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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8:27,28) 선택의 결과

이요나 2007. 5. 2. 20:13

(사도행전28:27,28) 선택의 결과

 

(행28:27,28)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사도행전 28장은 실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열망하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깨닫는 확실한 계기이기도 하고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복음전도의 원리를 발견하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28장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도하심 가운데서 만난 지중해 가운데 작은 섬 멜리데에 사는 토인들의 순수한 인간애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택함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온 유대인들의 패역한 심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들은 거의 동일한 시점에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무리들이 복음을 대하는 태도는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 같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될 것이다.     

 

I. 바울을 영접하는 멜리데 섬 사람들

유라굴로 광풍과의 오랜 투쟁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사 일생 살아 난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지중해의 멜리데 섬이었다.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 배에 탄 사람 276명 모두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율리오 백부장을 비롯하여 로마병사들과 선주와 선장들, 그리고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바다에서 택하신 종에게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고 이제 멜리데 섬에서 주 여호와를 아는 믿음의 실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초대받지 않은 선진 세상 사람들의 불시착에도 특별한 동정심을 갖고 불을 피워 따뜻하게 맞이 하였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토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소개하는 잘못된 정보들에 반하는 내용으로 우리는 인간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이 더 순수한 양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연치 않은 기적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들을 위해 불을 피운 나무더미 속에서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던 것이다. 267명이나 되는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바울의 손을 물었는지 모르겠지만 일상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한다.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무는 것을 본 토인들은 바울을 가리켜 살인자라 말하며 이 사람이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였다 말하였다. 이들의 입에서 공의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멸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가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증거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독사를 아무렇지 않은듯 불 위에 떨어트리고 그에게 아무런 상함이 없음을 본 원주민들은 그들의 생각을 돌이키며 이 사람은 신이다 라고 기이하게 여겼다. 이처럼 이들은 자기들의 본대로 그대로를 순수하게 받아 드리는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시골에 가보면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순수함을 금방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보고 들은 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한다. 어떤 주장에 이끌려 자기의 생각을 흐리지 않고 본 바 그 느낌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그 생각이 자기의 솔직한 주장을 따르기 보다는 어떤 단체의 지엽적인 주장에 묶여 순수성을 상실하여 자기 표현을 바로 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집단이나 목적을 같이 하는 정치적 이념집단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 앞에 하나님의 역사는 그 섬의 가장 존경받는 사람 추장 보블리오를 통하여 나타났다. 그는 바울 일행의 잠자리를 위하여 자기 땅을 내주었다. 보통 지도자가 되면 그 지역에 불시착한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박해를 하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온유한 마음으로 바울 일행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마침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결려 신음하고 있었다. 무더운 열대지방이라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를 안 바울은 그에게 나아가 기도하고 안수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미전도 주민에게 복음전도에 있어 병을 치료함은 더 없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로서 아마 그 섬 사람들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이다.

 

멜리데 섬의 일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그 섬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난 276명의 사람들에게 바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복음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케 하는 시간이었다.

 

그로서 그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주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날들을 증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황제의 시위대 소속인 율리오 백부장과 로마병사들로 하여 바울을 통하여 나타날 로마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않았던 계획들을 스스로 성취하시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날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II. 바울의 증거에 대한 유대인의 반응

멜리데 섬에 석달 정도 묵은 후 바울과 일행들은 그 섬에서 겨울을 지내고 떠나는 알렉산드리아의 배 디오스구로를 타고 로마 남동 쪽 70km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압비오로 들어가 그곳에 사는 형제들의 환영과 안내를 받아 삼관(세개의 여관)을 통하여 로마로 들어 가게 되었다. 바울을 호송하는 율리오는 병사 하나를 딸려 바울을 지키게 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하였다.

 

로마에 믿는 형제들을 만나 힘을 얻은 바울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지도자를 청하여 유대인을 설복하여 복음의 기틀을 놓고자 하였다. 참으로 바울은 대단한 고집쟁이임이 틀림없다. 이미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의 음모로 두 해가 넘도록 옥살이를 하고 가이샤에게 호소하는 방편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로마에 들어 왔는데 여기서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설복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바울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먼저 자신을 변명하여 이스라엘 조상의 질서를 배척하지 않았고 또 이스라엘을 송사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이스라엘의 소망을 위해 변론하던 중 동족의 모함을 받아 가이샤에게 호소하기 위해 쇠사슬에 매였다 하였다.

