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25:25) 사역의 지혜

이요나 2007. 6. 10. 16:46

(잠언25:25) 사역의 지혜

 

(잠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I.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1-10)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25장은 서두에 기록된 바와 같이 유다와 히스기야의 신하가 편집한 솔로몬의 잠언이다. 솔로몬은 3천잠언을 기록하였다. 물론 서간들이 받아서 기록하고 보관되었지만 세월의 난세 속에서 유실된 것이 많았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 아하스의 아들로 25세에 왕이되어 29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퇴폐한 정치로 암울에 빠진 종교를 개혁하기에 힘을 써, 산당을 없애고 주상과 놋뱀을 부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세의 율법을 강화하였다.

 

그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열하19:7)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주 여호와 앞에 나아가 기도하여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을 죽여 승리를 거두었다(열하19:35).

 

또한 히스기야 왕은 말년에 병이 들어 죽에 되었으나 그가 면벽 기도를 하고 주께 생명을 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십오년 연장해 주었고 그 증거를 보여 해시계가 십도 물러가게 하셨다(열하20:6,11). 그러나 그는 바벨론 왕의 하례를 받고 마음이 들떠 궁의 내탕고를 그들에게 보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며, 여호와께서 그에게 왕궁의 보배가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에 옮김바 되리라는 예언을 받게 되었다(열하20:17).

 

솔로몬은 서두에서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2) 기록하였다. 이는 이 땅에서 일하시는 여호와의 손길을 말한 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비밀하고 그의 뜻대로 이루어 가심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는 높으신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이 땅에 있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왕 앞에 선 자들에게 다섯 가지 사항을 말하였다. 그는 먼저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4)하였다. 이것은 수신제가를 말한 것으로 전지하시고 은밀한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자들의 자세를 관한 것이다. 바울로 말하여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이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증거하였다. 바울은 이 말씀을 청년의 정욕을 말할 때 인용하였다.

 

두번째로 솔로몬은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하리라(5) 하였다. 이것은 통치자의 신앙의 덕목을 언급한 것이다. 성경은 믿음의 증인을 말할 때 늘 아브라함과 다윗을 그 증인으로 세운다. 성경은 이삭에게 아비의 복을 빌며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26:5) 하였으며, 다윗에 대하여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다(열왕15:5) 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은 우리 앞의 믿음의 증인이다. 이것은 그들의 부르심과 그 말씀 앞에 순종을 보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아사왕이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였다(열왕15:12) 기록하였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6) 하였다. 인간의 패망의 원인은 교만이다. 주님도 바리새인과 제사장을 책망하여 저희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하셨다. 이로서 배반의 역사가 생기고 배도의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교회사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 성도들이 서로 베드로, 아볼로, 바울 앞에 줄을 서 서로의 세력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분쟁을 말하여 이것은 십자가의 도를 멸망시키는 일이라 책망하였다(고전1:12-18)

 

또한 솔로몬은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8) 하였고 다시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하고 은밀한 일을 누설치 말라(9) 하였다. 이것은 율법의 제2강령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이웃과의 관계는 필연적이다. 먼저 하나님과 경건한 관계를 가졌다면 그 다음은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이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실패는 성급함이다. 자신의 분을 못참고 나서는 바람에 서로 다투게 되고 공정성을 잃게 된다. 또한 이웃과의 원한 관계를 갖는 것은 이웃의 은밀한 비밀을 발설하는데 있다. 오늘대선 주자들을 보라 서로의 은밀한 비밀들을 누설하여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II. 바른 지도자의 길(11-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28)

 

이제 부름받은 복음사역자의 자세에 대하여 알라 보자. 솔로몬은 먼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금쟁반의 금 사과니라 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발상이다. 각양 문형에 새겨진 금쟁반 위에 금사과를 생각해 보라.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처럼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한다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호라이즌 채플로 교회를 옮겼을 때이다. 정말 내 혼이 더러운 옷을 입고 새로운 영으로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새출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의 순화가 아직 않된 것이다. 물론 믿음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하였지만 오랜 세월동안 밑 바닥 생활을 해 온 나는 사람들과의 교제에세 때에 맞는 합당한 언어가 상실되어 있었다. 내가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고작 성경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식들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히라노 목사님이나 또 갈보리채플 목사들과 만날 때에도 늘 말의 부족함을 느꼈다. 물론 영어나 일본어 수준이 많이 떨어졌지만 성경이나 믿음의 경륜에 속한 언어들이 순환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인생에 있어 많은 지식과 경륜의 필요성을 느꼈다.

