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9:18) 인생의 흥망성쇠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서 29장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된 행동 기르고 통치자와 사역자들이 공의를 행하므로 국가가 견고히 되며, 자식과 종을 지혜롭게 교육하기 위해서는 책망과 교훈의 필요성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성도의 삶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서리라”(14)
A. 책망의 지혜
솔로몬은 먼저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1) 하였다. 우리말에 방귀가 잦으면 뭐가 나온다 하였다. 하나님은 인생을 위하여 심은 대로 거두는 원칙을 세우셨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이와 같이 사람이 어떤 일에 책망을 받으면서도 자기 고집을 꺽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말로는 결국 더 이상 책망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망하고 만다. 그 때가 되면 발을 동동거려봐도 죽은 자식 뭐만지기가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의 종들을 보내셨다. 그의 종들은 사람의 체면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을 책망하고 교훈을 전달한다. 그러나 자기의 직권이나 환경에 도취되어 책망의 소리에 귀를 돌리면 그 사람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칭찬의 소리보다는 책망의 소리가 많다.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 것도 양심을 채찍질하는 말씀 때문이기도 하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 증거하였다.
여기서 교훈이란 성경적 교리적 가르침을 말한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진리에 속한 교훈을 말한다. 그를 위해 하나님은 사도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책망을 하시는 이유는 악인의 권세를 돌이켜 의인의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2).
나는 갈보리채플 사역 중 내 주변에 일어난 기이한 일들을 많이 보아 왔다. 모두가 갈보리채플로 헌신하여 갈보리채플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과 관계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갈보리채플의 기업을 물려 받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갈보리채플을 시작할 무렵 나는 척 스미스 목사로부터 ‘누구든지 갈보리채플에 부름을 받지 않는 사람이 갈보리채플에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그에게 경고 하시고 그의 길을 막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들은 일이 있다.
나는 서울 갈보리채플 10년 동안 갈보리채플 사역에 헌신하겠다고 뛰어든 많은 목사들을 만났다. 그들의 목적은 갈보리채플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헌신하기 보다는 갈보리채플 명성을 업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데 있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러 번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셨는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그들은 모두 신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을 겪은 후에야 모두 그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면 그냥 무심코 발생한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B. 공의의 통치
잠언기자는 4절에서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기록하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뇌물로 인하여 공직자들이 추풍낙옆처럼 떨어져 나간다. 앞의 사람들을 기억하여 절대로 같은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돈에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세월을 거듭하며 정권은 돈과 결탁을 한다.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중독은 돈 중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돈처럼 매력 있는 우상은 없다. 나는 돈에 대하여 초개처럼 살고자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기도는 오늘 내가 만원이 필요하면 만원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번도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셨다.
뇌물은 아첨과 관계가 있다. 잠언기자는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잘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자기 발에 그물을 치는 것이다. 상대는 결코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결국 그 사람은 돼지의 밥이 되고 만다.
6절에는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기록되었다. 사람들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당장 좋은 것을 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에 원칙을 두셨다. 자기가 무엇을 뿌리던지 그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이것이 사필귀정이다.
계속하여 잠언기자는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다”(7) 하였다. 그만큼 악인은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인정과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악인은 오직 자기의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없다.
또한 악인이 들끓는 곳에는 항상 모반이 일어난다. 오늘날 열린 우리당을 보면 자구 일어나면 새로운 당이 태어난다. 죄가 많으면 주관자가 많다는 말대로다. 그들은 원래 한 솥의 밥이였는데 이제는 사분오열되어 서로 이를 갈고 있다. 그들의 성읍은 항상 요란할 것이다.
솔로몬은 9절에서 지혜로운 자는 미련한 자와 다투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토론을 좋아하는 대통령이 있어 신문기자와 토론을 하더니 얼마전에는 대학총장들을 모아 놓고 토론을 벌렸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철학자 김용옥 교수가 성서 이야기라는 책을 출판하더니 한국의 신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버리고 있다. 그의 목적은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변증하려는데 있다. 결국 그들과 토론을 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용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격투를 좋아한다.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상대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기까지 격투를 신청한다. 그들은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는다. 오늘날 사회주의에 물든 좌파들의 시위현장을 보라 그곳에서는 질서도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죽기살기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피의 전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 분노하여 자신이 어리석은 자임을 드러내고 있다(10,11).
II. 책망과 묵시의 목적 (12-22)
“채칙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15)
A. 거짓말을 신청하는 관원
잠언기자는 12절에서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 증거하였다. 여기서 관원이라 지도자급 인물이다. 또한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서 관원이란 종교적 지위를 포함한다. 거짓말을 신청한다는 말은 귀를 기울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정신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신학자들 중에는 잘못된 교리에 빠져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계시록기자는 두아디라교회 지도자에게 “내게 책망할 일이 있노니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책망하였다.
솔로몬은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어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13) 기록하였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요 또 다른 이들은 육신의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포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생명의 빛을 주셨다. 성경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1:9) 기록하였다. 여기서 빛이란 사람의 영혼을 비취는 생명의 빛을 말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증거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서 떠나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달하면 사람들은 온전케 된다.
