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8:2) 의인이 살아가는 지혜
(잠언28: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본 장은 대조법을 사용하여 악인과 의인의 성격과 행위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의인은 율법을 지키는 자, 여호와를 찾는 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명철과 지식이 있는 사람, 성실한 자, 지혜롭게 행하는 자 등의 말로 묘사되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9)
A. 사필귀정(1-3)
우리말에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을 순행하면 흥하고 역행하는 자는 망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하늘이 정하신 순리와 질서가 있다. 한번 인생의 실패를 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실패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난번 잠언에서 “개가 그 통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하느니라”(11)고 말한 것처럼 어리석은 짓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언기자는 1절에서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느니라” 기록하였다. 이것은 악인과 의인의 마음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죄를 벗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인은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된다.
과거 나는 이태원을 주름잡으며 한세상 거하게 살면서도 하루도 평안한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늘 마음이 쫓기며 초조하여 담배와 오락을 밤을 지샜다. 나는 그 암흑의 터널을 통과하는데 많은 것을 희생하여야 하였다. 스스로 그 멸망의 굴을 끊어내지 않으면 죄악은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만다.
잠언기자는 2절에서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기록하였다. 나라에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다는 말은 참으로 흥미로운 말이다. 그래서 대게 망하는 나라를 보면 국론이 분열되고 파벌을 따라 주관자들이 일어서는 것이다.
오늘날 노무현 정권을 보면 참으로 답답해 진다. 차라리 겸허한 마음으로 국정의 실책을 시인하고 조용히 내려앉아 다음을 때를 기다릴 생각하지 않고 바다라도 뒤엎을 기세로 휘몰아쳐 오든 그 세력들은 이제 사분오열로 찢어져 사로가 머리가 되려고 한다.
계시록을 보면 세상 끝 날에 일곱머리를 한 용이 바다에서 나온다. 그들은 머리마다 각자와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용의 머리는 이미 여인이 낳은 아이에게 머리가 밟혀 죽기로 작정되어 있다.
오늘날 교파의 분열을 보라, 처음에는 하나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각 교단별로 또 교파를 이루고 서로 대립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수천의 갈보리채플은 아직도 교단적 구조를 이루지 않고 각 교회별로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도 서로 연합하여 형제의 우애를 나누고 있고 서로의 다른 모습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 이 모습은 주께서 오시기까지 의로운 자태를 나타낼 것이다.
세번째로 잠언기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와 같으니라”(3) 기록하였다. 처음은 자신의 영혼을 위한 개인적 선택을 말한 것이고 두번째는 의인의 평안한 삶을 위한 국가적 토대를 말한 것이며 세번째는 의인들의 사회적 봉사를 언급한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자를 돌아 보는 것이 넉넉한 사람들의 손길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난한 자를 돕는 의로운 손은 항상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베풀어졌다. 재벌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돈을 모아도 그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어떤 경우도 돈을 풀지 않는다.
미국에는 많은 재벌들이 재산을 자녀에게 물리지 않고 선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들이 있어 미국은 늘 넉넉한 축복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 경영을 보면 마치 수전노와 같이 한치의 양보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땀으로 모은 모든 재산을 털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털어 놓곤 한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8)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의인의 토대가 이루어져야 하고 두번째는 의인을 삶을 위한 국가적 토대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의인의 행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B. 율법과의 관계(4-8)
그러면 온전한 삶을 위한 의인의 토대는 무엇일까? 성경은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4) 기록하였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백성된 의인들의 온전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삶의 법이다.
율법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악에 대한 경계와 절재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마음을 두고 선한 생활을 하는 자는 여호와의 지혜로운 아들이 될 것이다.
잠언기자는 7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하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기록하였다. 율법과 탐식과 대조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인간의 태성적 욕망을 말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태어남으로부터 자기 소욕을 갖고 있어서 그 욕망을 제어하는 율법의 요구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어린 아이도 칭찬에 귀가 길들여져서 좋은 일이라도 책망이나 권고는 듣기 싫어한다.
