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2:14)화평함과 거룩함으로

이요나 2007. 6. 28. 16:01

(히브리서12:14)화평함과 거룩함으로

 

(히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장 두번째 시간입니다. 이제 다음 주로 히브리서도 끝을 맺습니다. 다음주 히브리서를 마치고 나는 광주의 무등산 제일 기도원을 방문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 장청익 목사가 지금 40일 금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스무 하루째로 오월 십육일에 끝이 납니다.

 

과거 일본에 있을 때 21일 금식을 한 일이 있습니다만 이제 나도 지금 목숨을 걸어 놓고 울부짖을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이번 길에 몇일이라도 함께 금식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피곤해 하지 말고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기 이유는 우리는 그의 참 아들로서 그의 합당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징계라함은 우리를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0절에서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다시말하여 정금과 같이 정결케 되기 위하여 연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아야 겠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내함이 우리 앞에 놓은 고통을 잘 참으면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먼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하셨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하나님의 평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도서신을 통하여 첫 인사가 은혜와 평강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과의 첫대면에서 너희가 평안하냐 물으셨습니다. 평강이란 하나님에 의한 영육간에 부족함이 없는 충족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평안함을 나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경쟁에 맞불려 자신의 교파와 교회의 유익만을 위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행실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할 두번째는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란 헬라어로 하기오스입니다. 하기오스란 구별하다는 의미로 하나님 앞으로 나누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하여 성전이나 성도들을 모두 지칭하는 구별된 물체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정말 부끄럽기만 합니다, 과연 우리가 거룩히 성별한 자로서 온전한 성도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거룩함이란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게 됩니다. 사실 거룩함이란 성경의 가장 큰 주제이며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너희가 사람들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씀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이제 곧 주께서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와 달리 그리스도를 맞아야 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먼저 모든 사람들과 화평함을 이루는 것이고 또 모두가 함께 거룩함을 좇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쓴뿌리

계속하여 기자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하였습니다. 지금 기자는 우리에게 여러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들을 설명하고 잇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른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데 사람들이 교만한 나머지 자기를 높이고 합당한 말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쓴뿌리란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언행에 관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으로 보아 이것은 신학적인 잘못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에서의 더러움

세번째로 히브리서 기자는 '음행하는 자의 한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가 두려워 하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25장으로 2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에서는 이삭의 장자로서 사람의 예로하면 조상의 유업을 물려 받을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신이 장자됨의 교만함에 빠져 하나님의 계획을 저버리고 자신의 호색함을 따라 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자신의 태어난 직분만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좇아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하여 히브리 기자는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의도는 택하심에 대한 직무적 의무와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에서와 야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날에 받을 하나님의 기업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세상으로 말하자면 그 아버지 이삭의 기쁨이였으며 장자로서 그 기백이 출중하고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에비하여 야곱은 내성적이고 마마보이처럼 대범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찬 자였습니다. 어느 모로 보거나 장자로서의 기업은 당연히 에서의 몫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야곱을 기뻐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미리하신 예언을 갖고 미리 판단합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모두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다만 누가 그 기업을 물려 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각 사람의 태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서로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음행하는 자와 한 그릇 식물에 목매고 있는 에서를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분

이것은 이미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가 갖고 있는 물질관과 거룩성에 대한 시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음행하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살펴 볼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8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접견한 이스라엘이 겪었던 두려움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께서 더 말씀하지 않으시기를 구했다 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은 오늘날 우리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모형과 같은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하늘의 기업에 관한 것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잠시 겪었던 하나님의 기업에 관한 것에도 그 소리를 듣는 것조차 두려웠거늘 하물며 우리가 이를 곳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만 이것은 장차 우리 온전한 자들이 들어갈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속한 곳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교회 성도들에게 앞으로 다가 올 대환난 이후에 펼쳐질 시온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

또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천만의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의 총회와 교회와 온전케된 의인의 영들'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느 때 어느시를 말하는 것인지 그리스도의 날에 이 땅에서 펼쳐질 천년왕국의 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후 내려올 새하늘과 새 땅을 말씀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의 환난이 끝난 후 그리스도의 날에 있을 일들을 언급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또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24절에서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언급한 것인데 왜 아벨의 피에 비교한 것인지 우리는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의 말하는 의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볼 때 히브리 기자는 앞에서 에서의 멸망을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벨의 피를 언급한 것은 가인을 에서의 자리로 함께 이끌어 온 것입니다. 더우기 이 말씀의 발단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씀과 함께 주어진 말씀으로 지금 기자는 우리에게 주를 만나지 못할자들의 행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기자는 25절에서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기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히브리 교회 성도들의 종말에 끝까지 지켜야할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 있을 마지막 일들에 대하여 다시 경고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모두 구약 속에 살아 온 자들로서 모세를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멸망의 때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하였습니다.

 

이미 이사야는 그날에 대하여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과 같고 무화과 나무 잎이 마름과 같으리라"(사34:4) 예언하였습니다. 또 우리는 계시록에서 장차 우리 앞에 임할 새하늘 새땅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된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전하여 두신 것이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은 모두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던 자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기자는 끝으로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지금 기자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남아 있을 때에 불로 연단함을 통하여 우리의 더러운 모든 것에서 정결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사람들로 칭송과 박수를 받아  상금을 모두 받아 버리고 교만하여져서 형제와 화평치 못하고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여 주의 날에 약속하신 그 영광에 들어가지못한다면 우리에게 있었던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나아갔던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드린 예물이 가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으며 우리가 에서와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소멸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한 행실로서 더없이 깨끗한 성도의 아름다움을 지키도록 하십시다. 13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