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잠언서 강해

(잠언31:30) 현숙한 여인의 영광

이요나 2007. 7. 21. 16:21

 

(잠언31:30) 현숙한 여인의 영광

(잠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서 31장은 솔로몬이 어려서 그의 어머니의 교훈을 기억하며 장래 자녀들을 교육 시키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 생각된다. 특별히 10절 이후부터는 시편 119편과 같이 히브리어의 알파벳 첫 글자 순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아 이것은 이스라엘 왕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잠언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잠언을 읽으며 주 앞에 부르심을 받은 복음사역자들과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빛의 자녀들이며 또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I. 지도자 교훈(1-9)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9)

 

A. 지도자와 어머니

저자는 서두에서 르므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기록하였다. 르므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위한 자, 하나님께 바친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 르므엘이란 왕은 성경에 기록된 바 없지만 아마 이것은 어쩌면 솔로몬의 태명이나 아명이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질병이 심하여 자녀를 많이 나아도 온전히 성장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특별한 태명이나 아명을 지어 돌처럼 단단하라고 바위라고도 부르고 산처럼 우직하라고 산이라고도 불렀다.

 

솔로몬은 다윗이 우리아의 처 밧세바를 간음하고 나은 아들이 죽은 후 후일 바세바가 정부인이 된 후에 낳은 아들로서 그가 태어날 때에 주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여디디아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라는 이름을 주신 바 있다(삼하12:25).

 

우리는 2절에서 간음의 고통과 그로 인하여 첫 아들을 잃은 밧세바의 믿음의 고백을 볼 수 있다.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바랄꼬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다윗과의 간음의 징계로 첫 아이를 잃어야 했던 밧세바로서는 많은 후궁들에게서 태어난 왕자들 속에서 자신이 나은 아들로 다윗의 후계자를 잇는 길만이 자신이 다윗 왕의 정실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로 하여 밧세바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고 다시 잉태한 아들의 이름을 르므엘하나님께 바친 자라 칭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윗왕 때에 세우신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서원을 알고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에 의해 치리되던 때로서 제사장 엘리는 그 아들들을 잘못 다스려 그 아들들은 날이 갈수록 패역한 일을 일삼고 있어 하나님은 여호와 앞에 온전히 설 선지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자식을 갖지 못한 여인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여호와 앞에 토해낸 서원기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지도자 사무엘을 낳게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 앞에 서원기도는 자신이 처한 마음의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오직 주 여호와의 나라를 위해 진정한 마음을 토했을 때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는 2절에서 밧세바가 내가 무엇을 말할꼬라는 말을 세번이나 토한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 그 아들을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위해 바칠 굳은 의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B. 지도자를 멸망시키는 일

그녀는 먼저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권고하였다. 이것은 음행과 간음에 관한 경고라고 하겠다. 그녀는 이미 간음의 고통을 체험을 한 바 있다. 간음의 결과로 첫 남편인 우리아가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했고 다윗과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 또한 죄의 결과로 희생을 당해야 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이다. 성결이란 영과 혼과 육의 온전한 정결을 말한다. 다시 말하여 깨끗함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오늘날 인간의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성적관리라고 하겠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온통 우리로 하여 성적 충동을 일으켜 음행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있다.

 

지난번 미국 대통령인 클링톤 대통령은 재직 중 직무실에서 비서와 간음을 행하고도 정치적 술수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만약 우리나라라면 어떠했을까 싶다. 그러나 정치 비화 속에는 대통령들의 숨겨진 여자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또한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맡은 목사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미 파리의 여인이란 책이 시중에 나와 그 책의 주인공이 어느 목사를 말하는 것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물론 대통령이나 목사도 모두 인간이다. 그러므로 성적 충동과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혹은 유혹으로 끝나야 하고 충동은 억제로 다스려야 한다. 설혹 유혹에 이끌려 선을 넘었다 하더라도 힘을 여자들에게 쓴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여기서 여자들에게 힘을 쓴다는 것은 여자들과의 성적유희에 빠진다는 것이다.

