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으리자 그가 그도로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임이니라(사2:3) 그가 가르치심 빛에 행하자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메시야 선언
이제 이사야 2장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사야는 2장에서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 때에 있을 일들을 서술한다. 이사야는 그 시대를 가리켜 말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가 말한 말일이란
문자적으로 "그 날들의 마지막"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총체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말일에 있을 메시에 관한 예언은
이사야서의 중심 사상이지만 이사야는 2장에서 4장에서 종말에 있을 총체적인 사건 중 아주 민감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사야는 2장 서두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받은 말씀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사야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전달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유다는 열두지파 중 메시야가 나실 택하신 족속을 말하는 것이고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도성으로 삼으신 종교적 중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는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우리에게도 미루어 살펴 볼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다. 최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들이 성경에 오시기로 기록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어히없는 말이다, 그들은 깨달음이 없는 어린 자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라는 어원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내세워 초림 때는 예수께서 친히 그 말씀대로 육신으로 오셨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통한 육체의 죽으심으로 부활하신 주께서는 그의 택한 종에게 기름을 부어 말씀으로 오신다고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메시야에
대하여 선언하되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전하고 있다, 만약 그 누가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명하려면 먼저 자신이 유다의 자손의 혈통임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시온에서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전의 산
이사야는 2절에서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것이라"(사2:2) 선언 하였다. 이것은 앞으로 도래할 주님의 시대가 되면 온 세상이 주님
앞으로 모여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성경 여러 곳의 기록들을 발췌하여 구원의 산, 믿음의 산, 배도의 산, 멸망의 산 등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하는 일이지만 성경을 이러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교만에서 비롯되기도 하다.
과거 신학교 시절 나는 주제별 성경연구라는 주석을 구입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주제별로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성경모임에 참여한 바 있었다.
나름대로 성경을 살펴보는 유익함도 있지만 성경의 본질을 왜곡시킬 소지가 다분하기도 하였다. 물론 성경에서의 산이라는 기록은 믿음과 관련된
상징언어이다. 주께서도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리라 하셨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산이란 이 땅에 높고 낮은
많은 종교들을 지칭하며 세상의 마지막 때에 세상에서 높아진 모든 것들을 페하시고 시온에 우뜩서서 통치하실 만군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의 전
메시야의 오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초청의 메시지를
띠운다. 그는 "여호와"의 산으로 오르자 하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초청한다. 여기서 "여호와"란 "나와 관계를 맺은 분"이란 의미로
구약에 나타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물론 이 당시 여호와와의 관계는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의 주인이시며 구속주가 되신 것이다. 또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방백을 낳은 믿음의 조상으로 어미의
태로부터 택한 자이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 가운데서 많은 환란과 고통을 통하여 믿음의 경륜을 터득한 자로서 오늘날 세상의 고통에서 취함을 받은
우리와 가장 친근감이 있는 믿음의 조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로부터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라 하드라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취하심을 체험케 하시여 찬탈자라는 육체의 누명을 벗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을 받았다. 성경은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라는 의미로 야곱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의 말씀을 의지한 믿음으로 인간의 육체의 소욕과 세상의
유혹과 삶의 고통을 탈출하였다. 이사야는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야곱의 전에 오르자고 백성들을 독려한다. 그는 주의 날에 주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과 세상에서 전쟁이 없어질 것을 예언한다. 이 땅에는 1년 평화에 13년의 전쟁이 있었다. 이것은 이 땅에 잠시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는 증거이다. 아프카니스탄의 전쟁 이후에도 언제 어디서 어떤 전쟁이 일어날지 우리는 한치 앞을 바라 볼 수 없다. 또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이 언제 우리를 위협할지 모르는 이 때에 이사야는 우리를 영원한 평화의 나라로 초청한다
하나님의 택하시고 믿음의 경륜을 터득한 야곱의 여호와의 전으로 그의 백성들을 다시 초청한 이사야는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려 온 종교적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과 같이 거짓교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성경을 누가 가르치냐는 매우 중요한 맥락이다. 최근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갈보리채플 개척 7년 동안 강해설교의 중요성을 꾸준히 외쳐 온 결과 이제 각 교회에서 강해설교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강해설교를 할 것인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HOW TO"가 먼저가 아니라 "WHO
IS"가 먼저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누가 가르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 선과 악을 알게 하기 위해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의 날이 오면 이사야는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3절) 전하며 또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답하고 있다. 성경은 그날에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듯이 주의 영광을 보리라 기록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다. 이것은 그의 부르신 제자들과의 관계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사야는 여기서 아주
위대한 선언을 한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임이라"
이제 이사야는 그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이성적인 호소를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아무리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여도 스스로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멜 백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로하여 위대한 다윗의 자존심과 솔로몬의 영광도
보잘 것없는 누더기가 되었으며, 그들은 이방민족에게 짐승과 같이 굴욕적인 삶을 살아 왔다. 이사야는 그 원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르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고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로 하여 이방의 교만함과 더러움을 보게 하셨고 그들과 언약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의 재물과 육신적
삶의 화려함에 충동되어 그들과 손을 잡고 혼인을 하므로 결국 그들의 우상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사야는 자기의 택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에게 굴복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라고 호소하며,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험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고 경고하였다
이사야는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선언하였다. 계속하여 그는 세상에 임할 주의 권세에 대하여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 나무와 모든
세상의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라" (사2:13-16)선언한다. 여기서 레바논의 백향목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이방의 나무를 지칭한다. 이것은 이방이 이스라엘로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바산의 상수리
나무란 갈릴리 바다 동쪽에 위치한 요단 동부지역에 위치한 바산이 예로부터 그 비옥한 풍요로움 때문에 번영의 상징이 되었왔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이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시킨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요한 계시록에 마지막 교회로 소개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요한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하였다. 지금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두렵다. 이사야는 이들을 향하여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고 교만한자는 낮아질 것"이라 예언하였다. 이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홉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운 자들이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왔었다. 그들은 스스로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우뚝 섰고 바산의 상수리 나무처럼 뽐내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탄 육체에 속한
인간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정하신 육체의 시간이 끝나면 흙으로 돌아갈 피조물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은 세세토록 영원하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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