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하나님의 전신갑주
기독교인의 삶은 구원받은 순간부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 및 그의 영들과의 싸우는 삶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병사가 전투에 나가면서 갑주를 입지 않고 나가는 경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전투에 대한 교본은 성경 외에 더 좋은 것은 없다. 성경 중에서도 특히 에베소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엡 6:10-18의 말씀이 핵심이 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모든 성도가 사탄의 공격(화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꼭 입어야 할 갑주이다. 그러나 전도나 중보기도를 한다든지, 사탄의 어둔 세계로부터 구원받아 나오는 사람들이나 삶의 문제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역할 때에는 꼭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움을 해야 한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트리킹”(streaking)이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운동경기 때에 어떤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얼굴만을 가리고 몸은 벌거벗은 채 운동장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었지만 스릴(thrill)을 구하는 사람들이 했던 값싼 행동이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스릴만을 구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주란 고작 구원의 투구만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구원의 투구를 제외하고는 마치 벌거벗은 어치(jaybird)와 같은 모습으로 영적으로는 벌거벗은 상태이다. 투구만을 쓰고 기독교인임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스트리킹”을 하는 것만 같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야 한다. 왜? 신앙생활은 전투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도나 상담이나 심령을 구하는 특수 영적 사역을 하는 주의 종들이야말로 말할 나위도 없다.
전신갑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듣기는 많이 들었어도 실제로 그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영적싸움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전신갑주를 입는 것을 등한히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신갑주에 관한 기본적인 것을 먼저 설명을 하고자 한다. 에베소서에서는 기도에 대한 것이 맨 마지막에 나온 말씀이지만 여기서는 제일 먼저 다루기를 원한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과의 전투를 하려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매일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깊은 물 속에 자신의 영혼의 닻을 달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보호의 근원이 되신다는 고백을 입으로 늘 고백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하루 하루 전투명령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대장되시는 군대의 병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군인은 항시 대장과의 사이에 교신망을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가 우리의 교신망임을 항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기도할 때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찬양만을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자신과 가족들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교인들을 위한 간구 기도만을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때는 기도에서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과, 또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을 재확인하는 것만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탄에게 물러가서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대제사장임을 마귀에게 일깨워주는 기도만을 할 수도 있다.
전도를 하거나, 마귀에게서 구출하는 사역이나 기도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는 먼저 기도를 해야 하고, 쉬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금식을 하면 영적으로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금식은 신중히 해야 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다음의 것들을 미리하고 준비해야한다:
1) 회개해야한다 - 기도할 때에는 모든 나의 죄를 찾아 하나님께 고백하고 정결함을 받아야한다(요일 1:9). 마귀가 우리를 참소할 구실을 아주 없애야 한다. 악마(악령, 귀신)의 억압(demonic oppression)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한 기도를 하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악마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를 할 때 악마의 억압 중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사역자의 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매우 당혹스럽고 덕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사역자는 그의 죄를 고백하고, 사함 받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구하면 다시는 그것을 들어내지 못하고 방해를 하지 못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거룩함을 얻으면 죄의 손잡이가 제거되어 악마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는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씻음과 보호를 받고 있으면 사탄은 그의 고난 중에서도 그를 공격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가능한 한 깨끗하게 유지하고, 죄가 있으면 즉시 통회하면서 회개하고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께 구하여 항시 나의 죄의 목록을 만들면서 그 때마다 회개하여 성령님의 씻음을 받아야 한다.
2) 하나님께 구하여 계속 나 자신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투명성 있게 비쳐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약 1:9).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성령님의 충만함과, 매일 매일 내가 해야 할 사역을 위해 새롭게 성령님께서 기름부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3)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주관해주시도록 성령님께 구해야 한다. 목회를 하던지. 전도를 하던지,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던지 성령님께서 기름 부어주실 것과, 그의 능력을 구하면 구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더욱 능력이 나타나고 효과가 나게 된다. 성령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대하지 않은 곳에는 오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우리를 내어 드리기로 작정을 하게 되면 그는 우리 속에서 큰일을 행하실 수 있고 또 반드시 행하신다. 따라서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혼과 영은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부드러운 진흙과 같이 되어 성령께서 기꺼이 오셔서 역사하시게 된다.