 

성경은 음행과 관련된 사건으로 발생된 이스라엘의 위기를 여러 번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출애굽 당시 가나안 땅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땅을 지나게 되었다. 이 때 모세는 모압왕 발락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러나 모압왕 발락은 이방인 선지자 발람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많은 상금을 내 놓았다. 재물에 미혹당한 발람은 자기의 입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지나는 길목에 산당을 쌓게 하고 무녀들로 하여 제를 지내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 무녀의 성적 유혹에 미혹되게 하였다.

 

또한 우리는 사사 삼손의 일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알 수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실인으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삼손은 그 힘을 여자들에게 써 결국 자신에게 주신 능력을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음행과 관련된 성경의 가장 큰 교훈은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처로 아합은 초기에 상당히 재능이 있는 유력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방인의 처 이세벨을 왕비로 받아 드린 후에 주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결국 이세벨로 인하여 아합의 왕위는 예후에게 넘어가고 말았다(왕하9:21-26).

 

흥미롭게도 이세벨에 관한 내용은 계시록에 소개되고 있다. 계시록 기자는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기록하였다. 여기서 이세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세벨의 교리를 끌어 드린 것을 의미한다.

 

지도자를 위한 두번째 경고는 포도주와 독주에 대한 경고다. 잠언기자는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4) 기록하였다. 여기서 마땅치 않다는 말이 세번 거듭해서 쓰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그 당시 왕에게 있어 포도주란 생활 속에서 뗄 수 없는 음료 중의 하나이다. 왕은 늘 신하들과 어울려 국가 운영을 하여야 하는 가운데 국내외 내빈들을 접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잠언기자는 포도주 자체를 금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법을 언급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로 술을 마시게 된다. 결혼과 생일 그리고 기념일과 같은 축하연에서 축배를 드는 것은 하나의 인생 희락의 관례라고 하겠다. 그러나 축하연에 축복을 빌기 위한 축배의 잔과 술독에 빠진 것은 다른 이야기다.

 

다니엘서 5장에는 느브갓네살 왕의 손자 벨사살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벨사살은 선대왕의 업적과 영광에 취해 귀인 일천명을 배설하고 연회를 베풀었으며, 이스라엘 성전에서 몰수한 성전기물을 사용하여 술을 마시며 흥청거렸다. 이 때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곧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는 글을 벽에 썼다.

 

율법에는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레10:9) 기록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에게 내리신 계명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패역에 대하여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 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 하나니(사28:7)라고 책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포도주와 독주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왕된 자가 자기 즐거움을 위한 연회와 같은 유희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이다. 잠언기자는 5절에서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 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증거하였다. 여기서 간곤한 백성이란 경제적으로 어려운 백성을 말한다.

 

나는 포도주와 독주는 왕에게 주어진 축복 곧 그의 영화와 권세라고 생각한다. 오늘날도 대통령들이 집권만하면 자기의 소실적 때의 소명을 잊고 흥청만청 권력을 휘둘러 측실들과 함께 권력을 나누며 재물을 쌓는다. 그러하여 물러난 대통령들의 자녀들이 교도소로 들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지도자가 법을 잊어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도자가 스스로 법에 충실하지 않으면 법 집행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따라 판단하고 그로 하여 국가의 기장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만다.

 

C. 지도자가 행하여야 할 일

6절에는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6) 하였다. 이것은 포도주와 독주의 유용성을 언급한 것이다. 바울도 제자 디모데에게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5:23)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그에 합당한 용처가 있는 것이다.

 

계속하여 잠언기자는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8) 증거하였다. 오늘날 국가 지도자들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서나 또한 재벌들에게는 많은 특혜를 주고 있데 비하여 곤고한 백성들에게는 전혀 어떤 은혜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전국의 땅값을 들 쑤셔 놓고 말았다.

