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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러전서4:18)그리스도인의 선택

이요나 2007. 6. 28. 16:21

(베드러전서4:18)그리스도인의 선택

 

(벧전4:17-18)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우리가 베드로서를 공부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사상은 두 가지입니다. 그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입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94:12) 하였고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자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히12:6) 하였습니다. .

 

베드로서의  두번째 사상은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고난과 시련과 유혹은 우리로 절망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좇아 하나님의 기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상은 비단 베드로 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는 성경의 위대한 사상이요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

베드로는 4장 서두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말은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반대로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자들은 죄를 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행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희롱과 채칙과 옥에 갇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11:35-38)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3절에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지나간 우리의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얼마나 부끄러운 날들입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방

계속하여 그는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 하리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가운데서 의롭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비방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로운 삶을 가리켜 어차피 너희들도 우리와 함께 죽을 것인데 적당히 살면 될 것을 한세상 살면서 뭐 그리 의로운척 할 필요가 있느냐 비웃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적당히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우상숭배에 관한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몇일전 텔레비전에서 대마초에 대한 토론이 열렸습니다. 대마초가 중독성이 있느냐 없느냐 법으로 제재를 해야 하느냐 아니면 규제를 풀어야 하느냐 하는 논쟁이였습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국민이 보는 텔레비젼에서 왜 그런 논재를 다루어야 하는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대마초가 중독성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유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담배나 술은 규제를 하지 않으면서 대마초만 유독히 범죄화 하고 있느냐는 반론을 제기 하였습니다. 반대와 찬성의 극한 대립의 토론 속에서 나는 대마초의 유해성을 부인하며 규제의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쏟아 내는 말을 들으며 저들은 과연 어떤 양심을 갖고 있는가 의심이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그들은 자기들이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는 대마초를 자기 자녀들에게도 권장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들이라도 담배든 술이든 대마초든 음란이든 그러한 것들을 자녀들에게 권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더우기 뇌신경 부위를 마비시켜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대마초를 자기의 가정 생활 속에 도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과 살아 있는 영

5절에서 '저희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라는 말은 그들의 비방은 결국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권세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서 회계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8)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 신학적인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논란의 소지는  '죽은 자'들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이 말씀은 3장 19절에서 언급된 주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였다는 말씀과 연관하여 그 해석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서 '죽은 자'들이 누구이냐를 주어로 삼을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을 주어로 삼을 때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여기서 죽은 자란 보편적으로 죽은 모든 사람들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복음을 받아 드린 자들은 제외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미 성경이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었다'(요3:16) 하였고 다시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을 받았다'(요3:18)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에는 주께서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으니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하셨습니다. 이로서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죽은 자'란 이중적 해석을 요하는 말씀으로 복음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들를 함께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죽은 자'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의 죽음을 말한 것으로 (성경은 믿는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 오늘 이 구절 속에는 복음을 믿는 자들이 포함될 수 없는 것이나 이 부분은4절과 5절의 결론구로서 이 말의 도입이 믿지 않는 자들의 비방을 전제로 이끌어낸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는 부분도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아 마치 사람들처럼 심판을 받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으로 하나님처럼 살게하기 위한 것이라 한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

7절에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권고하였습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는 이 글이 쓰여진지 2천년이 되어 아직도 그날이 이르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 줄 압니다만 베드로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의 약송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닌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하여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나타나는 것은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의 대상이 자신과 물질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할 것이라 경계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 가운데서 일어나는 불협화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초대교회에서도 있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이들을 쓰면서 그 당시 일들을 회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초대교회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오자 식탁 봉사에 참여한 헬라인 과부들과 유대인 여인들 사이에 원망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까지 총동원 되어 구제 봉사에 나서야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일어나 성령이 충만한 일곱집사들을 택하라 하고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리라 하였습니다. 교회의 문제는 주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벗어나 각 사람들의 욕심과 생각을 따라 행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11절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주께서는 맹세로 그들을 보응하실 것입니다.

 

 * 해야 할 것과 하지 말것

이제 베드로 사도는 부름받은 자들의 고난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 나타날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지난 주 동경에 있는 장청익 전도사가 방문하였습니다. 여권만기가 되어 갱신차 방문한 것이지만 사실은 3월말로서 담임목사와 함께 시무하고 있는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장로회에서 목사나 전도사나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처럼 설교도 못하고 행정적인 능력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목사님이나 장전도사는 그 직무의 역량이나 봉사에 있어 내가 아는 사역자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였습니다. 그들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교회는 십여년 동안 주기적으로 목사들을 내어 쫓아 왔습니다. 나는 그들이 받을 징계가 어떠할 것인지 두렵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위로의 말씀입니까? 그들은 능히 하나님의 영광의 영을 감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관섭하는 자로 고난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악한 일에 결부되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도적질을 일삼기도 합니다. 최근 사람들을 청부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얼마전에는 아들을 부축여 함께 교수인 남편을 살해하려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또 남의 일에 관섭하다가 화를 당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보증도 서지 말라 하였고 형제의 고난에 참예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 어느 곳에 있을 것인가?

끝으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리라"(고후5:10) 하였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4-15)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의 잘못된 행실로 하여 받아야 할 심판과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에 관한 것으로 아직 신학적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로하여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믿는 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심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아서 멸망당할 사람들과 비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 받는 고난을 싫어하여 세상 사람들의 비방 속에 뭍혀 죽는다면 후일 죽은자 가운데서 책망받는 그 영혼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가 되겠습니까?

 

 베드로의 권면은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사람들을 향하여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부탁하라 하였습니다. 더욱 많이 참고 선한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그날을 고대하는 모든 영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와 능력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