 

바울의 증언을 들은 유대인들은 우리는 유대에서 너에 관한 편지나 또 네게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들은 일이 없다. 다만 모든 곳에서 반대하는 너희가 전하는 도에 대하여는 그 사상이 어떤지 듣고 싶다 하여 바울은 그들과 일자를 정하니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거처로 찾아 와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에 관한 메시지를 강론하였다.

 

사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아직 그들로서는 아직 들어 보지도 또한 깨닫지 못한 메시야에 관한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따지면 멜리데 사람들과 같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상당히 냉담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증거를 믿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나는 얼마 전에 목회자들을 위한 갈보리채플의 강해설교 특강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미 몇 년 전에 더 이상은 목회자를 위한 강의는 하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터였지만 최근 국민일보에 나타난 여론조사로 하여 75%이상의 성도들이 강해설교를 선호한다는 보도가 있자 여러 사역자들로부터 강해설교 특강에 대한 문의가 들어 왔다. 나는 가믐에 물을 만난 것 같은 기쁨으로 매주 월요일 3주간에 걸쳐 오전부터 오후까지 특강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마음의 소득을 얻지 못하고 힘만 빠지고 말았다.

 

주님은 천국비밀을 선포하시며 네 종류의 무리를 언급하셨다. 그 중에 먼저는 길가에 떨어진 씨를 새가 먹었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났으나 뿌리가 없어 곧 시들어 버렸고 또 어떤 씨는 가시떨기 가운데 떨어지니 싹이 돋으나 세상의 일락에 빠져 자라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니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거두었다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에 관한 사람들의 심성을 말씀하신 것으로 세상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씨는 생명을 생산하고 열매를 맺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듯이 어떤 씨들은 낭비된다. 그것은 씨가 문제가 아니라, 씨가 떨어지는 땅의 형태에 따라서 결과가 결정된다.

 

III. 믿음의 결과

어느 시대에고 복음의 진리를 듣고 믿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전혀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면 순수하게 기쁨으로 받아드리는데 비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이단사설인가 싶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잣대로 요리조리 재보고 결국은 받아드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은 그 순간에 주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데 복음을 거부한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하여 결국 자신의 죄로 인한 심판을 받고 결국 그 영혼은 흑암의 세력에게 던져지고 만다. 그것은 모두 누구의 권함의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은 그 어떤 변사가 와서 설득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가버나움을 제이 고향으로 삼고 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도록 힘을 쓰셨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 섰고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가버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지려느냐 심판의 날에 시돈이 너희보다 나을 것이라 하셨다. 그로므로 성경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기록하였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말씀에서 찾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들의 눈은 감았다 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에 대한 결과는 그들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이기도 하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미 천국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시면서 이미 인용하셨던 말씀이다. 이와 같이 복음은 예나 오늘이나 언제까지 동일한 원리를 갖고 있다.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사야의 말씀은 이사야 시대나 주님의 시대나 또 오늘 바울의 증거에도 마찬가지로 이 말씀이 인용된 곳은 유대인 곧 모두 하나님을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적용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의 메시지를 거부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진리의 도를 듣고도 이미 굳게 마음이 결정된 사람들은 그 어떤 진리의 말로도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은 완악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완악이란 말은 굳고 완고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편견들로 가득차서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바르게 알려주어도 도리혀 거역을 하고 훼방을 놓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훼방하는 자들에게 임한다(롬1:18) 하였고 다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11,12) 증거하였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또한 우리 중에 있어 잘못된 교리를 따라 가는 믿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도 곧 다가 올 7년 대환난이나 교회의 휴거 그리고 성도의 부활과 이 땅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이 땅에 사는 동안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다. 내가 지금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읽으며 지금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바울은 이제 곧 우리 앞에 다가 올 그리스도의 날과 그 고통의 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의 증거를 받아 드리든지 말든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진리를 따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온전한 믿음의 투쟁을 통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