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베드로서강해

(벧후1:2)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의 은혜

이요나 2007. 6. 28. 16:20

(벧후1:2)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의 은혜

(벧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많을 지어다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공부할 성경은 베드로후서입니다. 그동안 2년에 걸처 바울서신을 공부해 왔습니다만 아직 끝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쉬지않고 성경을 강해한다는 것이 적지않은 부담입니다만 한 부분을 마칠 때마다  더욱 새로워지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주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바울서신은 바울 사도가 그의 동역자들과 3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방에 개척한 교회와 성도들을 가르친 신학적 교훈과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범에 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베드로서는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을 향한 권고와 위로의 글이라 하겠습니다,

특별하게 나만 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최근들어 국내외 정세와 또 여러가지 천혜적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 정말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시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령으로부터 느껴지는 위협감과 영적 눌림은 이제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지 두렵기만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후 68년 경 네로에 의하여 순교당했습니다.
 교회사 속에 전해지고 있는 베드로의 마지막 신앙고백  '쿼바디스'는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을 뭉쿨케 합니다. 이 서신은 베드로는 목회 말년에 쓴 것으로서 날이갈 수록  격심해진 네로황제의 핍박 속에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소망 안에서 더욱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베드로전서 1장은 세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문단에 걸쳐 세 가지 주제가 기룩되었습니다. 그 첫째가 '산소망'(3)을 위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두 번째는 영혼의 구원을 위한 '믿음'(9)이며 그 세번째는 거짓 없는 '형제 사랑'(22)입니다. 

I. 편지의 수신자(1-2)
베드로는 서두에서
  그 수신자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보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진 나그네'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의 기원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외세에 의해 세번의 멸망을 당했는데,
그 첫번째는 앗수르에 의하여 북이스라엘의 멸망(왕하17:23)이고
 두번째는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BC 580)입니다(왕하24:14-16). 세번째 추방은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생활 후 귀환하여 상당한 후에 발생되었는데 로마의 폼페이(pompey)가 예루살렘을 점령(BC 63)하고 이스라엘을 속국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느 시대 어느때를 막론하고 사로잡혀간 지역에서 믿음의 둥지인 회당 즉 시나고구(Synagogue)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번영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에서든지 10명이상이 모이면 회당(Synagogue)을 지어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교회 즉 '에클레시아'(Ekklesia) 라고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는 이 편지가 이방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본도 갈라디아 갑보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는 특정지역의 성도들에게 보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지역은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더 나아가려고 힘썼던 아시아 지역으로 오늘날 터키에 해당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이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아시아로 들어가고자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비두니아로 들어가고자 무시아 앞에 이르렀을 때 주의 영이 허락치 않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곳에서 마게도냐로 들어가 대망의 유럽선교의 기틀을 놓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베드로서신을 접하면서 주께서 바울의 진입을 막으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본도를 중심으로 이 지역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이후 안티오쿠스 2세가 시리아를 지배할 당시 그 지역에 살던 2만세대의 유대인을 아시아 지역을 이전 시켰던 곳으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난 유대인들이 소아시아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의 유대인의 분포와 세력을 아시는 주께서는 바울의 사역을 막으시고 베드로를 보냄으로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 하신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는 아시아의 수도는로서 유럽과 아이사를 잇는 교량이 되어 정치 경제 교통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바울이 에베소에 3년을 머물며 두란노 서원을
 개설하여 갈라디아 골로새 지역을 연결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교회를 개척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화되지 못한 유대인의 세력을 방어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당시 이방인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 즉 헬라와 바벨론의 시대로부터 몇대를 거쳐 유랑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이방 가운데서의 평안한 생존을 추구하며 선민적 사상을 고수하는 현실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헬라가 득세하면서 헬라문명과 철학의 영향으로 진보주의적 사고와 이상주의적 사고를 갖게되어 이들의 신앙은 복음의 세계로 들어 올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II. 디아스포라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일에 가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 축제에 참가하였다가 성령의 강림하심과 함께 탄생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 당시 로마 황제가 유대인의 추방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동역하던 부리스가와 아굴라는 아시아 본도 태생으로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에 의해 고린도로 이주해 온 나그네였습니다(행18:2).

그 당시 교회가 탄생한 후 얼마 동안은 로마정부는 로마법 안에 인가된 유대교의 종교 행위에 대하여 관대했습니다. 로마정부는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유대교의 일부라 생각했고 사두개인과 바리새파와 같이 신종
 세력의 등장으로 세력 다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 회당에서 유대인과 분쟁이 생길 때마다 오히려 로마군대가 바울을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네로와 같은 폭군의 치세하에서는 그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네로는 로마 신도시 건설 망상에 사로잡혀 로마시에 방화를 했고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네로의 이런 생각은 유대교로 개종한 애첩과 그가 사랑하는 여배우 계략에 의한 것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한꺼번에 처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리스도인들은 각 지역에서 유대인으로부터 또 로마정부로부터 공격을 받게되어 날이 갈 수록 살기 힘들어졌고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불어 넣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서는 바울서신처럼 이단 사설을 막기 위한 신학적 교리보다 그리스도의 날에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영광에 그 촛점을 마추었습니다.

III.
 하나님의 은혜
베드로는 2절에서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자들이라 하였습니다. 

'미리아심'이란 하나님의 전지하심 가운데 예정하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로부터 그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택한 백성입니다.

또한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신성과 칭의적 인격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으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순종함'이란 미리 아신 자들에게 나타난 인격적 증거로서 바울은 복음을 가리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라"(롬16:26) 하였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위하여 만세전에 택하신 백성들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피뿌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그들에게 임할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헬라인의 추구하는 소망이며 평안은 유대인의 추구하는 소망이지만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자녀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