 

최근 나는 동성애자들이나 트랜스젠더들을 만난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또 다른 입장에서 그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그들 세상의 언어로 가득하여 일반적인 생활에 필요한 언어들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교육의 혜택과 학문을 통한 지식을 섭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역자들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여야 한다 고난받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기쁨을 만난 사람들과는 기쁨의 교제를, 범죄한 사람들에게는 견책의 말씀고 책망을..어른에게는 공손한 말과 어린아이에게는 함께 놀아 줄 수 있는 말들이 필요하다.

 

솔로몬은 12절에서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귀고리와 정금 장식이라 기록하였다. 이것은 책망의 지혜를 말한 것이다. 바울서신을 보면 바울은 각 교회에 많은 잘못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서신서를 읽으며 바울의 책망을 찾아 보기 어렵다. 그는 그들의 잘못을 모두 파헤치면서도 슬기롭게 권면과 권고와 견책을 하고 있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13) 하였다. 사자의 직무는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끝나면 않된다. 그 메시지가 그들 가운데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 사역의 부름을 받은 자들의 메시지는 추수 때 곧 그리스도의 날을 예비하여야 한다. 그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종말에 대하여 훤히 알 수 있도록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한다. 추수 날 한 사발 어름 냉수를 마시는 시원함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그 주인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잘 전달해졌다는 의미다.

 

나는 최근에서야 한 가지 궁금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바로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관한 것이다. 이미 사복음서를 끝내고 서신서와 계시록을 끝내였는데도 나는 그 문제를 속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범죄한 그리스도인들의 심판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던 중 이번 화요일에 로마서를 다시 강해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이 통쾌함을 무엇에 비교할꼬? 그래서 나는 요즘 잠을 설치고 있다.

 

계속하여 그는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깍느니라(15) 하였다. 고난 중에도 분을 품지 않고 오래 참는다는 것 그리 쉽지 않다. 요즘 나는 갈보리채플 사역에 많이 지쳐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할지 답이 없다.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낸듯하여 더욱 자신의 어리석음이 후회스럽다. 그러나 사실은 그 시절에는 그 시절에 맞는 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내가 그 만큼 하나님의 지혜에 가까웠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척박하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다가 이 민족은 모두 대환난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숨이 멎기까지 내게 주신 은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20절에는 마음이 상환 자에게 노래하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속 지는 남의 일에 룰룰라라 하는 격이다. 자신의 기쁨도 상황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열린 우리당은 속이 터지는데 한나라당은 룰룰라라하고 있다. 그러나 전대통령과 현대통령이 속이 터져 팔을 걷어 부치고 그들을 돕지 않는가? 나의 기쁨이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바울은 형제가 식물로 시험에 빠지면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 하였다.

 

솔로몬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21) 하였다. 바울도 이 말씀을 인용하였다. 우리는 원수가 망하면 손뼉을 친다. 그러나 언제 내가 그러한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성경은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으로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22) 하였다.

 

주님은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돌려대고 원수가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라 하셨다. 정말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행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기본 원리이다. 지금은 본하고 억울하겠지만 후일 받을 상을 생각하고 인내로 행하자.

 

끝으로 솔로몬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에 없는 것 같으니라(28) 하였다. 예수님은 모든 악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그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온다 하였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내심을 받은 사역자들은 특별히 이 말씀에 유의하여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저어하는 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성읍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날마나 내 영혼이 당신의 말씀으로 하여 거듭나오니 주여 이제 나를 당신의 사람들에게 보내소서 내가 추수의 날에 마주할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