C. 의인의 기도(9)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양심으로 깨달아 악에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망의 말씀이라도 들어야만 한다. 성경은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는 가증하니라”(9) 기록하였다.
나는 가끔 이 세상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마치 태산이라도 떠서 바다에 던질 요량으로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이 줄줄이 미사려구를 쏟아내곤 한다. 그들의 기도는 백두산에서 한라산을 훑고 먼 불모의 땅 중앙 아시아를 건너 아프리카 대륙을 뒤덮고 있다.
그들의 기도를 듣노라면 금방 하늘에서 불이 내려올 것만 같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그 기도가 아무 소용없는 자기 자랑거리이며 종교적 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의 떡은 자기 욕망과 욕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미 죄로 인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는 죄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듣고 먼저 돌아갔다고 증거하고 있다.
II. 의인의 성실한 삶(10-19)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20)
A. 유혹의 손(10-12)
10절에는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기록되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은 정직한 자들이 악한 길로 유혹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로 하여 사업에 실패하여 가정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유일비재 하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 어느 시골에서 백여명으로부터 수십년 동안 곗돈을 모아 행방을 감춘 사건이 보도되었다. 노점상에서 자판을 펴 놓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 푼푼이 모아 수년동안 곗돈을 부어 왔는데 하늘같이 믿던 계주가 하루아침에 잠적을 해버린 것이다. 또한 다단계의 큰 손 JU그룹의 주수도 회장은 교묘한 수법으로 수천의 회원을 모아 수백억을 가로채고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정계의 유명인사들이 그들과 연루된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정직한 사람들을 등치는 악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들이 망하는 것은 자기를 지혜롭게 생각하는 부자의 속성 때문이다(11)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날이 갈수록 사람다운 사람들이 숨어 버렸다는 것이다. 요즘은 개나 소나 목소리 큰 사람이 왕인 것 같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 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악한 영에게 그 마음이 미혹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7000명의 백성들을 예비해 두셨다 하셨다. 그러므로 잠언기자는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12) 하였다.
B. 율법과 죄의 자복(13-17)
13절에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버림을 받으리라”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복은 자신의 죄를 자신이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의지의 자각이므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남으로부터 죄인 된 인간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죄 속에 살다가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죄되게 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시고 이 땅의 모든 죄인된 사람들로 하여 하나님 앞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죄인들로 사망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를 죄로 알지 못한채 사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로 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속을 얻게 입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땅의 죄인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주 앞에 나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C. 성실한 삶(18-19)
그러나 죄의 사망에서 구속함을 얻은 의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한 삶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 잠언기자는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8) 기록하였다. 여기서 구원은 영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의식 곧 믿음의 도를 행하는 의지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믿음의 도를 알고 있다. 그렇다 이 일반적인 믿음의 도는 진리이다. 그 누구도 이 믿음의 도를 물릴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모두 다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나아가 자기의 행함대로 판단을 받을 것이라 기록되었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롬2:6-9) 기록되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결산을 말한 것으로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권면하여 ‘믿음의 결국은 혼의 구원이라”하였다.
두번째로 의인된 우리의 성실한 삶이란 자기 손으로 자기 먹을 것을 얻는 것이다. 잠언기자는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19) 하였다. 요즘은 자기 토지의 개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만 크리스챤 중에는 일하지 않고 먹고 살려는 게으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하였고 너희 중에 규모를 떠난 자들을 떠나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사람들의 지혜보다 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 세대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 기록하였습니다.
III. 의인의 생활지침(20-28)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6)
A, 의인의 충성된 삶
20절에는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기록되었다. 이것은 의인의 삶의 우선순위를 말한 것으로 여기서 충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은 온 통 재물에 있습니다. 물론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자녀도 공부시키고 또 집도 살 수 있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돈의 전쟁은 점점 심각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있다.
