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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러서11:38)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이요나 2007. 6. 28. 16:03

(히브러서11:38)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히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우리는 앞에서 믿음의 비현실성과 현실성을 살펴 보았습니다. 비현실성이란 믿음의 현주소가 현실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며 현실성이란 믿음의 실제는 현실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 같습니다만 믿음이란 것이 비현실 속에 나타나는 현실이라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볼 차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성경 속에 기록된 믿음의 증인들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을 갖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였는가에 초점을 마추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개념

히브리서 기자는 17절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 외에도 이스마엘과 그두라에게 낳은 아들들이 여럿있었는데 성경은 이삭을 가리켜 독생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독생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삭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의 기업을 물려 받을 자인 것처럼 이 땅의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성경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다'(요3:35) 기록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8절에서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그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개념을 갖고 있을 때에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많을지어다 기도하였습니다.

 

* 미래 지향적인 믿음

계속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였고 그 지팡이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했으며"하였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믿음이 모두 장래를 바라 보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믿음의 현실은 장래에 대한 소망에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믿음은 미래 지향적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소망을 걸고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자식에 대한 장래가 불투명하다면 그 부모의 희생은 무의미 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므로 장래에 대한 믿음의 확신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개념을 알 때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갖고 헌신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환경을 초월

히비르 기자는 23절로부터 모세의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보모가 모세의 아름다움을 보고 석당 동안 숨겼던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에 처해진 환경을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24절에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시는 자를 바라 봄이라"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생활에 가장 두려운 적은 현실에 안착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늘 우리를 위협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는 금은보화와 권세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을 비유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현실의 화려한 유혹과 두려움을 초월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 기자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자에 대한 믿음 즉 우리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이상적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신뢰

흥미로운 것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명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에 내리신 하나님의 지시에 의심을 품지 않았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 그 부르신 자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자가 처해진 현실을  초월하여 그 말씀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고 그대로 순행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은 가능하고 이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바다위를 걷는 다는 것과 하늘을 날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황당무괴한 말씀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에서부터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과 사흘만에 살아 나신 것 모두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심없는 믿음

성경은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 빠져 죽었다'증거하였으며 다시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다"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이방인 기생 라합에 관하여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여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자신의 생각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실행은 국가와 이념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투쟁

히브리서 기자는 32절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성경에 기록된 주의 부르심 가운데 처해진 환경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의 이름들을 열거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거론된 믿음의 사람들 중 세명의 사사 즉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은 우리가 생각할 때 과히 위대한 사람들은 아니였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기위해 두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과정을 갖었으며  바락은 드보라 선지자로부터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실족하여 대적을 물리치는 영광을 여인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또한 삼손은 한 여인에게 빠져 나실인으로서의 부르심을 저버려 두 눈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시 믿음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명을 위협하는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늘 실족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주를 세번이나 부인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르신 자의 실족함을 다루지 않고 그가 어떻게 마음의 의혹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켜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 너를 밀까 부르듯이 청구하였으나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성경은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했으며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의 부활을 받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고통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희롱과 채칙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 기록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믿음인가?

성경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증언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볼 때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러한 고통을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칭얼거리고 손톱에 가시만 박혀도 주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처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한 인생이 되겠습니까? 그들의 믿음의 결국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주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사람 중 이보다 큰 자는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저보다 크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한 자들의 몫입니니다. 지금 우리는 그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무수한 사람들의 믿음의 투쟁이 그리스도의 날을 예비한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