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베드로서강해

(벧후3:18)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

이요나 2007. 6. 28. 16:16

(벧후3:18)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

 

(벧후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이제 베드로서 후서 마지막장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2장에서 종말에 일어날 일들과 이단과 음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거룩한 명령의 수호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2장 마지막절에서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하였습니다.

 

최근 베드로서를 비롯한 목회서신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거룩한 생활에 대하여 무관심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생활을 한다면서도 날이 갈수록 성도들에게서 경건한 능력이 사라지고 있고 교회는 종교활동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처럼 거룩한 생활에 대하여 도외시 하게 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메시지를 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거 서른이 되어서 구원의 은혜에 동참한 후 정말 열정적인 믿음을 갖고 교회생활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당시 나의 믿음이 더 순수하고 열정적인 것이 아니였나 할 정도로 마치 여호수아의 군사라도 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열정은 교회에 있었고 그리스도를 향한 지식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한번도 성도의 온전한 생활과 또 음행과 탐욕으로 말미암은 심판에 대하여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 오직 믿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라는 미명 아래 지식 없는 나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도리어 더러움에 빠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던가 또 음행과 탐욕에 대하여 정당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냐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택함을 받은 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어떻게 능력으로 임하고 있는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고자

베드로 사도는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라고 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지금 우리에게 '너희'라는 칭호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세상과 구분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사도는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자들에 관하여 서술하여 먼저  그들의 거룩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던 중 보좌로부터 거룩하다 가룩하다 거룩하다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다는 천사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입술의 죄악을 깨닫고 주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지금 베드로 사도는 앞에서 누누히 언급한 것과 같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로 발생된 교회의 이단자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품성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여 멸망을 자처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사도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두었다고 기록 하였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친히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직무를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기 위함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자들의 임무의 막중함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로 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후계자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믿후2:15) 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세움을 받은 자들이 주의 맡기신 직분에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바로 전달하였다면 그 말씀이 택하신 자들 심령 가운데 역사하여 모든 더러움에서 씻어 정결한 거룩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성도의 은혜의 삶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조롱하는 자들

사도는 3절에서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기롱하는 자란 조롱하는 자 즉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르킵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중에 널리 펴지고 있는 염병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설교는 거의 중단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잘못된 종말론으로하여 세인들로부터 이단시하는 풍조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로하여 교회는 두려운 나머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 입을 다물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로 하여 베드로 사도는 앞에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관한 것에 대하여 각별히 조심하라 한 것입니다. 사단이 이미 무지한 사역자들의 교만한 마음 속에 역사하여 사람들을 실족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강림의 약속을 부인하면서 만물의 창조에 대한 이의를 제기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염병처럼 되어버린 진화론을 경계한 말씀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시시 때때로 만물의 잔재들을 발견하여 화확적 반응과 과학의 기술을 이용하여 터무니 없는 연대를 추정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 서로 이어지지 않는 증거들을 진화라는 명분으로 연결고리를 지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몇 억만년 전의 원숭이의 조상 고리라에서 진화되었다는 둥 허무맹랑한 말들을 지어내고 있습니다.

 

*창조의 세계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지금 베드로 사도는 창조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 사도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다"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함께 포함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하늘'(Shamayim)이란 단어는 복수로서 창세기 1장 6-7절에서 지어진 궁창 즉 창공(sky)이 아니라 1장 1절에 언급된 하늘 즉 천국(heaven)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이란 말씀은 창세기 1장 2절과 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창세기 1장 2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기록되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땅이 처음부터 깊은 물 속에 있었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땅은 1절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땅에 해당하는 물질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물은 창조의 물체가 아니고 처음부터 있어 하나님의 신이 임재하셨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하게 하신 것은 땅으로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6절에서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로 말미암아'라는 접속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의 세상이 멸망당한 원인도 오늘날과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또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그때 세상'이란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 사도는 지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처음세상을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7절에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전하여 두신 것이라"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 간수한 바 되었다"는 말씀은 주의 날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13절)과 관련하여 또 새로운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사르기 위해 간수하신 '하늘과 땅'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조명해 보건데 흥미롭게도 물을 넘침으로 멸망한 그때 세상은 하늘과 땅이 함께 멸망한 것이 아니라 땅이 멸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5절에서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각별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는 지금 여기서 물로 멸망받은 세상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날에 펼처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르기까지 불사르기 위해 간수된 가시적인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여 우리가 살아야 할 본 무대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아들에게 천하 만물을 맡기시고 그  모든 심판의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들이 인자 됨을 인하여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기록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8-13)

베드로 사도는 8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갖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 사실을 잊지말라"하였습니다. 오늘 이말씀은 매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로서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비약하여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하여 하나님의 창조사역 6일과 7일에 안식하신 것을 이끌어 내어 인간의 세계를 창조로부터 6천년으로 보고 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안식의 날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근거할 수 없는 무리한 해석입니다.

 

사도는 9절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오래참으심과 구원의 계획을 언급하였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음과  또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증거한 것으로  우리에게 언제 다가올지 모를 주의 날을 환기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리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하였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비단 베드로만이 언급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달리 그 날에 있을 총체적인 상황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체질이란 우주의 근본 요소로서 다시 말하면 우주만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풀어진다는 말씀은 질서의 붕괴를 언급한 것입니다.

 

창조이래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주만물의 질서는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공해로 말미암아 기후의 변화와 가뭄과 국지 적인 홍수 그리고 대지진 같은 것이 있었습니만 수천년 동안 천체의 질서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요엘선지자는 그날에 있을 일들에 관하여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날에 일들에 대하여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리라"(마24:29)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말씀으로 주의 날에 임할 천체의 징조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날을 경계하며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다. 주후 이천년 동안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그의 말씀들을 상고해 보건데 주의 날이 심히 가까이 와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날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말씀에 둔감해져서 자신은 자유의 종이 된 것처럼 방관하고 더러움에 얽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 (14-18)

이제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경고의 글을 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하였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도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람이 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최근 수년동안 우리는 공직자들로 천거된 사람들이 모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인 문제로 하여 탈락한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학벌로나 직업으로나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의 속을 드려다 보면 마치 현미경으로 바이러스 균체를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 중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죄없다 하심을 받았고 의인이란 칭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죄에서 풀어나 의인의 반열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책이 이미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책이 기록된 많은 사람들 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달려가 멸망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말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하였습니다.

 

사도는 지금 우리에게 성경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멸망의 길을 경계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성경 도처에서 덫을 놓고 스스로 교만하여 지기를 자청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하여 바울은 구약의 모든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된 것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베드로는 마지막 권고로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하였습니다. 참으로 아찔한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살피지 못하였다면 우리도 무법한 자의 미혹에 이끌려 떨어져 나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니 이것은 행위와 관계없고 저는 이미 영원한 구원에 이른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는 굳센 믿음에서 미혹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한 생각들이 자신을 더러운 곳으로 이끌어 내어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은혜에서 떨어져 더러운 형벌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란 먼저 우리의 구원이 나의 행위와 관계없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과 그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영원한 영광의 날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디 더욱 많은 지식을 앎으로 은혜와 평강을 더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요한일서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