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2:12)곧은 길을 만들라

이요나 2007. 6. 28. 16:02

(히브리서12:12)곧은 길을 만들라

 

(히12: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

 

우리는 앞에서 믿음의 실체와 믿음의 증인들에 관한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요즘같이 믿음의 실체가 소연해지는 때에 참으로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실체가 오늘날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기자는 서두에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과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인내를 이루라

히브리 기자는 지금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란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앞에 있는 목적을 바라보고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위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흑암에 가두셨다'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마지막에서 믿음의 증인들이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이라 증언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을 칭송하며 여자가 낳은 사람 중이 저보다 큰 사람이 없다 하시며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저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믿음의 모델이 된듯이 거들먹거리며 없는 사람들 앞에 유세를 부리고 또 너무 없어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하여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나는 과거 믿음생활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고통을 체험하며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며 세상의 유혹에 마음을 써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고통은 전보다 더 극심한데도 내 안에서는 더욱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열정이 솟꾸치고 있습니다.

 

몇년전 미국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는 갈보리채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마지막까지 잘하자라는 주제로 제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척 목사님이 그러한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은 종말의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하여 넘어질 것이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시아에서 나와 함께 하던 자들이 모두 떠나갔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최근 저는 많은 사람들이 서울 갈보리채플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갈보리채플을 떠나는 이유는 나의 결함도 많겠지만 그들의 눈에 보기에 흠모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후의 승리자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여' 라고 말하여 우리가 지금 경기 중에 있음을 일깨웠습니다. 경기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며 모든 경기에는 최종적인 상금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푯대를 행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려 좇아가노라' (빌3:14) 말하며 다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온전한 인내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기록하였습니다. 주께서도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낙심치 말라

계속하여 히브리 기자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낙심치 않는다는 말은 긴장을 풀고 맥빠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다가 정말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그 결과가 좋아지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먼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였다'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이 미리 말한 바 '주께서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해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리셨으며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하심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주의 징계하심

두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내 아들아 주의 경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욥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보모의 책망을 받고 살아 왔습니다. 책망을 받을 때의 우리는 고통스러웠으나 우리는 그 책망의 사랑으로 온전한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봉사와 섬김

이제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하였습니다. 저자는 지금 우리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이란 주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봉사와 섬김을 언급한 것입니다. 저는 최근 제가 이끌고 있는 크리스챤 클럽이라는 인터넷 모임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갖었습니다. 5년 동안 나름대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이성교제와 결혼을 위한 모임이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명이 결혼을 하였습니다만 그들은 그들은 모두 떠나고 내게는 아무런 열매없이 혼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내가 이 일들을 하지 않고 다른 선교회를 도왔다면 아마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성이 소원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출가한 부모들의 심정과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출가한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자녀들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살아 주는 것이지 자신들에게 공경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녀들의 보모 공경은 그들이 복을 받을 문제이지 나의 서운함과 관여할 바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도인의 모델

'곧은 길을 만들라'는 말씀은 우리의 바른 생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자세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최근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갈보리채플을 이끌어 오는 동안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나는 최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번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의 말처럼 파산선고를 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외국으로 도망을 할 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곰히 생각해도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찾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일생에서 이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생명이라도 버리고 주께 나아갈 결심입니다.

 

*고치심의 능력

히브리 기자는 마지막으로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봉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리를 저는 것은 자기 앞에 바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생활에 빠져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징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생활로부터 오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이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는 이제서야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목사가 된 후에도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침을 받으라'는 말씀은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제라도 주의 말씀을 따라 곧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우리 앞에 심히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좁은 길로 들어가라 하였습니다. 좁은 길은 협찹하여 찾는 이가 적으나 넓은 길은 찾는 이가 많아서 결국은 멸망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주여 내게 바른 길을 허락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