사실 돈이란 생활도구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살아 가는 제도를 만드시고 서로 소용과 필요에 맞춰 공유하게 하셨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살아 갈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정하신 분복대로 선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소원두고 살아갈 길과 생명을 맡기지만 일단 재물이 쌓이면 그 담부터는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재물놀이 온 마음과 몸을 바쳐버립니다. 그러하여 삶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마음이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생명의 하나님은 뒷전이 되고 맙니다. 사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재물과의 전쟁을 치루게 되고 결국은 정상에서 암흑의 골짜기로 내려 오게 된다.
사람이 정상을 향하여 올라갈 때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순종하다가도 정상에 오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하늘의 뜬구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된다. 이때부터 그 사람은 세상의 신에게 사로잡혀 그 재물이 바닥이 나기 전까지는 헤어나지 못한다. 아마 이러한 실패를 겪은 사람들은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어리석은 사람은 개가 토한 것을 먹듯이 거듭거듭 미련한 짓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던지 우리는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우리는 복받은 사람들이다.
B. 대인관계
두번째로 잠언기자는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21) 하였다. 믿음생활의 우선순위 중 두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이웃사랑이다. 이것은 주께서 명하신 것으로 첫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주님은 이보다 더 큰 강령은 없다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따라서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대한다. 교회에서도 그 사람의 교회 충성도에 따라 직분을 나누어 주어 그것으로 믿음을 측정하려 한다. 주님은 초대교회에 발생된 이 문제에 대하여 나도 니골라당을 미워한다 하셨다.
니골라당이란 초대교회 집사 중 한사람이던 니골라가 후일 변심하여 교회에서 나가 새로운 직제를 만들어 성직자와 평신도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제도는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회는 모두가 집사이고 장로이다. 그냥 성도님, 형제님, 자매님 부르면 그것이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것이 마치 믿음의 척도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목사나 그 누구도 모두 우리는 형제자매인 것이다.
갈보리채플은 우리나라와 같은 장로나 집사제도가 없다. 그렇다고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회 운영관리를 위하여 교회 규모에 맞게 운영위원들을 선출하는데 각 분야별 합당한 직무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성령이 충만하여 성도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선출하되 영구직이 아니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는 마치 집사나 장로가 믿음의 척도로 인정되어 매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헌금을 조건으로 직무를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미워하신 니골라당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재물에서 비롯된다. 잠언기자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22) 기록하였다.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를 말한다. 물론 우리 생활에 재물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물에 매달리면 사람이 그 마음이 악해져서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나 재물은 뜬 구름과 같아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 손으로 들어 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결국 빈궁해 지고 많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땀흘려 일하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주셨다.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다. 재물도 이와 같다. 내가 심은 데로 거두는 것이다.
잠언기자는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23) 말하였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책망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누가 아첨을 하는 것은 결국 나를 멸망시키는 길잡이가 된다.
24절에는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기록되었다. 요즘 자식들은 부모가 마치 자신들의 종이라도 된 것처럼 부모의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려 한다. 어떤 자식들은 부모의 재물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잘살고 장수하는 길이라 정하였다. 이러한 모든 악한 일들은 그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 재물에 그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26절에는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지라”기록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달콤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만을 선택한다. 대부분 실패의 원인이 자기 마음을 따라 무엇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무릇 믿을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 하였다.
잠언기자는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기록하였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은 주님의 명령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돈이 많으면 구제할 수 있다 말한다. 그러나 작은 일도 못하는 사람이 큰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전두환씨는 수천억의 추징금을 맞고도 한푼도 없다고 배를 내밀고 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은 수백억의 빌딩을 갖고 있다. 나는 그가 어떤 선한 일에 재물을 내놓는 보도를 들어 본 일이 없다.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의례행사처럼 수재가 나면 몇천만원씩 내곤 하지만 그것은 구제가 아니다. 구제는 형제를 사랑하는 긍휼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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