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아사야1-2)얼마나 더 맞을래?

이요나 2002. 1. 16. 15:24
(이사야1장-2) 얼마나 더 맞을래?

(이사야1:9)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소돔과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라


너는 내 자식이란다


오늘은 이사야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설교는 지난 주일날 이사야서 1,2장을 모두 묶어서 끝났는데 칼럼은 왜 두 세번에 나누어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어쨌든 나의 달려갈 길로 알고 써내려 가려 합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선지자 이사야에 대하여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그는 왕족의 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언자로 부름받아 썩을대로 썩어버린 이스라엘 왕국을 쇄신 시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먼저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그의 외침이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인 천지만물에 선언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는 먼저 부모와 자식간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에 대하여 거론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다"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관계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그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양자가 아니라 친자관계를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거역할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지요. 거역을 당해본 부모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네 주인이란다


3절에서 하나님은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관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는 일하는 가축입니다. 주인이 소를 기를 때에는 그 소로하여 농사를 짓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에는 잡아 먹기 위해서 키우는 소들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소는 주인의 일과 관계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키우시는 목적은 그들로 계획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귀는 짐을 실기 위해서 기릅니다. 그런데 나귀란 놈은 아주 고집이 쎄서 제 비위에 맞지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놈입니다. 여기서 나귀가 주인의 구유를 안다는 것은 고집센 나귀도 자기의 밥을 챙겨주는 주인은 알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나귀란 놈은 주인이 먹이를 주면 이제 곧 자신의 등에 짊을 걸며지고 어딘가 떠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주께서 자기들을 사역자로 삼으시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르고 계셨음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먹이고 기른 하인이 코가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즘 노사 분규가 일어나고 야단들입니다. 금년도에는 국가적으로 많은 행사가 있는데 우리는 한치의 앞날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노사분규가 계속되고 있고 정치적인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질서의 붕괴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종들아 두려워 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종들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엡6:5-7)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자숙하고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맡은 바 일들을 충실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슬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패역한 자식의 모습이 가슴 아프고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한 종들의 자고함이 슬픈 것입니다. 아사야는 그들을 가리켜 허물어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부패한 자식이라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러한 경우를 당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 싫으면 말지 누가 말려 하고 목을 자르겠습니까? 그러나 그 상대가 자신의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이겠습니까? 버리겠습니까? 이사야는 너희가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들이 하나님의 매를 이미 경험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들은 충분히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느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온 머리가 병이 들었고 온 마음이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하고 터진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치료함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라!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은 신체적으로 매를 맞은 것 뿐이 아니라 그들의 땅은 황무해졌고 그들의 성읍은 불타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시리아와 팔레스틴 등의 공격을 받아서 정말 비참할 대로 비참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곳이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징막 같이 적들에게 에워쌓인 성읍이 된 상태였습니다. 사실 이것도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는 종들을 위하여 조금 남겨둔 상태입니다.

이사야는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않았다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었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된 나라들입니까? 그들은 이방인 국가들 중에서도 패역한 나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을 행하다가 멸망을 당한 나라들입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의 멸망이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까지 상관하려고 하였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떠나 보내려 할 때 롯이 소돔지역을 바라보고 그곳의 온 땅이 기름져서 여호와의 에덴 동산같고 애굽 땅 같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롯은 물질을 따라 간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십시다.

1960년대 우리는 허리띠를 움켜쥐고 잘살아 보자를 외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후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후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절제 하지 못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IMF위기를 맞아 국제적인 금융실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자립할 수 없습니다. 북에서는 언제 처들어 올지 모르며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계속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한치 앞을 바라보지 못할 지경에 있습니다. 지금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여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포도원 망대처럼 앙상한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아이구 팔 아퍼라,,월요일날로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