이렇게 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엡 6:10-17; 살전 5:8). 갑주를 입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하나님이 주신 갑주로 하나씩 무장해야 한다. 이 갑주는 1세기에 로마 군인, 즉 보병이 입던 갑주이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 기본적으로 모든 싸움은 땅을 뺏기 위한 싸움이다. 고로 모든 싸움은 궁극적으로 보병에 의해서 결판이 난다. 실지 전쟁에서도 한 나라를 점령해야 그 나라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 그래야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그 나라를 발로 밟고 점령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영적인 전쟁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모든 싸움은 주님이 하시고 주님이 승리하시는 싸움이다. 그러나 주님도 영적으로 땅 하나 하나를 소유하려면 보병을 사용하셔야 한다. 그래서 그 보병 각자는 먼저 자기의 삶의 모든 분야(혼과 육)를 지배하시도록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 그의 혼과 육을 굴복시켜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것이 영적전쟁의 가장 중요한 기초 준비이다. 이것을 “자기대면”의 삶의 준비라고도 한다. 먼저 자기를 영적으로 점령하고 주님의 통치하에 두고 주님께서 지배하시도록 내어드려야 한다.
전투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한집 한집씩 또 한발 한발 씩 땅을 뺏는 것은 가장 어려운 싸움이다. 사상자가 가장 많이 생기는 것도 이런 전투에서 생긴다. 하늘에서의 싸움에서는 이런 전투의 차원이나 규모나 범위가 훨씬 크다. 일단 내 집에서부터 전투를 하고, 내 집을 영적으로 주님의 영토로 만들면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한번에 한 사람씩 주님의 소유로 만들어 주님의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주님은 마 12:29, 44에서 악마(악영, 귀신)들(demons)은 사람들을 자기들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전도도 악마들이 사는 집을 뺏는 축호 전투이다. 불신자 한 사람씩을 성령의 검으로 가슴을 찔러 뺏을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게 된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교회에는 영적으로 너무나 평화주의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보혈의 찬송도 힘차게 부르질 못한다. 죄의 규탄도 하기가 힘들다. 동성연애자를 규탄하기도 힘들다. 죄를 질병이나 문제라고 정의한다. 삶의 문제가 죄 때문이라는 말도 강하게 하질 못한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나 심리이설자들이 이제는 교회의 안방을 차지해도 오히려 그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는 일이 생긴다. 심지어는 그런 것을 해야 현대적이고, 또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까지 생각하기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성도는 한사람 한사람이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보병이라야 한다. 대장도, 장군도, 포병도, 공군도, 탱크부대도 따로 별도의 갑주를 입어야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전도자나 상담자나 개인들이 입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말한다. 마귀에게서 한 심령을 뺏는 지상군들이다. 심령 하나, 땅 한치, 가정 하나를 뺏는 보병이다. 따라서 엡 6:10-18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심갑주는 보병들이 입는 갑주이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대로 ‘가서’ 일대 일로 한 심령, 한 심령을 사탄의 묶음에서 노임을 받게 하고 일대 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마 28:19-20). 하나님의 전심갑주를 입은 병사는 이런 병사이다. 이방인에게 보내진 최고 최대의 사도였던 사도 바울도 축호 전도나 일대 일 전도를 통해 심령들을 한 사람씩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로 인도했다. 교회를 세우신 것도 이런 일을 하라고 세우신 것이다.
보병들이 하는 개인 전투가 싸움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한 사람을 상대로 해서 싸우는 지상 전투를 통해서만 마귀의 군대의 계획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병사는 담력과 끈기를 가져야 한다. 그는 마귀의 땅을 잡고 램보(rambo)와 같이 밀어 닥치며 뛰어들어 가야한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명령하신 것이 벧전 5:8-9의 말씀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이런 전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는 전투이다.
우리가 벧전 5:8-9의 말씀을 알려면 당시 로마 군인의 보병이 입었던 갑주를 알아야 한다. 이들 보병의 갑주는 보통 7가지 품목으로 되어있다: 허리띠와 흉배와 신과 방패와 투구와 검과 구기(정강이 받이)이다(엡 6:14-18).
성경 주석가 Peter S. Ruckman은 7번째 것은 본문에 없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이미 18절에 나와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 군병은 주님의 명령을 받을 때나 날라 오는 원수의 화살과 화전 등을 막을 때는 무릎을 꿇고(기도하면서) 하기 때문에 이미 18절에서 언급되어 있다.
