명은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등불입니다.

 

   C. 가난한 자의 구제

17절에서 솔로몬은 다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주님은 주의 날에 있을 일에 대하여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하셨습니다.

 

   D. 징계의 목적

18절에서 솔로몬은 흥미로운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어다(18) 이 말씀의 요지는 잘못한 아들을 징계할 것을 전재하였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형제가 범죄하면 경계하고 회개하면 하루에 일곱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자식의 잘못을 징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장래의 소망을 향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영혼에 관한 징계를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비단 자신을 거역한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제자에게도 해당한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조실록에도 거역한 아들을 뒤지에 넣어 죽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권세와 정치가 무엇이길래 자기 아들을 죽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않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최근 열린 우리당의 실태를 보면 자기들이 세운 대통령이 마음에 안든다고 탈당을 시키더니 이제는 대통령이 자신과 동거동락 하며 자신이 세운 지도자들을 차기 대권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연일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주면 다시 건져 주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지나치면 해가 됩니다.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몇 년 전 자식처럼 생각하던 청년들을 책망이 지나쳐 떨어져 나가게 한 쓰린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하여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려던 것이었습니다만 내 분노가 커서 그 한계를 넘어 결국 그 아이들은 나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은 내 일생에 거울처럼 기억될 쓰린 아픔이기도 합니다.

 

III. 말씀의 경계(20-29)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어다(27)

 

끝으로 솔로몬은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20) 하였습니다. 사람은 어느 위치에 서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고집과 아집에 빠지게 됩니다. 다윗도 그 결과 바세바를 간음하고 또 인구조사를 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어서 삶의 지혜를 따라 그 삶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다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있는 자는 더 받으며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잘못되는 원인 중 하나는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고 나면, 성경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다 깨달은 것처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유기적인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21) 기록하였고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23)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목사들의 잘못 중 하나는 지식의 말씀을 떠나 잘못된 교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사8:6,7) 책망하였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묘한 데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에는 납작 엎드려 은혜를 구하다가도 삶이 넉넉하고 부유해지만 그 모든 것이 스스로 이룬 지혜라 생각하고 거만하여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기에 게을러지고 거만한 자들과 동아리져 부끄러운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교만하여 지식의 말씀과 교훈을 떠난 결과입니다. 솔로몬은 이들에게 예비된 채찍을 말하여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29)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우신 말씀인지 깨닫게 하고서, 주께서 어찌 우리가 먹고 입을 것을 위해 하신 말씀이시겠습니까? 주께서 우리의 목자 되시니 우리를 친히 키우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성경에 기록된 지식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지혜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해 주의 기름부은 자를 친히 세우셨고 그들이 성령의 지혜를 인하여 너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리라 명하셨나이다(엡4장). 주여 주의 종들의 눈을 깨워 이 지혜를 깨닫게 하소서. 주의 날이 가까웠음이니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