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예레미야1:10) 네가 무엇을 보느냐?

이요나 2002. 9. 16. 12:00
(예레미야1:10) 네가 무엇을 보느냐?



(렘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하였느니라


열세살의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대언자로 세우신 하나님,,,이것은 인간으로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다., 수년전 종말론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였던 다미선교회에서 방학기라는 중학교 학생을 내세워 하나님께서 종말의 예언을 그에게 하게 하셨다고 하여 혹세무민하였던 일이 있었지만.. 열세살의 어린아이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도 일반적인 예언이 아니라 국가 장래의 흥망이 달린 중대사라고 할 때 그 일을 맡은 예레미야의 각오와 마음이 어떠했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가 예언할 대상자는 예루살렘을 이끌고 가는 국가 지도자들이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하였느니라"(렘1:10) 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비단 이스라엘 뿐이 아니라 열방 만국까지 포함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세계 운영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중동사태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은 비단 중동뿐이 아니라 전세계의 정치, 경제를 포함한 세계 운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의 실제적 지도자들은 유대계열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명석한 두뇌와 지혜를 주셔서 세계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실 일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는 것이었다. 이미 잘못되어 곪아 터진 것들을 그대로 두고 새롭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오랜세월 동안 고질화된 병페들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시키며 넘어뜨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관행을 알면서도 그 부분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받기를 싫어한다. 오히려 그것을 나무라는 자들에게 분노하며 그와 절교를 하고만다.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가 남에게 드러나는 것이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더구나 권세자들에게 있어서 이점은 건드릴 수 없는 아성과 같은 것이다, 그를 통하여 그의 권세와 부귀를 쌓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례미야가 어떠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될 것인지는 짐작이 간다.



이러한 사명을 실천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질문을 하셨다. 이것은 어쩌면 예언자로서의 자질 시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이 말씀은 참으로 의미 심장하다. 그에게 무엇을 보이신 후 물으신 것이다. 예레미야는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라고 이 문답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와 다른 나무들을 보이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레미야가 살구나무가지라고 지목을 하였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하셨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관측하고 그 느낀 바가 무엇인가를 보셨고 예레미야의 관측은 하나님의 의도에 적중하였다. 이것은 사역자들의 관찰력과 판단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예지능력의 테스트라고 생각된다.



오늘날도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많은 그림들을 본다.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상수리나무..공중의 새, 비들기.등,,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성경의 그림들을 퍼즐 풀어내듯이 그 상징성을 찾고져 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적중시키려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오직 대답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부르심과 기름부으심 속의 성령의 나타나심인 것이다.



예례미야는 많은 나무 가지 속에서 추운 겨울을 깨어 싹을 내고 있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다른 나무들도 그를 따라서 싻을 피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구나무 가지에 돋아나는 싻을보고 이제 따뜻한 봄이 올 것을 기대한다. 예레미야는 이제 곧 다가 올 추운 겨울 속에서 자기 자신이 깨어서 싻을 내는 살구나무 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자신에게 주신 소명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셨다.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쪽에서부터 기울었나이다" 답하였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에 대한 예견과 적용의 능력을 의미한다. 끓는 가마란 그 물이 다 쫄아서 없어지기까지 멈추지 않는 상황설정이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운명시 그의 아들들에 대하여 예언을 한다. 야곱은 장자 르으벤에게 너의 성정이 끓는 물과도 같으므로 탁월치 못하리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끓는 물은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정으로 인한 재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끓는 물에 데이는 고통 앞에 놓인 것이다. 그 면이 북으로부터 기울었다는 것은 끓는 물이 북쪽으로부터 쏟아져 내릴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14절)고 답하셨다. 이처럼 예언자들은 그 보이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여야 하면 그 말씀의 현실적 적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성경에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바 어려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말씀들이 많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그것을 보이고 선포하게 한 선지자들에게는 그 그림들이 무엇을 말하시는 것인지 깨닫게 하신 것이다. 만약 어느 예언자가 있어 하나님의 보이신 그림들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다면 그는 결국 자기도 모르는 것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알리시고자 하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며 또 그 말씀은 후일 주께서 계획하신 날에 부르신 사람들로 하여 오늘 예레미야에게 보이신 것처럼 또 하나의 그림이 되게하여 그 그림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있으면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수 없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