전신갑주에는 또 “등배(등을 보호하는 것)”가 없다. 그 이유는 병사는 앞의 적만을 정면으로 보고 싸우고 등을 보이며 도망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1) 병사가 등을 돌리고 달아나면 그는 등에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고, 2) 또 대장되시는 예수그리스도 보다 앞장서서 가면 적에게 등을 돌리게 되어 등에 공격을 받는 다는 것이다.
보병이 입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다음과 같다:
1. 진리의 허리띠(엡 6:14)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기를 원하신다(시 84:10). 주님의 군병은 항상 말씀의 진리와 그 속에 기록된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요 8:31-32).
2. 의의 흉배(엡 6:14)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항상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양심(고전 1:30)을 가지고 있기를 원하신다. 이는 개인의 의와,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입기 위한 엡 4-5장의 교훈을 실천하는 삶을 말한다.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있다(롬 10:1-3; 고전 1-2장)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투시 의의 흉배를 항상 입고 있을 수 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엡 6:15)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무엇 보다 먼저 잘못된 대인관계를 바로 잡고(롬 12:18), 그의 발이 가는 곳마다 어떤 환경에서도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4. 믿음의 방패(엡 6:16)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것은 꼭 이루시는 분이심을 확신하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롬 4:20-21). 이래야 적의 화살과 화전 등을 능히 막을 수 있다. 병사들은 전투에 나갈 때 갑옷을 물에 적셔가지고 나간다. 화전으로 인해 갑옷에 불이 옮겨 붙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병사들이 매일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말씀)로 갑옷을 적시고 있어야 함을 말한다.
욥도 사탄의 화전으로 공격을 받았다. 예레미아도 적의 화전을 받아본 일이 있다. 바울도 도에 넘칠 정도로 적의 화전으로 공격을 받는 경험을 했다. 예수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해 어느 누구보다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셨다. 이들은 그 때마다 말씀으로 승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종종 고난을 성도들에게 허락하신다. 이는 우리를 정금과 같이 만드시기 위함이다(시 119:71). 그래서 우리는 매일 믿음의 방패를 입고 그것을 매일 말씀과 기도로 손질하고 있어야 한다. 중보기도를 하거나 기도의 전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성도들은 자기의 믿음의 방패를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한다.
5. 구원의 투구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는 자기가 예수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항상 확신하고 있기를 원하신다. 그래야 이 세상 아무것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고히 믿고 있을 수 있다. 손과 발은 의족이나 의수로 대용시킬 수는 있지만 머리가 상하면 머리는 다른 대용물을 사용할 수가 없다. 싸움에 나가는 병사는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탄은 항상 성도 즉 주님의 병사들을 참소한다. 특별히 사탄과 싸우는 사역에 종사하고 있는 성도들은 참소를 계속해서 받는다. 그래서 그의 영 혼 육을 구원의 투구로 항상 지키고 있어야 한다.
6. 성령의 검(엡 6:17)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있기를 원하신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 곧 말씀뿐이다. 이는 우리의 삶이 항상 말씀대로 사는 삶이 되어야하고 세상의 온갖 심리이설의 미혹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만 무장하고, 말씀만을 행하고, 말씀으로만 매일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함을 말한다.
7.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엡 6:18) - 하나님은 그의 병사(보병)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이는 정밀한 미사일과 같아 지옥의 굴뚝들을 뚫고 들어가 적의 요새를 파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살전 1:17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엄청나고 어려운 명령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말씀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영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활력과 영향은 기아급수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항상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실 수 있다(롬 8:26-27). 이렇게 하는 것이 21세기 생활 문화 속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이는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우리 주님의 명령이요 축복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에게 나의 기도생활을 발전시켜달라고 구해야한다. 그러면 자신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늘 쉬지 않고 남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사탄과 경쟁하는 싸움이 아니다. 이미 승리는 벌써 얻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영적으로 그의 옆에 앉혀 놓으셨다(엡 2:6).
또 우리는 주 안에서, 그리고 그의 능력 안에서 강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핏속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엡 6:10; 엡 1:19-20).
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강한 천군들이(히 1:14) 우리를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천사들에 관한 확실한 것은 아무도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천사들은 능력이 있고, 우리는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도와달라고 주님께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투에 나가는데 필요한 갑주의 중요한 것들을 여기에 소개했다. 그러나 엡 6:10-18에 나와 있는 갑주 외에도 몇 가지 갑주가 더 있다. 여기서는 이들에 대한 성경구절만을 소개하면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사 59:17)이다.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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