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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7:23-25) 인생의 폭풍 속에서

이요나 2007. 5. 1. 13:25

(사도행전27:23-25) 인생의 폭풍 속에서

 

(행27:23-25)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실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 복음화의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며 어떻게서라도 로마를 방문하기를 기도해 왔었다. 로마서 서두에서 바울은 로마를 향한 나의 열정에 대하여는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라고까지 고백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1:10)하고 자신의 애타는 심경을 토로하였다.

 

바울 사도 앞에 열린 로마여행은 그가 소망하던 설레이는 여행은 아니었다. 죄인 된 몸으로 로마의 황제 앞으로 호송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될는지 전혀 그 누구도 그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물론 바울의 로마행은 바울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소망 가운데 꿈꾸어 오던 복음전도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의 계책에서 벗어날 방편으로 억울한 판결을 당한 로마시민에게 주어진 마지막 카드였다.

 

베스도 총독의 재판에 함석한 유대의 왕 아그립바는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일 수 있을 뻔 하였다’(행26:32) 하였다. 이와 같이 앞날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인간의 선택은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잠언서 기자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기록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직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주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가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옥에 갇혔을 때 한 밤중에 나타나신 주께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23:11)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I. 복음을 위해 로마황제 가이샤에게로 가는 바울 사도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더라”(11)

 

A. 백부장 율리오의 만남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책임은 궁전 시위대원이던 율리오 백부장에게 주어졌다. 그는 가이샤라에 주둔하고 있는 5개의 로마 보병부대의 하나인 아구사도대 곧 황제의 군대의 백부장이였다. 로마시대의 백부장은 오늘날 중대장과 같은 편재로서 백부장은 로마군대의 꽃으로 불리웠다. 실제로 군대를 움직이는 권한은 천부장 곧 오늘의 대대장에게 있었지만 천부장들은 정치세력에 이끌리고 있었고 실제적으로 로마황제의 위호를 받는 지휘관은 시위대 출신 백부장이었다.

 

성경에는 복음서와 사동행전에서 각각 두 사람의 백부장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주님께서 ‘이만한 믿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자기 부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주께 간청한 가버나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주께서 친히 그의 집을 방문하려 하셨을 때 ‘나는 주께서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합니다. 명령하시면 내 부하가 병이 낫겠습니다’ 말하였다. 또 한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형장을 집도한 백부장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함께 나타난 이적들을 보며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마27:54) 증거하였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백부장은 믿음의 사람 고낼료 백부장으로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베드로 사도를 초청하여 그의 식솔들과 성령의 체험을 하는 은혜를 받았다. 우리는 이후 이들이 복음을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하였을까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백부장들의 권위와 위세로 보아 로마군대 안에서의 복음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이샤랴에서 로마까지 가기 위해서는 배편을 이용하는 길 밖에 없다. 풍랑을 없다 하드라도 로마항까지의 여행은 참으로 고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는 배편의 연결을 위해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는 배를 타야만 했다. 그 배에는 바울의 누가와 실라를 비롯한 동역자들과 마게도냐 데살로니가 사람 아르스다고가 함께 하였다.

 

죄수의 인솔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행선에 많은 편의를 베풀었다. 그들의 배가 시돈에 멈추었을 율리오 백부장은 바울이 그곳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방문하여 교제할 있도록 배려하였다. 아마 율리오 백부장이 이처럼 죄수된 바울에 관심을 갖었던 것은 복음서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백부장 동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B. 출항을 만류하는 바울의 예언

그들은 겨울 항로의 풍랑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끼고 루기아의 무라항에 도착하여 이탈리아로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큰 화물선으로 갈아 탔다. 그러나 그들의 항해는 심한 바람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했고 따라서 항해는 매우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로하여 그들은 어렵게 미항에 도달했고, 연말이 가까워 항로에 무리가 있음을 예견한 바울은 행선을 강행하면 재물과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러나 선주들은 선장과 사공들이 바울보다 바다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백부장을 설득하여 결국 그들은 그레데 섬의 다른 항구, 겨울을 지내기에 편한 뵈닉스 항을 향하여 행선을 계속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 율리오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바울을 통하여 나타날 하나님의 능력과 예정에 대하여 온전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후일 바울은 후일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이 때를 회상하며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모든 시위대 안에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되었느니라 증거하였다. 이것을 이제 곧 유로굴로 광풍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한 율리오 백부장의 증언이 시위대에 미친 영향을 말한 것이라 생각된다.

 

C. 광풍 유라굴로와의 투쟁

그들의 배가 출발하자 때마침 남풍이 불어 와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적중한 것이라 생각하며 닻을 감아 올리고 그레데 해변을 끼고 행선을 서둘렀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여 갑자기 섬 가운데로부터 유로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다. 유로굴로란 그레데 섬 이다산맥에서 발생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발생한 동풍이 강한 난기류로 형성된 돌풍으로 그 시 항해 기술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예상치 못한 돌풍을 만난 선장과 선원들은 점점 더 심해진 바람을 막을 수가 없어서 거대한 배는 바람이 밀려 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고 배가 물위에 높게 있도록 가볍게 하기 위하여 기구들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풍랑이 약해지지 않자, 그들은 살아날 소망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울이 그들 앞에 등장하여 여러분이여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21-22) 하였다.