그를 위해 복음의 제자를 세우시고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 곧 잘못된 교리에 있다. 그들은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또한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늘 연구하고 발표하고 토론을 하나 이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처럼 많은데도 세상이 더러워지고 악해지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를 맡았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이다.
B. 지혜의 가르침
14절에는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기록되었다. 주님은“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하셨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하였듯이 의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한다고 하였다.
또한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가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의의 왕이 될 직분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성실히 변론하면 우리가 세세토록 주와 함께 살아서 왕노릇 할 것이다.
두번째 의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녀 교육이다. 잠언기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15) 하였다. 우리나라처럼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나라도 드물다. 그를 위해 기러기 아빠가 생겼고 강남엄마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 범죄와 성폭행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완성된 인격이 표출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16) 하였다.
계속하여 잠언기자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17) 하였다. 오늘날 자녀 교육의 문제점은 징계를 하지 않는데 있다 하겠다. 짐승들도 새끼를 기를 때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녀의 잘못을 보고도 징계하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우리의 죄를 위해 징계를 받으셨다. 사람의 인격의 형성은 어려서부터 자녀를 징계하고 책망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론 여기서 징계와 책망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C. 계시와 율법
18절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기록되었다. 묵시란 신적계시를 말한다. 다시 말하여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요즘 교회들은 계시는 이제 끝났다 말하며 오히려 계시에 대하여 말하는 교회를 이상한 눈으로 보려 한다. 그러는 사이 이단들이 잘못된 계시를 유포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성경의 계시가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사실 무익한 종교활동이 된다. 내세의 영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현실의 축복에 치우치는 종교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더욱이 신약은 우리 앞에 성취 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날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 기쁜소식 곧 우리가 전하는 복음인 것이다.
만약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현실의 복에 만족한다면 그는 상당히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현실적 축복의 메시지만 쏟아 놓고 장차 이 땅에 펼쳐질 천년왕국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은 이단에게 맡겨 놓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성도들이 받는 기업 곧 영원한 기업에 대한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의로움도 헛것이며 인내와 절제의 생활도 유익하지 못하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오늘을 먹고 마시다 죽으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계시는 우리의 소망이 되며 율법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길잡이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19절에는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라” 기록되었다. 종이란 개념은 이제 세상에서 없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부름을 받은 복음의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 같다. 수천년 동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바로 이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보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나가 오리혀 하나님의 복음을 훼방하고 있는가? 그들은 모두 징계를 싫어하여 다른 길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체 하느니라”(21) 하였다.
나는 이 땅에 고난 받은 종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비록 밭의 소출을 거두지 못하였고 우리에 소가 없어도 오직 주를 보고 기뻐하였으며 복음의 배반치 않아서 종의 직무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징계를 받는 종들은 도리어 주를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어떤 목사들은 속히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천국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 시대에도 이 세상을 복음을 정복하지 못하였고 복음의 왕성한 활동에도 세상은 날로 더 악해졌다. 결국 천국은 그들의 말처럼 우리의 전도로 성취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의 천국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들의 잘못은 말의 조급함에 있다.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말들을 급하게 쏟아 내는 것이다(20).
III. 인생의 주권자(23-27)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26)
A. 겸손의 복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소망은 영혼의 평안과 아름다운 삶의 질에 있다. 다시 말하여 영육간의 복이다. 그를 위해서 사람들은 달려 나간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을 성취함에 있어 사람들은 서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로서 마음의 교만이 생기게 된다.
잠언기자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23)하였다. 우리 말에 열흘 붉은 꽃이 없고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길은 산과 같아서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문제는 달려갈 때에는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 마음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면 그에 합당한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B. 사람의 선택
두번째 인생의 문제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도적과 짝지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은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 하였다.
주님은 하늘로나 땅으로나 성전으로나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뜻대로 이룰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면 맹세를 세우고 또 자신이 불리해지면 자신이 한 맹세를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사실 도적과 짝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단 몇푼의 돈에 참새 열마리가 도매값에 넘어 가는 것과 같다 하겠다. 성경에는 당짓는 무리들이 받아야 할 형벌에 대하여 엄하게 경계하였다. 유다는 “이 사람들은 당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1:19) 기록하였고 저희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요일2:19) 기록하였다.
C. 하나님의 통치
세번째로 잠언기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25) 하였다.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인본주의적 사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람을 믿는 데 있다. 정치판을 보면 사람들 앞에 줄 서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어느 정치 판에든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들이 여호와를 의지한다면 승리를 할 것이다.
끝으로 잠언기자는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는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기록하였다. 여기서 주권자란 세상의 군주를 말한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이 세상의 권세자에 의해 성공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 관한 모든 일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종말에 때가 오면 사람들은 세상을 통치하는 한 사람에게 올인 할 것이다. 그가 마치 세상을 평정하고 세상을 복되게 할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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