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27:18) 충성된 사역자를 위한 교훈

이요나 2007. 6. 24. 19:42

(잠언27:18) 충성된 사역자를 위한 교훈

 

(잠27:18) 무화과 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잠언서 27장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취하기 위한 삶의 지혜에 관한 말씀이다. 이것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개인생활에도 적용되며 또한 하나님의 양들을 양육하는 목양과도 관계가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완성과 함께 공동체 전체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사역적 역할이기도 하다.

 

I. 사역자 생활 교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1)

 

A. 자신의 다스림(1-4)

 우리가 하나님의 성도로서 가장 먼저 성취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기 완성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로서 자기 성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울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먼저 우리에게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1) 말하였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은 어찌 되었던 세상 가운데서 자기 승리를 이루어야 할 경쟁적 조건 속에 살고 있다. 그로 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자기 교만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스스로 장래를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도 부분적으로 적용되었다. 그것은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진리의 지식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속한 인간사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운행되고 있고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은 부리신 하늘의 영들과 이 땅에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진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깨달아 그 예정된 계획들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타인으로 너를 칭찬케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케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어다(2) 하였다. 이 또한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고자 애를 쓴다.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사는 우리의 자랑은 무익하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하였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3) 하였다.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는 분노다. 이것은 자기 주장에 따른 자기 성취를 이루지 못할 때 나타는 특성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거절되던가 인정을 받지 못하면 분노가 일어 난다. 이 분노로 하여 시기와 질투가 나서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으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4) 하였다. 여기서 투기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쟁심에서 유발된 것이다. 남이 나보다 인정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이로서 분쟁이 일어 나는 것이다.

 

성경에는 투기와 분노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형제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는 것에 투기를 일으켜 그 형제를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또한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그를 통하여 일을 하고 계심에 본노를 느끼고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또한 야곱의 처 레아와 라헬의 투기를 보라 그녀들의 인생은 온통 한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사는 여자들과 같다.

 

이런 경쟁적 투기는 초대교회에서도 나타났다. 그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세례를 따라 게바, 바울, 아볼로, 그리스도 파로 나누어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가 사람도 아니라 책망하였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3,14)   

 

B. 친구의 권면(5-10)

그러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솔로몬은 먼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5) 하였다. 앞에서는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좋아하는 특성을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인간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면책이란 책망을 뜻한다. 또한 숨은 사랑이란 마음 속의 사랑을 의미한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 책망하기에 너무 인색하다. 그 이유는 그 마음에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교회도 성도들의 잘못에 대하여 침묵한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의 발로라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더 큰 병을 만들어 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사람이고 간에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책망을 들으면 마음에서 분노가 난다. 이것은 자신의 인격이 무시를 당하고 상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책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길가던 사람이 나를 책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모나, 스승, 그리고 형제나 친구와 같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나의 잘못된 것을 객관적 입장에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사람들은 사실 기분이 나쁘게 마련이다.

 

계속하여 그는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6) 하였다. 여기서 통책이란 아픈 책망을 말한다. 사실 친구가 나의 아픈 곳을 찌르면 정말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친구가 나의 잘못을 보고도 책망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의 친구가 당신의 잘못을 못 본 척하고 아부를 한다면 그는 친구가 아니라 당신을 발 뒤꿈치를 물어 넘어 뜨리는 뱀이 될 것이다.

 

솔로몬은 면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하여 배부른 자는 꿀이라고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7) 하였다. 사람들은 어렵고 굶주릴 때는 어떤 책망도 달게 받으려 한다. 그러나 배부르고 등이 따시면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여 자신의 감추인 것들을 책망하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이로서 과거 예언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세번째로 솔로몬은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다(7) 하였다. 오늘날이야 고향에 대한 생각이 점점 없어지지만 외국에서 고적한 생활을 해 본 사람은 고향의 그리움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본향이란 하나님의 도성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실 때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고 사모하였다 하였다. 오늘날 이 말씀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늘날 주의 성도들은 진정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본향을 바라보며 인내로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일까? 그러나 자신의 욕망과 소욕을 이루기 위해 본향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도리여 장차 그들의 영이 받아야 할 곤고함에 가슴 아파한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9) 하였다. 여기서 기름과 향은 성령의 기름부음과 기도를 말한다. 우리가 성도를 대할 때 그의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영혼을 만족 시켜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친구의 충성된 권고란 성령의 책망과 그를 위한 인내의 기도를 말한다. 우리는 지금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솔로몬은 10절에서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하였다. 솔로몬은 어려서 이복형제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을 장악한 후 아비 다윗와 함께 하던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를 멀리하고 자기 친구들의 말을 따라 행하여 실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친구와 아비의 친구란 나를 권고하고 책망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혈육을 나눈 형제가 이웃보다 못함을 느끼게 된다. 형제들은 내가 여유롭고 잘 살 때에는 내 앞으로 몰려 들다가도 내가 실패하면 혹시 자신들에게 무엇을 구하지 않을까 싶어 얼굴을 피한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어떤 일에 대하여 객관적 입장에서 조언하고 도와주려 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종이 하지 않고 친구로 대하겠다고 하였다.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이 때문이다. 이러한 친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11) 기록하였다. 참으로 흥미로운 말이다. 나는 종종 잘못된 성경해석을 가진 고집스런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이 자신에게만 내린 신의 계시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 교만이 극치를 이룬 것이다. 어떤 인간이 있어 하나님의 지혜를 깨우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그의 생각은 그분만이 알 수 있는 계시의 비밀이다. 주님은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게 친히 답변하셨다. 이것이 성경이다.

 

솔로몬은 계속하여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12)하였다. 이 말씀은 볼 것도 없이 종말의 때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이다. 최근 이만희 목사라는 희안한 목사가 신천지교회를 만들고 무료신학교를 세워 사람들을 쇠뇌 시키고 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하나님 곧 재림 예수라고 주장한다.