 

그들은 술에 취하여 각 촌락을 특수지역으로 개발을 한다고 떠벌리며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를 만들어 놓았다. 각 지역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맞도록 합의점을 찾아 개발해 나가야지 모두가 서울처럼 만들어 놓으면 과연 시골이 서울이 되겠는가? 결국 지역 땅값만 부축이고 물가만 치솟아 지역 사람들만 살아 갈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통치의 권세를 주신 것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통치자를 목자에 비유하였다.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기 위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가야 한다. 그를 위하여 지도자에게 걸 맞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 지혜와 능력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는 반듯이 멸망을 망하고 말 것이다.

 

9절에서 그는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9) 하였다. 여기서 공의란 공평한 의로서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실 때 허락하신 은혜의 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공의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신원한다는 말은 원한을 갚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왕은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들로부터 보호할 의미와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II. 현숙한 여인 (10-31) -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순의 성귀로 구성(교육용)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1)

 

10절부터는 마치 저자가 바뀐 것과 같은 흐름으로 기록되었다. 앞에서는 르무엘의 어머니가 왕 된 아들에게 쓴 것 같으나, 10절부터는 마치 르므엘이 자신을 올바른 왕이 되게 가르치신 어머니를 칭송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이 내용들은 왕과 현숙한 아내에 대한 잠언으로 사회를 이끌어 갈 한 남자의 위상과 그의 가정을 온전히 이끌어 나가는 아내를 위한 잠언일  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복음 사역자와 그의 자녀들을 가르칠 교회의 역할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10절부터는 시편119편과 같이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 순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기록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A.      현숙한 여인의 값(10-12)-진주(루비)

잠언기자는 10절에서 현숙한 여인을 찾기 어려움을 언급하여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10) 증거하였다. 현숙한이란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종교적으로는 확고한 믿음을 의미하고 도덕적으로는 덕행이 있으며 재능면에서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현숙한 여인으로 칭송된 여인은 미련한 자 나발의 처로서 후일 다윗의 처가 된 아비가일이 있다. 성경은 아비가일을 가리켜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답다(삼하25:3) 하였고 다시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네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하25:33) 기록하였다.

 

현숙한 여인을 진주(KJV;루비)에 비교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진주는 깊은 바다 속의 조개 속에 스며든 돌이 변화된 것이다. 조개는 침입자에게 오랜 세월 아픔을 인내하며 스스로 사랑의 분비물을 입혀 곱고 귀한 진주를 만들어 낸다. 그로서 아무 쓸모 없는 작은 돌이 귀한 진주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운 자태를 자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성도는 진주와 같다 하겠다. 하나의 좋은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 사랑의 고통이 따르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에 걸쳐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현숙한 여인으로 만들어져 간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비유하시며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13:45)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지금도 그의 나라를 장식할 극히 값진 진주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잠언기자는 현숙한 여인을 만난 남자의 복을 말하여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만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하였다. 여기서 산업이 핍절치 않는다는 말은 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그녀를 평안히 신뢰하므로 그가 노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아내의 성실한 인품을 신뢰하므로 재물을 축적할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 개척교회 목사의 고민은 먹고 사는데 있다. 마치 아이 배지 못한 태처럼 온 세상을 삼킬듯한 기세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예로부터 지식으로 가득한 선비는 먹을 것을 위해 자신의 덕망을 팔지는 않는다.

 

계속하여 그는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12) 증거하였다. 만약 어느 목회자 가정의 한 아내가 있어 재물에 탐을 내고 남편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략을 하게 한다고 하자 결국 그 녀는 남편에게 악을 행한 여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선을 행하며 악을 행치 않았다는 것은 남편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선한 조강치처로서 버림받지 않은 아내에 속한다. 나는 지금이라도 장가를 든다면 이런 여자를 얻고 싶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교회 명부에 올릴 자는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를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5:9,10) 하였으며, 다시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버렸으므로 심판을 받으니라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5:11-13) 하였다.

 

또한 야고보서에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4:13,14) 기록되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오늘날 변질된 교회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계시록 2장에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가 기록되었다. 흥미롭게도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소개되었다. 주님의 모습은 조금도 용서의 여지가 없으신 엄한 의지가 서려 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칭찬하시며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하셨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는 최고의 열매를 맺은 교회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나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하였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이방인 처로 이스라엘 가운데 850명의 이방인 사제들을 키운 여자다. 그로 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방신에 빠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한 남편을 향한 아내의 성결을 귀히 여기고 있다.