 

바울이 이처럼 그들 앞에 서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각이나 예감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폭풍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남들이 모두 사경을 헤맬 때 그는 폭풍 속에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II. 폭풍은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여러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20)

 

사람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므로 인생의 광풍 유로굴로를 만나곤 한다. 특별히 그 하나님의 사람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비아냥거리기 일수다. 만약 그들의 눈에 바울이 위대한 선지자로 보였다면 선장이나 선주는 물론 백부장도 그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손에 잡힌 죄수였다. 믿음이 없는 그들의 귀에 죄수의 말이 선지자의 말로 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세미한 음성 가운데 들려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엇을 행하고자 할 때 특히 무엇인가 하려는 일들이 지지부진하게 잘 풀리지 않을 때 당신 주위에 있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나는 내 주변에서 주의 권고를 듣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광풍을 피하지 못한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 사람들은 그 때라도 세미한 음성을 듣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인생의 폭풍에서 항상 구조하시지는 않으신다. 또한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하시지 않으신다. 때때로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없는 상황에 다다랐음을 인식케 하는 사나운 폭풍을 경험한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정할 없음을 느끼며 결국 자신의 어떤 힘으로 감당할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오늘 바울을 권고를 듣지 않아서 유로굴로의 광풍을 만나 사경을 헤매게 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때에 이르면 그들의 삶에서는 밝은 해와 별을 볼 수 없는 흑암에 놓이게 되어 살아날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그 상황이 되면 아무도 도와 줄 사람도 없고 절망과 고통이 생명을 위협할 뿐이다. 인생에서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날의 고통과 아픔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III. 인생의 폭풍 가운데 주목할 사항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

 

A. 폭풍우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

바울은 계속하여 그들에게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너에게 주셨다 하였으니 생명을 잃는 자가 없으리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3-24) 말하며 그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다.

 

주님은 바울이 폭풍을 만나지 않도록 하시지는 않았지만, 주님은 폭풍우 중에서 그와 함께 계셨으며 그가 살아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 바울은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셨다(23,24) 하였다.

 

이 증언으로 보아 바울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사흘동안 해와 별을 볼 수 없는 암흑의 풍랑 속에서 생명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 이 때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주님의 경고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자신의 교만함에 대해 철저히 후회하며 회개하였을지 모른다.

 

B. 환난과 주의 말씀

또한 흥미로운 것은 주의 사자가 밤에 곁에 서서 말하였다는 것이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주께서 친히 나타나신 것도 또한 성령으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성경에서 사자는 주께서 보내신 사람을 의미한다. 사마리아에서 전도하던 빌립집사를 아라비아로 행하던 내시에게 가라고 하신 것도 주의 사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사자와 성령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빌립집사를 보게 된다(행8:26,29,39 참조).

 

나는 바울 앞에 나타난 주의 사자는 바울과 함께 배에 탄 복음의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나 실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일 수도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옥에 갇힌 바울에게 나타나신 주께서 바울이 로마에서도 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너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내가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건히 하라 하셨다. 주님은 때때로 우리의 고집으로 이하여 인생의 광풍으로 향하여 돌진하는 뱃머리를 막으시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폭풍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자기의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도 주님은 함께 하고 계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의 동역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마가복음 4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신 주님은 배를 삼키려는 폭풍을 잠재우셨다. 또한 오병이어 이후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보내실 때 한밤중에 폭풍이 일자 주님은 바다를 걸어서 가셨다. 제자들 앞에는 그들이 복음을 위해 해야 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센 풍랑이 있을 동안 그들은 뱃멀미로 인하여 음식을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음식을 먹으라 권하며 떡을 가져다 축사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바울이 전한 구원의 메시지에 소망을 갖게 된 그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음식은 소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불꽃이 되었을 것이다.

 

C.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와 같이 우리는 인생 가운데 돌연히 몰아 친 폭풍 때문에 주님을 위한 우리의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로 하여 우리는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 바울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바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주님은 이미 바울에게 네가 가이샤 앞에 서야 하리라 말씀하셨다. 주님은 바울이 네로황제 앞에 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실 목적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주님은 바울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의 사자는 바울에게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려야 하리라 하셨다.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정처없이 그들이 떠내려간 것이 아니라 주님은 폭풍을 통해 바울에게 사역의 문을 열어주시려 계획하신 섬에 다다르게 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종종 우리의 삶의 폭풍우의 배후에 있는 목적을 보지 못한다. 흥미롭게도 그 목적은 다음 장에서야 우리에게 나타난다.

 

잠언기자는 우리에게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난다(잠16:1) 하였고 다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잠16:9)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겪어야 했던 극한 상황에서 그의 사람을 통해 하신 말씀에 대해 확실한 응답을 내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