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9:18) 지혜의 선택

이요나 2007. 6. 28. 15:37

(잠언9:18) 지혜의 선택

(잠9: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나선다. 사람들이 찾는 행복이란 마음과 육신의 평강과 희락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살던 사람 중에 어느 누구도 만족한 복을 누리고 간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찾다가 죄에 얽혀 죽고 말았다. 성경은 이미 의인은 없다 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을 가리켜 복음의 증인이라 말한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오직 믿음으로 의를 이룬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믿음은 무엇이며 의는 무엇이며 의의 목적과 그에 대한 보상은 무엇인가?

 

오늘 잠언기자는 9장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소망하는 영생에 이르는 복과 그를 훼방하는 악언 영들의 역사와 또 의인과 악인들이 받는 보응에 관한 말씀이다.

 

I. 지혜의 초청(1-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6)

 

A. 지혜의 집

솔로몬은 서두에서 지혜가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1) 라고 기록하였다. 지혜가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었다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집 곧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지혜란 그리스도의 인격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증거하여 나의 교훈은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라 하셨고 내게 주신 아버지의 말씀을 제자 된 저희에게 다 주었다 하셨다.

 

그러나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2) 라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의 집에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차렸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로하여 이 말씀은 이단자들을 뜻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잠언서 기자는 9장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터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하여 그 지혜를 지키는 일과 또 그 지혜를 허무는 거짓 종들의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이란 말씀은 초청의 대상자를 일컬은 것이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는 이 땅에 육체의 속성을 가진 죄된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곧 우리가 받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 제물로 내어주심이 된 것이다.

 

B. 초청대상

솔로몬은 계속하여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였느니라 기록하였다.

 

여기서 여종이란 만세 전에 택하시고 부르신 복음의 일군이다. 바울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전3:10) 하였고 다시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의 집으로서 그 토대를 주께서 이루신 것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집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그의 부르신 제자들에게 위임하셨고 그 제자들은 이 땅에 속한 육체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복음의 지혜로서 하나님의 집을 지어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이 땅의 사람들을 그의 지혜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II. 책망과 교훈의 목적(7-1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10)

 

A.     책망과 교훈의 대상

솔로몬은 7절에서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하였다. 믿음 안에서의 거만함이란 정말 다룰 수 없는 야생마나 나귀와 같다. 오죽하면 다윗은 말과 나귀는 채칙과 재갈로 다스리지 않으면 너희에게 오지 않겠다 하였는가?

 

나는 가끔 먹물께나 먹은 척 하는 목사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어느 신학교를 졸업했느니 어느 분에게 공부를 하였으니 하면서 신학적인 용어로 나의 기선을 제압하려 애를 쓴다. 사실 먹물을 많이 먹지 못한 나는 신학적인 용어를 많이 구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학이 복음의 토대가 아닌 것은 잘 안다. 이미 성경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 하였다. 나는 비록 가방끈이 짧더라도 신학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주님은 변화산상에서 내려와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신학적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며 너희가 저희와 무엇을 변론하느냐 책망하셨다. 그들은 귀신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아이를 옆에두고 서기관들과 정결에 관한 논쟁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노자와 공자를 가르치던 철학자 김용옥 교수가 요한복음과 로마서를 집필하고 산지 사방으로 강의를 하러 다닌다. 보도에 이르면 원광대 학생들 800명이 그의 책을 사서 저자특강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더 기암할 것은 조용기 목사나 감리교 신학대학교 교수들이 김용욱 교수를 초청하여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문선명이를 불러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솔로몬은 지혜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9) 하였다. 여기서 지혜있는 자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나는 최근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한 두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부유하였지만 교만하지 않았으며 넉넉하였지만 겸손하였다. 나는 이들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같은 위대한 복음의 일군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혜와 학문은 점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결코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요 목사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비밀을 모두 깨우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도서에서 바울이 수제자된 베드로를 책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이미 성령세례를 받아 복음의 사도로 앞장 서 있으나 그도 잠시 미혹되어 복음의 진리로부터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지혜는 온전치 못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더하는 가운데 복음의 륜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B.     지혜의 근본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를 이루는 길일까?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10) 기록하였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곧 창조자 하나님의 영이심과 전능자이심과 나를 구속하신 사랑의 본체이시며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는 자들이다.

 

또한 거룩한 자라는 말씀은 그분의 신성을 언급한 것이다. 거룩이란 단어는 하기오스로서 오직 하나님의 신성을 언급한다. 성경은 천지 만물이 모두 주께서 만드셨으므로 거룩하다 하였고,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고 아버지의 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다 하셨다(요17:17).

 

계속하여 솔로몬은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11) 기록하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생명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천지만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고 그 생명의 운행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지혜를 가까이 한다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주의 말씀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영원히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12) 하였다.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교회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인하고 이 땅에서 천년왕국의 복을 스스로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그러한 잘못된 지식을 갖고도 거만한 자리에 앉아 스스로 스승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사람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III. 음부로의 초대(13-18)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17)

 

A.     미혹의 종

얼마전 신천지 교회와 이만희 교주의 만행이 텔레비전에 보도된바 있다. 그들은 지금도 이만희 목사가 메시야인줄로 알고 과천일대에 144000명의 성전을 짓고자 한다. 그들은 스로로 자신들이 144000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읽으면 될 것인데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이만희가 자기를 위해 발취한 내용들만을 가르침 받아 그 머리에는 이단사설로 가득 찬 것이다.

 

만약 이만희 교주가 자신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재림 예수라면 자신이 다윗의 혈통인 것과 마리아를 통하여 육신으로 태어난 것과 십자가에 못박히신 자국을 백일하에 들어 내야 한다. 그는 영적인 것을 말하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기록하였다.

 

144000명은 교회의 휴거 후 7년 대환난 때의 일로서 하나님의 성도 된 이스라엘의 남은 마지막 구원의 시간에 그의 백성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12000명씩 인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다.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다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신천지교도들과 여호와의 증인들은 14000명이 자신들이라고 말하니 정말 정신이 미혹된 자들이 틀림없다.

 

솔로몬은 그들을 말하여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 앞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자는 행객들을 불러 이르되(13) 라고 기록하였다. 이들은 계시록 두아디라 교회에서 책망받는 이세벨을 뜻한다. 이 여자는 계시록 17장과 18장에 나오는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로서 스스로 여황으로 자처하는 자다.

 

흥미롭게도 이 여인은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나라다. 결코 어느 개인의 집이 될 수 없다. 문선명이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신천지 교회의 이만희 교주는 모두 자기의 집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자기의 집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기를 위한 교리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교묘하게 성경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자기의 집을 짓고 그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성읍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더욱 걱정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자기 집을 짓고 성읍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B. 유혹의 대상

그들은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16,17) 외치고 있다. 사실 이런 자들에게 미혹되는 것은 진리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의로 진리를 훼방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18)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계시록에 나오는 심판과 관계된 말씀이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교회에 입성하지 못한 영혼들이 천년왕국 이후에 백보좌 심판에 이르는 형벌을 언급한 것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 던지우리라 기록하였다.

 

바울은 이들을 말하여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살후2:9,10) 하였고 다시,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기록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그러므로 믿는 우리가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진리의 말씀에 미혹되면 그의 영(혼)이 받아야 할 고난은 정말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벧전1:9)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미혹된 영혼의 책임은 미혹하는 자에게보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영으로 미혹을 받지 않게 하시고 주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게 하심을 더욱더욱 감사드립니다. 세세토록 성도의 찬송을 받으시오며 영광 중에 계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