 

일곱교회 중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는 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 뿐이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계3:8b) 칭찬하셨다. 이처럼 나는 어찌하든지 주님이 신뢰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B. 복음의 페러다임(13-16)

이제 현숙한 여인의 자태를 알아 보자. 성경은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의식주와 과 관련된 것으로 의복의 재료가 양식보다 앞 선 것이 흥미롭다. 또한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녀의 삶의 경영 자세는 정치적이거나 또는 농사를 짓는 농부의 입장이 아니라 사업가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는데 있다.

 

그녀는 의식주의 필수품들을 손수 구하여 사용하였다. 물론 생필품들을 직접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생필품의 생산 분야가 각각 달라 그것을 모두 섭렵할 수 없는 관계로 그녀는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하여 사용함으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한 교제의 길을 선택하였다.

 

특별히 그녀는 가솔들의 의복에 필요한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옷을 만들어 2차 산업을 일으켰다. 양털과 삼은 서로 상반된 재료로서 계절에 따라 귀인과 평민들이 자기 능력과 용도에 따라 두루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것은 기초생활의 보편성과 균형을 이룬 것이라 하겠다. 또한 그녀는 먼 데서 양식을 구해 왔다는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요즘 FTA로 나라가 시끌법석인데 성경은 이 시대에 이미 교역을 계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자기 것에 너무 치중하여 모든 것을 균형있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있다 하겠다. 과거 유대인들은 율법에 몰입하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 가운데로 헤쳐 그들의 시선을 세상 가운데로 돌려 놓으셨다.

 

주님은 밤새도록 헛 그물을 치고 돌아 온 베드로에게 반대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다. 이와 같이 각 교회들은 이제 자기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살펴 보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사역의 페러다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 가정의 살림을 맡은 자의 경영 자세다. 성경은 그녀의 사역의 자세를 말하여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15) 라고 증거하였다. 자기 식솔들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녀는 양들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주님처럼 자기 식솔들의 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생명의 말씀에 고갈된 성도들의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멋진 설교자료를 얻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양털과 삼을 구하여 스스로 옷을 짓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멋지게 디자인 된 명품 옷을 사다가 입히며, 대형 마트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사다 먹임으로 모두가 비만해 빠져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오늘날 갈보리채플이 오직 성경 전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각자의 교회에 맡긴 직무에 따라 스스로 헌신하는 것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그 어떤 일보다도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생명의 말씀에 열심을 갖고 스스로 준비하는데 있다. 또한 담임목사는 그와 함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은사에 따라 각 사람의 직임을 나누어 준다.

 

16절에는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라고 기록되었다. 밭을 간품한다는 말은 밭을 잘 골라서 산다는 뜻으로 이것은 밭의 토양의 성질을 잘 살핀다는 뜻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각 사람들의 상태를 언급한 것이다.

 

이 때 주님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13:38) 하셨으며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13:44) 하셨다.

 

각 사람들은 자신의 혹은 목적, 혹은 지식, 혹은 의지, 혹은 환경적 상황에 따라 복음을 받아 드리는 자세가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사역자의 지혜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관계로 때로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 되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

 