 

모든 이단들이 늘 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지만 단군의 자손이란 자가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요 자신이 재림주라고 하니 방귀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을 144000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들만이 이스라엘의 열두 영적지파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과천 일대에 땅을 사드리고 144000명이 들어간 성전을 지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안가서 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하늘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국 7년 대환난에 재앙을 받으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II. 관리자의 지혜(13-27)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21)

 

A.     영혼을 구속하는 지혜(13-17)

이제 솔로몬의 지혜는 우리에게 관계의 선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선택의 관계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천형과 같은 관계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복이 될 수 있고 꺼지지 않는 불못에 빠져들기도 한다. 먼저 성경은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13)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로마병사들이 그의 옷을 나눈 사건을 알고 있다. 이것은 저주받아 죽은 자의 옷을 가지면 재수가 좋다는 말 때문이다. 주님은 죄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보증이 되셨다. 그로서 우리는 그의 의로운 옷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재수 좋은 사람들이다.

 

솔로몬은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14) 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처지와 상황에 대처하라는 말씀이다. 이단성 신자들을 보면 정말 막무가네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리석음을 자랑하기 위해 가가호호 다니며 문을 두드린다. 나는 지금도 구역장들이 걸머진 붉은 가방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제 혼도 구하지 못한 여인들이 오중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충성한 재물이 빠리의 연인의 침대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을 아는 날 그들은 까무러칠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시 솔로몬은 타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변에 수다스런 여인들이 많다. 개뿔도 모르면서 탱자탱자하는 목사들과 어울려 하늘이 어떻게 땅의 축복이 어떻고 희희낙락한다. 성경은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켜잡는 것 같으니라하였다. 그들을 제어하기 위해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신 것이다.

 

성경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기록하였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지식은 지식으로 전해진다. 또한 악의 역사도 사람을 통하여 역사한다. 바울은 사단이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하였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너희를 친구라 하겠다 하시면 종은 비밀을 알지 못하여도 친구에게는 거짓이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주님과 친구가 된 사람의 복은 그 모든 비밀에 속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B. 자기의 영혼을 다스리는 지혜(18-22)

솔로몬은 두번째 단락에서 지혜로운 관리자가 되기 위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먼저 그는 무화과 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18) 하였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셨다. 그 나무에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주님의 저주와 같이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멸망을 받았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날을 말씀하시면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하셨다. 잎이 나고 무성하면 내가 곧 문 앞에 이른 것을 알라 하시며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주께서 오시리라 하셨다.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의 상징이라 할 때 무화과나무의 잎이 나고 무성한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한 것이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에 독립하였다.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국가가 다시 2000년 후에 그것도 같은 민족에 의해서 같은 땅에서 같은 이름으로 다신 탄생한 나라는 이스라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아직 1948년의 세대에 살고 있다. 성경이 한 세대를 100년으로 말할 때 우리는 어림잡아 2048년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나는 내 생명이 주께서 말씀하신 세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

 

19절에는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기록되었다. 우리말에 그 그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고 또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 있다. 서로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것이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헤롯과 빌라도가 서로 앙숙이였으나 그날에 서로 친구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 형틀에 세웠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진리의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서로를 알게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솔로몬은 20절에서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기록하였다.. 주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2,23)하셨다. 이 말씀은 재물을 향한 우리 마음의 소욕이 그 눈으로부터 시작됨을 언급하신 말씀과 관계가 있다. 음부는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갈 지옥이다. 이 지옥은 백보좌 심판날에 불못으로 던져진다. 또한 유명은 영원히 타지 않는 불못 즉 게헨나 지옥을 말한다. 이 지옥들이 사람의 만족을 채우려는 눈에 비유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람의 실패는 늘 그 마음이 바라보는 눈에 있다. 그것은 대게 그 사람의 욕망을 불질러 결국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죽은 자들은 그 바라보는 곳에 오직 하늘에 속한 영광 곧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21절에서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기록하였다. 이것은 한 사람이 완전한 그릇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연단을 말한다. 사람은 칭찬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칭찬은 은과 금을 연단하는 것 같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가 계속 발전되기를 바라시고 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 미련은 벗어버리지 않는다 하였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잘못된 교리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들을 보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 수 있는데 계속 다람쥐 채바퀴 돌 듯 헤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혼이 곤고를 당하는 날에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에 이를 갈게 될 것이다.

 

B.     사역의 의무(23-27)

이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역자들에게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23,24) 하였다. 이 말씀은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고 양들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면류관이란 경기장에서 최고의 경주자에게 수여하는 영광의 관이다. 오늘날 대형교회는 세습목회가 대를 잇고 있다. 그로서 교회가 분열되기도 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언론에 보도 되기도 한다.

 

재벌들의 세습도 사회에 지탄을 받는데 과연 목회도 세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어떻게 멸족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으며 사무엘의 자식들도 옳지 못하여 결국 왕의 제도가 출발되었음 알고 있다.

 

우리 말에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권좌가 없다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독재자들은 권력을 이어가고 있고 또 재벌들도 그 재산을 이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는 그의 부르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선한 마음과 행실로 경주하여 그 면류관을 얻게 된다. 우리의 주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받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하였다. 나는 척스미스 목사의 강해설교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척스미스 목사의 설교를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양들에서 새로 돋은 풀을 먹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설교준비에 만전을 하려 애를 쓴다. 우리가 열심히 땀흘려 한걸음씩 나아가면 언젠가 나는 어린양의 털 옷을 입게 될 것이며 염소로 밭을 사게 될 것이며 암염소의 젖은 나와 우리 집 사람들의 넉넉한 먹을 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