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이사야1-4) 아 슬프다

이요나 2002. 1. 25. 15:52
(이사야1-4) 우리 서로 변론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공의로의 초청

하나님의 초청으로의 응답의 결과는 무엇인가? 먼저 이사야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라" 말하였다. 이 말씀은 죄로 물든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다. 자신의 죄 의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스스로 죄 없다 하면 이 말은 당신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죄악에 물들어 삶 전체가 죄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피폐해지고 심령이 상하여서 그 죄의 사슬을 끊고 정결되고 신선한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들어가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의 초청은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단 하나의 길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바 없다 증언하였다. 아직도 인간에겐 그 시간이 남아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말라 주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8-9) 경고하였다.



순종의 대가

또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가 받을 축복에 대하여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하셨다. 이것은 이 땅의 인간들의 기본 생존권과 관계된 말씀이다. 하나님은 처음 인간 아담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격리 되었을 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하셨다. 그 이후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죄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하여야 했다. 그러나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맏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동일한 말씀으로 그의 공의하심 가운데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으리라" 하셨다. 그렇다고 이 말씀은 주께 돌아 온 자들에게 놀고 먹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은 자들은 먹지도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하여 땀 흘리지 않아도 되도록 땅의 저주를 풀어 일한 만큼의 댓가를 얻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보모 형제 처자와 전토를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배나 받고 영생에 드러가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다. 당신의 삶 속에서 30배,60배 100배로 맺어가는 열매 익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불순종의 결과

이제 순종의 대가를 설명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의 결과를 말씀하신다. "너희가 거절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죄악들을 펼쳐 내셨다, 인간의 감추어진 죄들이 낱낱히 불거져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예수를 믿은 후로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과거의 죄악들은 우리를 고통의 뜰로 이끌고 간다. 그러나 가장 큰 불행은 사람이 자신의 죄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에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말하며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1:28-32)증거하였다.

이스라엘의 상태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히 고발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의 상태를 설명하신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사1:2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며 그의 아내된 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에게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지침으로 율법을 주신 후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삼으시고 시온에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을 자기의 자녀로 삼아 모든 열방들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그들의 의로움이 온 열방에 미쳐 온 세상 사람들이 복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택하신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더러워진 것이다. 이사야는 그들이 더러워진 이유에 대하여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는 물이 섞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다른 것과 혼합하였다는 증언이다. 하나님은 나의 말에 하나라도 더하지 말고 제하지도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들이 더러워진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지도자들의 패역함이었다. 이사야는 "네 방백들이 패역하며 도적과 짝하여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라고 증언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에 뇌물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봉사에 대한 사레를 요구하였다. 바울은 복음은 나의 마땅히 전하여야할 직분으로서 이것을 피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 증거하였다. 요즘 우리나라 정국은 이용호 게이트로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고 통치자까지 연루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하나님의 고통

그러면 하나님의 택하고 부르신 하나님의 종들이 그처럼 패역해지고 더러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놀랄만한 새로운 존재들을 우리 앞에 끄집어 낸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사1:24) 주께서는 먼저 그의 슬픔을 고백하셨다, 만약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에 빠져 있다면 그 부모의 고통은 어떠할까? 나는 이 말씀을 보며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셨던 나의 어머니의 아품을 다시 보게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는가? 짐승들도 자기 자식을 아끼거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야 어떠하랴! 그러나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는 젊은 아이들을 보라. 이들 모두 한 가정의 귀한 자녀들이 아닌가? 나는 크리스챤 이성교제를 이끌어 오면서 매일 저녁 번개(크리스챤 오프라인 모임)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나의 비명은 젊은 크리스챤들의 아름다운 삶의 표현으로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의 표현이다. 왜 교회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계속 종교활동으로의 초청에 연연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있다.

영혼의 회복

하나님은 자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대적에 대하여 선언하셨다.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할 것이며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다" 택한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을 일삼는 창기처럼 된 것은 아담으로부터 세상을 찬탈한 영적 존재 사단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사야는 이들을 보응하기 위하여 전능자 여호와께서 나타나실 것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란 구속의 주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도말하여 사단의 손에서 우리의 영혼을 회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먼저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희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사1:25-26) 고 예언하였다. 나는 이제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곧 시행될 것을 믿는다. 이사야는 "그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을 받고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되리라" 선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변론은 또 다른 자들을 향하여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망하고 여호와를 버린자도 멸망할 것이라" 선언하며 그 이유에 대하여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그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라" 경고하였다. 문선명이와 함께 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동산에 오른 사람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한 계시록 3장 마지막 절에서 우리 교회 속에 있는 부끄러운 사람들을 본다. 성경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4::17-18)고 경고하고 있다.(2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