또한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라는 말은 흥미롭다. 킹제임스 성경은 가기 손의 열매를 가지고 포도원을 세우며라고 기록되었다. 이로서 포도원은 사는 것이 아니라 밭을 잘 골라 사서 자기 손으로 가꾸어 그 열매로 세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17)라는 말은 중심과 균형에 관한 말씀으로 비로서 전쟁을 위한 행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계속하여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18) 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경영하는 일이 잘되면 방심하여 그 하던 일을 놓고 다른 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하여 말씀 가르치는 것을 치중하던 교회가 부흥이 되면 말씀 교육에 소홀하고 전도에 열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현숙한 여인은 자기의 일이 잘됨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않고 더욱 열심을 내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막4:24,25) 하셨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 위한 그의 종들의 사역 자세를 언급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12년 전 서울에서 척 스미스 목사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척 스미스 목사님은 목회 초년생인 나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이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사37:30) 기록되었으니 네가 이 말씀을 깨우치는 날이 이르면 주님의 부르신 뜻을 이룰 것이라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며 내가 앞으로 3년만 잘 참고 인내하면 한국에서 갈보리채플의 기업을 물려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었는데, 벌써 12년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다. 사랑하는 형제들과의 갈등, 갈 길을 몰라 좌충우돌하며 방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마다 나의 발길을 돌려 세우셨고 나는 지금 내가 이 자리에 그대로 있음을 감사하고 있다. 할렐루야!

 

이제 그녀의 발길은 이웃을 돌아 보기 시작한다. 자가수성을 한 후에 비로서 그 힘의 능력을 가지고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20) 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인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강령을 말씀하셨는데 먼저는 주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밤을 새어 그의 뜻을 살피고 그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과 부지런히 밭을 일구고 포도원을 세워 그 능력의 힘으로 강한 손을 들어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보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일인가?

 

C.     현숙한 여인의 열매

이제 우리는 현숙한 여인의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된다. 잠언기자는 그 집 사람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22) 기록하였다. 홍색 옷이란 귀인의 옷이다. 그들의 출발은 양털과 마로 지은 옷을 입었었는데 이제는 그 가족이 모두 귀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죄인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죄인 된 우리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그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도라 부름을 받고 이제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임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환난의 두려움이 임한다 하드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22절에는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라고 기록되었다. 세마포는 제사장이 입는 옷이며 자색 옷은 왕의 옷이다.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다같이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a) 증거하였다.

 

이 모습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심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니다. 나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짓는다는 말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자리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다. 면류관은 최종 경주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왕관이기 때문이다.

 

C. 현숙한 여인의 권세

이제 우리는 23절 이후에서 흥미로운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그(녀)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고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23-27)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었다는 말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전 세계 가운데서 열매를 맺고 있는 갈보리채플을 일으킨 척 스미스 목사의 이름은 온 세상 사람들의 아는 바가 되었다. 이제 갈보리채플은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지어 그 띠를 상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땅끝까지 나아가게 하며 능력과 명예로 옷을 삼고 훗날 주께서 오실 때를 기뻐하여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란 말씀이다. 척스미스 목사님은 갈보리채플 목회자 컨퍼런스를 통해서 끝까지 잘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그리스도의 뜻을 아는 우리는 결코 교만하지 않아서 인내로 사랑을 실천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 보고 결코 게으르지 않아서 라오게디아 교회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D.     현숙한 여인의 상급

잠언기자는 현숙한 여인의 영광을 말하여 그 자식들은 일어나서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28,29) 증거하였다. 여기서 그 자식들은 과연 누구인가? 또한 그 남편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계시록에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19:7)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이 날은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교회와의 결혼식 날이다. 계시록 기자는 신부의 모습을 증거하여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8) 기록하였다.

 

오늘 잠언서 기자는 잠언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0) 증거하였다. 마치 다음에 연결되는 전도서를 예고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고운 것과 아름다운 것을 탐한다. 특별히 많은 교회들이 고운 것과 아름다운 것을 탐하다가 실족하여 넘어지고 있다. 그들은 실로 여호와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끝으로 그는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1) 기록하였다.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또한 성경은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심지 않은 것을 걷을 수 없고 심은 것을 거두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너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였다.

 

여기서 성문이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말한다. 또한 성문은 심판의 장소이기도 하다. 계시록 기자는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 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 오지 못하되 어린양의 생명책에 가록된 자들뿐이라(계21:26,27) 기록하였다.

 

그날에는 주의 뜻대로 하심을 입은 자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장로들과 더불어 성문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주께서 이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하셨다. 과연 당신의 교회는 성문에서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좀더 솔직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아멘. 주여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