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이사야1-3) 우리 서로 변론하자

이요나 2002. 1. 24. 10:33
(이사야1-3) 우리 서로 변론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 오나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며 절기와 매월 모이는 것과 안식일과 너희의 집회는 내 앞에 행하여지는 악이니 너희가 나를 향하여 손을 펼지라도 내가 눈을 가리우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결국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다. 또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선한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노래 하였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양과 목자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종들에게 말씀을 주어 이스라엘의 백성을 다르시는 목자가 되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양들을 종교적 제물로 삼았던 것이다. 이에 더이상 이들의 종교적 추태를 참을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종교활동에 눈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제안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짝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증언 하였다. 하나님을 빙자한 이스라엘의 가증스런 종교활동을 거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며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6-17).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 스스로 악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행하는 악한 일들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이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행을 배우고 공의를 구하라 권면하셨다.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 심령이 악으로 물들어서 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라"(벧전3:11) 말하며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말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행은 하나님을 아는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양심에 화인을 맞아 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선을 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이미 악에 빠진 사람들은 그대로 죄속에서 죽어야 할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공의를 구하라"고 전하고 있다. 공의란 하나님의 의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품성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공의로의 초청

어떻게 생각하면 먼저 공의를 구한 후에 선행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사야는 먼저 선행을 배우라 말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선을 배푸는 사람들을 통하여 감동을 받아 악에 빠진 심령들이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한 사람들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공의를 구할 것을 권면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을 하자"고 초청하셨다. 변론은 양쪽의 공평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쪽에 유리한 조건이 주어진 채 변론을 한다면 그것은 공평성을 잃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의 초청 선포는 인간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그 이유는 창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그 생각하는 바를 스스로 선택할 자결권을 주셨고 또 인간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 사단의 유혹을 받아 스스로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선택하였으므로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보여주시며 그 마땅한 것을 선택하도록 하셨다. 공의로의 초청은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이사야는 먼저 "공의를 구하라"선언 하였다. 그러나 공의로의 초청에는 하나님의 공평함이 전재되어 있다. 그 공평함이란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듯이 거역하는 자에게 심판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우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31)고 말하였다. (내일로 이어집니다)