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10:38)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요나 2007. 6. 28. 16:04

(히브리서10:38)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히10:38)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0장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9장과 10장 전반부에서는 율법과 구약의 예법이 하늘의 참 장막의 모형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여러 장에 걸쳐서 모형론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일들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주께서 세우신 우주 만물의  질서 가운데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에서 하나님의 신적 요소를 생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종교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주로부터 성령으로의 다시 태어남 즉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듣고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미의 태에 다시 들어 갈 수 있단 말입니까 하고 벽창호같은 소리를 한 것을 기억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들은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의심하며 부활승천과 재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수천년 동안 율법에 의해 제사를 드려 온 모형론을 제시하여 조목조목 설명을 한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1절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죄사함을 위해 드린 피의 제사로 하여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영원히 사할 수 없었다면 그들이 해마다 제사를 준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미리 말하여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신다 하셨고 두루마리 책에 나를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내가 왔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첫번째 제사로 온전케 할 수 없음으로 둘째 것을 세우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단번에 드리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선포 하시고 성경이 미리 말한 바와 같이 자기의 원수들이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죄를 영속하심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그것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성령은 우리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셨으며 다시 "저희 죄와 저희 허물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언약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죄가 영속되었으므로 우리가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를 향하여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희 육체니라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께서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제자들의 증언이요 또한 성경의 예언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더이상 지성소 밖에서 죄사함을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이 친히 그리스도의 전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역자들이 성전에서 죄사함의 메시지를 거듭선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죄에서 사함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요 장차 성령으로 그의 신부가 되어 하늘에 오를 하나님의 시민들을 모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들의 부족한 지식으로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겁탈하려 하는 것입니다.

 

*참 마음과 믿음으로

바울은 22절에서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하였습니다.  이제 더이상 우리가 망설일 것이 없는 것은 우리의 지위가 땅의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먼저 '믿는 도리의 소망 굳게 잡으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이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높은 지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소망이 아니라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받을 상금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서로 돌아 보며 사랑하며 선행을 하라'고 권면하였으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한가지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우리 가운데서 훼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범죄자의 형벌

바울은 26절에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면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미 6장에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네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라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만 오늘 26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느냐"물으며 성경이 기록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안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과  많은 은혜를 받고도 멸망을 당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 일본을 다녀 왔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제자 장청익 형제의 목사 안수식을 축복하기 위해 갔던 것입니다. 우리 갈보리채플의 세력이 연약하여 갈보리채플 사역자로 기름부음을 하지 못하였지만 나는 그를 나의 제자로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우리 가운데로 돌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슴 아프게도 그는 안수식을 전후로 6년간을 시무하던 교회로부터 담임과 함께 퇴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참으로 존경받을 만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들의 퇴직 이유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보다 성도의 귀를 즐겁게 하는 목사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의로운 목사들이 수난을 격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번 여행길에서 니이가다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장청익 목사와 함께 저에게 성경공부를 하던 제자가 시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7년의 일본 생활 속에서도 니이가다를 방문하지못하였던 관계로 설국(雪國)이라 불리우는 니이가다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설경을 만끽하며 수십키로를 가야 만날 수 있는 한국인 교포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을 권면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에도 한국 어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목사와의 갈등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십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하나님께서 저를 권념하여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리기 위해 밤을 세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갈급한 심령으로 주를 사모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그들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는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우리 앞에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단이 복음의 사역자들을 실족 시켜 성도들을 교회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담대함으로

32절에서 바울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에 동참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고난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받은 고난과 그들의 믿음을 살펴 볼 것입니다만 바울은 사람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 기록하였으며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은 35절에서 우리에게 담대한 믿음을 요구하며 이로서 우리가 큰 상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에게 이를 위하여 인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최근 극심한 눌림과 아품과 그리고 더이상 물러 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십여년을 기도한 것입니다만 얼마를 더 참아야 할 것인지 또한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함께 갈 것인지 아득한 시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담대함과 인내를 요구하므로 나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기도할 뿐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끝으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매우 사랑합니다. 바울은 이미 그의 서신에서 이 말씀을 두번이나 인용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지 못하고 고통의 때를 살아가야 하는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죄와 허물로 물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짐승만도 못한 이방국가 바벨론을 통하여 통치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불평에 쌓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기쁨을 견디지 못하고 깡충깡충 뛰면서 '비록 무화가 나무가 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오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 하리라" 노래 하였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지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오직 여호와를 위하여 기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주님은 오늘 종말을 당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의인와 믿음이란 말은 모두 창세기 15장에서 처음 사용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를 의인이라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의를 함께 받았은 즉 우리가 그 의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는다 하였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않는다"기록하였습니다.

 

더 무서운 말씀은 "우리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침륜이란 멸망을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음행으로 이끈 발람 선지자가 멸망 당했으며 주를 배반한 가롯 유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주의 오심으로부터 멀리 있어 이 말씀을 듣지 목하였음에도 다시 구원할 수 없는 지옥에 처했었거늘 오늘날 이 경계의 말씀들은 우리가 되돌아 서면 우리가 받을 형벌은 어떻겠습니까? 더욱 담대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의인에게 주신 넉넉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