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9:10)복음의 개혁

이요나 2007. 6. 28. 16:05

(히브리서9:10)복음의 개혁

 

(히9: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

 

오늘은 히브리서 9장을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는 구약의 예배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구약의 제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아직 그들이 구약의 제사와 관련된 종교적 예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제사의 참 모형이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섬기는 예법과 함께 성소를 주셨음을 언급하면서 그 성소는 첫 장막과 둘째 장막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상기 시켰습니다. 첫장막은 등대와 상과 진설병을 두어 제사장들이 들어가 예배를 드리게 하였고 둘째 장막은 지성소라 불리며 금향로와 만나 항이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을 넣은 금으로 싼 언약궤를 두었으며 그 위에 그룹천사 둘이 날개를 펴고 속죄소를 덮고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 즉 둘째 장막은 일년에 한번씩 대제사장만이 들어가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짐승의 피를 갖고 들어가 죄와 허물을 사하는 속죄제를 올렸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이로서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과거 자신들과 보모들이 섬기던 종교적 행위에 대하여 동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오랜세월 어려서부터 불교에 심취되어 있었고 매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던 관계로 연초나 추석이 되면 돌아 가신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로하여 바울은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하였습니다.

 

우리가 돌아 가신 부모님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서 무엇인가 그 영혼을 위해 해드렸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나간 불효가 씻겨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우리가 드리는 제사의 예가 돌아가신 부모님께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음부와 우리의 사이에는 아무도 건널 수 없다 기록하였으며 10절에서 바울은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기록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바울은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이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짐승의 피로 일시적으로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사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그의 피로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에서 짐승의 피로서 제단과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정결케 하는 예법이 율법으로 정해졌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새 언약의 중보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속하시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23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 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기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여기서  구약의 모든 종교적 예법은 하늘의 모형으로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그의 백성들로 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방편이였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심판이 있다 말하며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던지 자기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구태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죽음이 모두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장중에 있고 영혼의 심판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졌다면 죽음이 불가피한 인간으로서 죽음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은혜로 말미암아 속죄를 받아야 할 것은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절에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두번째 나타나심에 대하여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를 믿어 죄의 사하심을 받은 믿는 자들이 모두 그들이 믿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중에 속한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목박히시던 날 성전의 휘장이 갈라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성소와 지성소를 가려야할 휘장은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령으로 죄없다 하심을 인정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으로 이미 지성소에 들어 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그의 나타나심을 고대하며 성경으로써 하늘 시민권자의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더이상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더이상 우리에게는 율법이 필요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죄를 모두 감당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인 것입니다. 10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