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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4)신의 성품 8가지

이요나 2007. 6. 28. 16:19

(벧후1:4)신의 성품 8가지

(벧후1: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오늘부터 베드로후서를 공부하겠습니다. 이 편지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 직전에 쓴 글로 짐작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는 메시지를 받은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사도적 목회를 마감하면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는 자들에게' 편지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1절을 살펴 볼 때 그 핵심은 '그리스도의 의'와 '믿음'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의와 믿음은  복음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성경전체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하였습니다. 여기서 '앎'(에피+그노시스)란 일반적인 지식(그노시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있는 진보적이고 확신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도의 축복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앎으로서 우리 삶 가운데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마음을 알면 알 수록 그에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것처럼 예수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은혜와 평강이 삶을 주도하게되는 것입니다.

 

 *신기한 능력

베드로 사도는 3절에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이라"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신기한 능력이란 신성한 권능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란 오직 믿는 자들만이 그 마음의 확신으로 알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믿음에 속한 비밀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도 인내로서 주를 섬기며 주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신적 능력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셨고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니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4절에서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큰 약속을 주셨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직접들은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과 40일동안 사시며 그들에게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며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 약속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축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4절에서 말하는 바 '우리로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의 축복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진리를 잘못 가르친 데도 있습니다만 문제는 땅의 축복과  하늘의 신령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고통 중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물질과 명예에 속한 것을 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성경이 말하는 신령한 축복이란 이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는 과거 예수를 영접하고 더욱 더러운 생활 속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의인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교단적 가르침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지식은 그 사람의 영혼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8가지 덕목

이에 베드로 사도는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하였습니다. 지금 사도는 우리에게 여덟가지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8가지 덕목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여 이 덕목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아가페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덕'이란 용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탁월한 나타남을 의미한 것으로 성령의 선물입니다.

 

 다시 말하여 덕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포함한 것으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고 탁월하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에 대해 과감한 용기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행실들은 그 믿음의 첫번째 단계 조차 건너지 못하는 걸림돌입니다.

 

 사도는 세번째 미덕을 말하여 '덕에 지식을 더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성경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론 다른 일반적인 지식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믿음이 전제된 미덕이므로 성경적인 지식이 더해진 덕망 즉 성경적 인품을 말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고 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덕망을 가춘 사람이라 해도 가에게 성경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가 갖고 있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 없으며 그 윤리는 자짓하면 위선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는 네번째 덕목으로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식이 있으면 아는 것 만큼 나서게 되고 흥분하게 되며 자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이 부분에서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제는 우리의 성정을 다스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섯번째로 사도는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란 무조건 기다리고 참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열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사도들이 이러한 인내의 정신이 없었다면 모두 넘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여섯번째의 미덕은 "인내에 경건"을 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그를 향한 열정과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을 오해하여 외부로 나타나는 외형적 믿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경우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믿음생활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곱번째의 미덕은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형제란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각 교단별로 경쟁과 이단정죄를 통하여 심히 부끄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치 어느 집 강아지가 짖어대느냐 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끝으로 "형제 사랑에 사랑(아카페)"를 공급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공급하라는 말은 필수적인 추가를 의미합니다.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린 그리스도의 사랑을 포함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믿는 우리에게 이러한 것이 있어야 함은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언급한 여덟가지 미덕은 바울 사도가 말한 성령의 열매 속에 포함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먼 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자신의 옛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은 자라 하였습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지키는 길

그러면 오늘날 사도들과 동일한 믿음을 받아 신령한 능력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한 우리가 사도가 말한 바 8가지 덕목이 그대로 나타나는 주의 성도들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12절에서 베드로는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들이 자신의 신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필히 갖추어야 할 여덟까지 덕목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이 이제 임종할 날이 가까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자신이 떠나실 때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그 후에 일들을 가르쳐 주시며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가 떠난 후에 이 일이 너희 가운데 이룰 때에 내가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주의 강림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주께서 생전에 여러번 그 말씀을 하셨으나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을 전하는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더욱 강렬한 열정이 �구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들은 말들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친히 하늘로부터 들은 것이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복음서에서 읽은 바와 같이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의 샛별

그러나 사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 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니라"하였습니다. 지금 베드로 사도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대한 조급한 해석을 경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조급하여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려는 듯한 착각과 열정에 빠져 오히려 하나님의 인내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조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사랑을 해치는 결과를 맞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4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씨가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여 처음에는 싹이요 그다음은 이삭이요 열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 하였습니다. 저는 과거 신학을 하면서 어느 부분적인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스스로 풀고자 몇날몇일을 지낸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씀이 내게 깨우침이 된 것처럼 자랑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예정과 복음의 경륜을 따라 하나씩 깨달아져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베드로 사도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증거하였습니다. 지금 베드로 사도도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이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때를 따라 성취되기록 작정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기 때에 자기의 부르신 사람들을 통하여 성취하실 것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 끝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본체이며 그 삶의 예정이며 시작과 끝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신비에 속한 것으로 오직 그의 부르심과 택하심 속에서 열려질 하나님의 입술이며 마음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여덟가지 덕목을 가르치면서 그 방법으로 성경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함께 숨쉬며 생활하며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져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서 죄없다 하심을 받은 거룩한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맡기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 가운데서 그의 능력으로 성취해 나갈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위탁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